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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21. 2022

이슬라마바드 송년의 밤

2021.12.31.금요일 이야기

 오늘은 2021년도 마지막 날. 파키스탄도 여느 나라처럼 송년을 즐긴다. 금요일은 일찍 마치니 어제 일찌감치 전 직원 다 모여서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공개된 장소에서는 일절 술을 안 마신다는 것 말고는 다들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즐기는 문화는 세계 어딜 가도 똑같다. 한국 기준으로 코로나 방역지침이 살짝 떠오르긴 했는데, 이 나라는 거리두기 지침도 없고, 날마다 얼굴 부대끼며 숙식을 같이하는 사내 직원들끼리 거리두기를 이유로 송년행사를 못 하게 하는 것도 이질적이라 생각해서 계획한 대로 진행하라고 했다. 사실 이 나라는 코로나가 한 차례 지나가고 소강상태처럼 느껴진다. 대형 쇼핑몰에 안전요원이 지키고 서 있는 곳만 형식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둥 마는 둥 하고 거리 풍경을 보면 그 누구도 마스크 쓰지 않는다. 다만, 사내에서는 마스크를 지급하고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기 때문에 통제가 잘 되는 편이다.     


같은 회사에서 파견나온 회사 동료분들과 나눈 송년회. 센터로스 주상복합 아파트.


 12.31 당일은 (재)파키스탄 직원들끼리 송년회를 갖기로 했다. 각 법인별로 소정의 행사비를 조금씩 찬조해서 0000 법인에서 일괄 준비를 했다. 한국인들이 모이면 술이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이 나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금주가 엄격하게 금지되는 나라니까 우리끼리 모이는 숙소가 제일 편하다. 0000 법인에서 신경 써서 준비를 아주 잘했다. 딱 한국식 육개장은 0000 소속 요리사에게 부탁해서 숙소까지 가지고 왔고, 현지 쌀이 아닌 한국식 쌀로 지은 밥에(현지 쌀은 찰기가 전혀 없다. 한국식 쌀은 스티키 라이스, 끈적이는 쌀이라고 불린다.), KFC 치킨, 텍사스 치킨 등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닭요리에 배달된 중국요리까지 아주 푸짐하다. 언제 준비했는지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소주도 있다. 맥주는 현지에 있는 MURREE 맥주가 비교적 한국인들 입맛에 잘 맞는다. 이 나라가 금주 국가이긴 한데, 인도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이 만든 맥주공장이 국내에 있으며 그 공장에서 만든 맥주가 MURREE 맥주라고 한다. 아무나 살 수는 없고 특별한 주류 구매 허가증을 받으면 호텔 등 특정 장소에서 구매할 수가 있다고 했다. 있는 술 다 떨어지면 직접 주류 구매에 도전해봐야겠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 모든 게 다 새로운 경험이다.     


메이드 인 파키스탄 머리 밀레니엄 맥주. 금주 국가이지만, 술은 만들고 판다.


 날씨가 겨울치고는 너무 포근한 것 빼고는 송년 느낌도 나고 파견 나온 회사 동료 모두 성격들이 좋고 모진 데가 없어 가족 같은 느낌도 난다. 그래도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 덜 외로운 것 같다.     


 조금 일찍 자리를 파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하고 통화도 하고 여기저기 안부 문자도 보내고 하다 보니 해가 진다. 현지 일기도 쓰고 한국 뉴스도 보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곧 자정인데, 날이 날인지라 다른 날과 느낌이 좀 다르다. 창밖을 내다보니 자정이 가까울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근 공터로 모여든다. 아, 뭔가 하려나보다. 그래도 여기가 수도라 이벤트가 있나 보네?     


센터로스 아파트 거실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자정이 되어가니 사람들이 모여든다.
센터로스 아파트 거실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주변에 고층빌딩이 거의 없다. 평평하다.

 자정이 딱 되니, 이곳 센터로스 빌딩 주변으로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한국처럼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축하하는 느낌이 들 정도는 충분하다. 이 빌딩 주차장에서 하는 불꽃놀이가 가장 크긴 했는데, 도심을 조망해보니 여기저기서 소규모 불꽃놀이가 벌어진다. 불꽃 한 발이 무척 비싸다고 들었는데, 여기도 돈 많은 사람들은 많은가보네... 한국하고 다른 건, 한국은 지자체나 기업이 중심이 되어 집중해서 한 군데서 매우 화려하게 행사 기획을 하는 반면 여기는 이곳저곳 산발되어 도시 전체가 신년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다.     


새해다. 폭죽을 터뜨리고 춤추며 나름 신년 분위기를 낸다. 센터로스 야외 주차장.
불꽃맨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디아블로처럼 찍혔지만, 그냥 폭죽들고 뱅뱅 도는 사람일 뿐이다.
센터로스 광장에서의 소박한 불꽃놀이. 대규모로 화려하진 않지만 신년 느낌 내기는 충분하다.
도심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소규모 불꽃놀이가 진행되었다.

 파키스탄 사람들, 신문 뉴스에서는 IS니 과격파니 핵무장이니 사실 무서운 이야기들만 주로 들어서 상당히 무섭다는 선입관을 좀 가지고 온 게 사실인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척 소박하고 친절하다. 어딜 가나 극우파는 있기 마련인데 그걸 일반시민들이 생활하는 민간영역에서 느끼기는 힘들다. 더구나, 현지인들에게 한국인들의 인식은 매우 좋은 편이라서 한국에서 왔다고 밝히면 더욱 친절하고 특혜를 많이 받는듯한 느낌이 있어서 좋다.(쇼핑몰 입장 시 검문도 없고, 병원 가도 줄 안 서고...) 유럽이나 미국에 갔을 때 은근히 느껴지는 인종차별적 분위기는 전혀 없다. 일단 잘살고, 돈 많고, 권력이 있는 한국인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내가 봐도 여기 있는 한국인들은 한국 내에서도 잘 나가는 중상층 이상만 와 있고, 사회적 직급을 봐도 최소 대기업 관리자 이상이거나 대사관 직원이거나 등 어느 정도 사회적 신분이 되는 사람들만 와 있으니 한국인들만 보면 부자겠거니 생각하는 게 당연할 듯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다지 부자 아닌데. 나를 너무 부자 취급하는 현지인들이 많아서 내가 자주 하는 말이 “No, No. I’m also a kind of salary man as like you.”란 말을 자주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이 나라 급여 수준을 보면 그 기준에서 보면 내가 슈퍼리치가 맞긴 하다. 운전사 급여가 3만 루피가 조금 안 되는 수준이니, 우리 돈으로 따지면 월 20만원이 안 되는 급여로 생활하는 거다. 해외 1급 위험국가 파견자로 와서 한국에서 받던 급여+위험수당까지 더 받고 생활하니까 이 나라 최저급여자 기준보다는 수십 배 더 받는다고 생각하니, 우리나라에서 외국계 기업 CEO 연봉이 수십억 쯤 되는 느낌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가난하다는 말은 하면 안 되겠다.


 So far So good. 그래. 아직까진 잘하고 있어. 올해도 무사히. 내년도 무사히. 잘할 수 있을 거야. 해피 뉴 이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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