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8. 화요일 이야기
오늘은 재 파키스탄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 기업인 초청행사가 있는 날이다.
주말 껴서 했으면 좋으련만. 현장이랑 여기랑 왔다 갔다 길이 얼마나 험한데 또 가야 한다. 원래는 오전 업무를 보고 오후에 시간 맞추어 나올 계획이었는데, 아무래도 병원엘 가 봐야겠다. 안 낫는다. 오전에 출발.
AJ&K(아자드 잠무 앤드 카슈미르의 약식 표현) 지역에선 한국인들만 움직일 수 없다. 발전소를 벗어나는 모든 이동은 경찰 호위를 해야만 이동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우리가 출발하는 시간에 맞추어 호위차량이 도착했다. 어제 온 길 그대로 출발. 가는 동안 설사하면 안 되는데. 걱정돼서 다 쏟아내고 물도 안 먹고 출발했다. 어제 취임식 때 비스킷 한 두 조각 먹은 거 말고는 이틀을 굶고 있네... 몸도 마음도 핼쑥해진다.
이슬라마바드 마루프 국제병원(MAROOF International Hospital)에 도착.
국제 병원답게 모두 영어를 잘한다. 안내데스크에 가니 내과의사 진료 안내를 해준다. 우리나라 병원과 시스템은 비슷하다. 접수하고, 번호표 받고, 모니터에 숫자가 뜨면 들어가면 된다. 대기실에 사람이 많다. 족히 한 시간은 걸리겠구나 생각했는데 5분 만에 내 이름을 부른다. 친절한 헤드 매니저가 안 기다리게 수를 써놨단다. 응? 어떻게 한 거지? 어쨌든 VIP 대접은 병원에서도 해준다.
내과 의사가 매우 친절하다. 안 되는 영어로 설명을 하니, 물 오염에 의한 장염인 것 같다며 약 처방을 해준다. 내 영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눈치를 채고,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모니터에 띄워 한국어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한 것 같았다. 약 처방해 줄 테니, 다 먹고도 안 나으면 자기 개인전화번호로 연결된 왓츠앱 메시지를 보내라고 한다. 참 친절하다. 아무것도 못 먹어 기력이 없으니 포도당 링거를 맞고 가고 싶다고 얘기하니 못 알아듣는다. 모를 땐 네이버. 링거 영어 표현을 찾아보니 IV. 아이비라고 얘기하니 딱 알아듣는다. 영어는 환경. 상황별로 닥쳐보면 다 배운다. 시간이 걸리고 몸이 힘들 뿐이지.
팔에 링거... 아니 IV를 꽂고 누워있으니 참 처량하다. 외국 나오자마자 이게 뭔 꼴 인감. 배가 아픈 것 같지만 설마 코로나 걸린 건 아니겠지? 만일 코로나라면 그리고 심해지면 나 어떡하지? 회사에서 귀환 전세기를 내 주나? 별별 생각이 다 들지만 그건 닥쳐보고 고민하고. 낫겠지 뭐.
치료를 받았으면 계산. 정리해보자.
1. 의사 진료비 : 2,600루피
2. 응급실 병상이용료 : 350루피
3. 링거(IV) 약제비/처치비 : 1,578루피
4. 내복약(Panadol-진통제, Peditral Powder-수액제,Entamizole DS-아메바시스치료제) : 160루피
ㅇ 합계 : 4,688루피 (한화 약 3만 2천원)
당연히 보험 적용 안 된 가격이며, 한국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싸 보이기도 한데, 이 나라 물가 수준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비용이다.(개인 가정집 운전기사 한 달 급여가 3만 루피가 채 되지 않는다. 한화 20여만 원 수준). 특히 수도의 Maroof 병원 같은 종합병원은 더욱 비싼 편이라, 서민들은 죽기 직전에 한 번 와 보는 병원이라고들 이야기한다.(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는 사람들이 많다....)
병원 처방을 다 마치고 센터러우스 숙소에 가서 잠시 쉬다가 정장으로 갈아입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포도당 주사 맞고 내복약 먹은 게 효과가 있는지 몸이 한결 낫다. 국내외 통틀어 첫 대사관 방문. 영광스럽게 초청받은 자리인데 어떻게든 가야지. 대사관 가는 길은 길 자체가 묵~직~했다. 가는 곳마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고 신원을 확인하고 통과시켜 주었다. 대사관 건물 입구에는 파키스탄 국기와 대한민국 국기가 걸려있어 이곳이 국격을 대변하는 중요한 곳임을 인식시켜 주었다.
대사관 라운지답게 실내 인테리어도 화려했고 조명도 밝았다. 게스트 라운지에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재)파키스탄 주요 기업인들이 한분 두 분 도착했다. 전체 초청 리스트 중 우리회사 사람들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00(주), 000(주) 등의 기업인들로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거나 후속 사업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주를 이루었다. 기아자동차 등 파키스탄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요? 하니까, 그건 카라치 분관에서 별도로 초청한다고 한다. 이곳 이슬라마바드에는 기업인들이 많지 않단다. 허긴. 여긴 행정중심의 작은 도시니까. 제조업은 대도시로 가야지.
영사님과 대사님이 오셨다. 만찬장으로 이동했다. 나는 어디에 앉나? 나도 대사님과 같이 메인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대사님 맞은편에는 0000 법인장님이 앉고 나는 영사님 맞은편에 앉았다. 병원 가서 처방받고 약 먹고 오길 잘했다. 열도 내리고 한기도 가시고 살 만했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무거운 음식 피하고 생야채 피하고 딱 봐도 소화가 잘 될만한 가벼운 음식 중심으로 조금만 접시에 덜어담았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먹으면 그것도 결례니까. 파키스탄은 금주국가라 술 구경하기 힘든 나라인데, 메인테이블에는 고급 양주, 한국 전통주 등이 올려져 있었다. 대사관 물품으로 특별히 통관시켜 오는 거라고 했다. 평상시 같으면 반가웠을 텐데, 오늘은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자중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는 주로 영사님께서 주도하시고 우리는 경청하며 가끔 질문하는 정도만. 그래도 간간이 000(주), 00(주) 등 같이 참석하신 한국인 기업인들과 명함 주고받을 시간은 있었다.
입구에서 보았던 파키스탄 국기와 태극기를 배경으로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자리를 마쳤다. 다들 기업 대표 자격으로 오신 분들이라 삐까번쩍한 차량과 기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렬로 대기하고 있었다. 내 차도 그닥 그 모양새에 빠지지 않았다. 그래... 어디가서 보여주는 이미지도 중요하지. 그게 조직의 위상일 수도 있지. 보이는 게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이는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건 가서 실제로 봐 보면 안다. 격식 있는 자리는 의상도 차량도 수행원도 모두 모두 중요하다.
파키스탄 업무 이틀 차. 행사만 두 건 뛰었네. 밀린 일은 언제 다 하나. 결재 건이 산더미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