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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19. 2023

일어나기 싫은 날

몽롱하다. 깨어 있어도 자고 있는 것 같고, 자고 있어도 깨어 있는 것 같다. 악몽을 꾸는 바람에 일찍 일어나버리고 싶었지만, 일어나서 해야 할 일 더미를 생각하다 보면 다시 잠들고 싶어졌다. 그렇게 자다 불안감에 깨고 또다시 잠드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쓰레기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왜’로 시작되는 온갖 문장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쓰레기같이 느껴지는 건 생산성을 중시하는 사회 때문일 것이라고 사회 탓을 해본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처럼 일만 열심히 하다가 결국 일에게 잡아먹히는 인간(말 그대로 잡아먹힌다)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나는 DNA 속에 뭔가를 계속 해야 하는 칩이 내장되어 있는지 가만히 있는 걸 잘 못한다.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칩이 깊숙히 파묻혀있지 않을까. 사실 난 게으른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두 각자의 속도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자기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선 알람이 울리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일을 하러 가는 사람만을 게으르지 않다고 규정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기 쉬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난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는 게 힘든 사람이다. 요즘들어 더 그렇다. 그러다보니 들어야 할 강의를 듣지 못하고,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씻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밴드부 보컬로 활동할 때 들었던 평가가 있다. “한 음 한 음을 퀘스트 깨듯이 부르시는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솔직한 평가에 상처 받았지만 지금은 내 삶이 그렇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가만히 있는 걸 잘 못하는데 내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참 괴롭다. 그러니까 이런 상태인 거다. 머릿속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뒤섞여 아우성을 치며 반란을 일으키는데  내 몸은 침대에 찰싹 붙어서 일어나기를 거부하는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거다. 운동 좀 해서 체력을 키워놓을 걸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체력의 문제인가? 아무리 체력이 짱짱해도 일어나기 싫은 날이 있다. 이건 마음의 문제다. 사실 지금도 나는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지만 당장이라도 침대로 다이빙해서 현실은 모른척하고 잠에 빠져들고 싶다. 내일 시험 3개가 있기 때문이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학교에 가지 않은 날이 많았다. 게다가 이번 학기 내가 듣는 수업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수업들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도중에 강의실을 나와야 했다. 수업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의실 밖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으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시험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일까 생각했다.


사실 좋은 결과를 내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님이 바라시는 것도 학교 잘 다니고(지금은 그것조차 안 되고 있지만) 밥 잘 챙겨먹고 건강하게 크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압박을 주는 건지 내가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는 건지 ‘나’ 만은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채찍질한다. 좀 더 잘했으면 좋겠는 마음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할까?


내 친구 중에는 이영이라는 친구가 있다. 대학교 때 지인으로 알게 된 이영과 친해진 것은 올해 초, 매주 월요일마다 만나서 밥을 먹으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일회성 만남이었다. 어느 월요일, 점심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다음주 월요일에도 서로가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월요일 메이트가 되었다. 시험기간에 접어들자 이영과 나는 월요일에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같이 공부를 하곤 했다. 나는 허겁지겁 그날 해야 할 공부를 해치우려는 반면, 이영은 느긋한 마음이었다. 오늘까지 과제를 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아직 못 했다고 했다. 나는 새삼 놀랐다. 과제를 안 내면 점수가 깎일 텐데 그런데 저렇게 태평한 마음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정작 이영은 초조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선을 이렇게 연결했다 저렇게 연결했다(전선을 연결해서 소리가 나오게 하는게 과제였다)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실험해보고 있었다. 이영은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마침내 소리가 나왔을 때, 나는 진심으로 이영의 노력을 축하해줄 수 밖에 없었다. 이영에겐 점수나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뭔가를 배우고 그걸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해내는 게 중요한 가치였다. 이영의 모습은 과제를 끝내면 서둘러 제출하기에 바빴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시간이 있잖아. 우린 그 시간에 뭘 할지 선택할 수 있잖아.” “그렇지.” “시험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책을 읽는 것도 산책을 하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 시간을 소중히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이영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내 시간은 뭘 하느라 쓰여졌지. 공부, 공부, 공부를 하느라 많은 시간을 쓰지만 사실 시험이 끝나면 다 잊어버리는 지식이었다. 이제는 배움을 위한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산책도. 그리고 책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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