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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Feb 26. 2024

의대 정원 확대 문제의 프레임에 관하여

말싸움할 때는 일단 프레임 정의부터 유리하게!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권력의 끝판왕 중앙정부와 부유층 기득권 집단의 끝판왕 의협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데, 정작 터지는 쪽은 당장 아픈 환자들이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 살고 있어 이 싸움 프레임의 본질적 구도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잘 모르는 지극히 일반인의 시선에서 이 문제를 좀 바라보고 정의해보고자 한다.


 내가 바라보는 이 싸움은 "의대 정원 확대 vs 확대 반대"로 이미 판이 짜였다.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정부논리는 이미 필수 공공의료가 붕괴되고 지방에 의사가 없을 만큼 의사 숫자가 모자라서 확대해야 한다는 쪽이고, 확대를 반대하는 의협 입장은 이미 인구감소가 진행 중이며 의사는 현재도 충분할 정도로 있지만 의료수가 책정 같은 정부정책이 잘못돼서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으니 정원확대는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양쪽 말 다 그럴싸해서 나도 누구 주장이 더 사회에 도움 되는 의견일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싸움의 구도는 이미 의협 쪽이 상당히 불리해 보인다.


사진출처 : news1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22517172238884


https://www.news1.kr/articles/5331316


 일단 정부가 내세운 프레임은 매우 단순하다.


[의사 부족] → [돈 안 되는 지역 및 전공 기피] → [의료붕괴 시작] → [의사 수 대폭 배출 확대] → [의료가 필요한 말단까지 의사 공급 해결]


 시장의 논리에 따라 매우 단순명료하며 배추값 무값 변동 소요처럼 국민들이 시장경제를 통해 지극히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논리라 전달하기도 좋다. 법률서비스 확대를 위해 변호사 공급을 확대한 이후 법률서비스 확대는 물론 비용을 낮춰본 실례도 있다.(대신 변호사 개개인의 개별 수입이 줄었다.)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2/25/2024022590057.html


 그런데, 정부의 논리에 맞서 의협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뭔가 좀 잘 이해가 안 된다.


[의사 정원 확대] → [의학 교육 부실 초래] → [의료비 폭증, 미래세대 부담전가]

(※ 혹 오해하실까 봐 밝히지만, 내 맘대로 뇌피셜이 아니라 아래 기사에서 나온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공식 입장문의 요약임.)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medicine-health/2024/02/25/SLY2XPHDVVHTPMAGCLAC4C3PMQ/?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


 의사 정원을 확대한다고 하면, 양성 교수의 부족으로 의학 교육이 단기간 부실해질 수는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의대 인기도를 비추어 볼 때 2,000명 증원을 해 본 들 어차피 여전히 반에서 1등 하는 학생들만 갈 것 같은데 그 학생들이 의사 공부를 부실하게 할 것 같지는 않다(해 오던 가락이 있을 테니). 의대에 입학한다고 모두 다 의사가 되는 건 아니고 의사고시를 쳐서 패쓰해야 하니 증원 자체가 부실 의사를 양성한다는 당위성도 될 수 없다. 그리고, 의사가 많이 배출되면 왜 의료비가 폭증된다는 것인지 이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의사가 사회에 많아지면 조폭처럼 의무적으로 의료비 갈취라도 한단 뜻일까? 미국에서 의사가 증가할 때 가정의 의료비가 증가했다는 예를 가져오는 것 같은데, 그건 그동안 의료서비스를 못 받던 계층에서 병원에 더 갔다는 말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의학계 종사자가 아니니 이 문제는 좀 떨어져서 바라보고 오늘은 [문제 설정의 프레임]에 대해서만 집중하자. 일단, 나는 이 판이 이미 의협에 매우 불리하게 보인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설명하는 프레임은 매우 단순하고 이해가 잘 되는 것에 반해, 이에 반하는 의협의 논리는 저렇게 단순해서는 당최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의협이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려면 공공의료가 무너지고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문 닫는 본질적 이유부터 다시 분석해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반대]라는 키워드를 [의료 수가 변경]이나 [공공 의료정책 도입] 등 의사 정원 문제를 대체하는 다른 키워드로 문제를 인식시키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위의 사진을 들고 와보자.

사진출처 : new1


 나는 이 상징적인 현수막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호, 현수막, 슬로건 등은 조직의 뜻을 대중에게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는데, 이번 시위대의 현수막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일반인인 내 시각에서 저 말이 직접적으로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현수막 문구를 글로 옮겨보자.

[근거없는 의대정원] → [증원 저지해서] → [대한민국 의료붕괴를 막아내자]


 이게 한 번에 이해되심??? 정말???


1. 근거없는 의대정원

 응??? 정부가 발표하고 정부가 정책을 만들면 그게 근거지 무슨 근거??? 의사 숫자가 부족한 것인지 남는 걸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거라면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비해서 의사숫자가 현저히 부족하던데? 무슨 근거가 없다는 소린지??? 의사정원이 충분하다는 의협의 근거가 더 부족한 것 아닐까?

https://www.etoday.co.kr/news/view/2332237


2. 증원 저지해서

 일단 표면적으로는 선진국 대비 우리나라 의사숫자가 적은 게 명확한데... 무턱대고 증원 저지??? 왜? 와이?? 근거가 없어서? 근거가 있는 것 같은데요...


3. 의료붕괴 막아내자

 의대정원 증원을 막으면 의료붕괴가 막히나요? 아, 나 머리가 안 좋은가. 왜 이게 연결이 안 되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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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의협에서 단순하게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 줄은 안다. 다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대중에게 주장을 할 때는 프레임을 복잡하게 가져가면 진다. 쉬운 언어로 단순하고 명확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다는 소리를 하고픈 것뿐이다. 현수막 문구 아래 숨은 전략과 뜻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현수막 문구만으로는 대중의 마음을 돌리기엔커녕 "저게 뭔 개소리지?" 들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아니, 그 말이 아니고..." 말하는 순간, 이미 진 거다.




 오해하실까 봐 말하지만 참고로 오늘 작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잘 모르고, 의대정원 증원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의대정원을 증원하더라도 정책이 개판이면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거고, 정원을 감축하더라도 정책이 꼼꼼하고 이상적이면 의료시스템이 개선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의사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인 정책과 효율적인 시스템이지 않은가? 곧 AI 시대가 보편화될 것인데, 심지어 단순한 질병에 한해서는, 의사 없는 국가통제 AI 의료시스템과 비대면 진료만 도입해도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사실 태반의 감기약 몸살약 처방쯤이야 지금도 국가통제 AI 의사만 도입해도 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의사들은 의약품 오남용 등의 이유로 극심한 반대를 하겠지만 시스템으로 통제만 잘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잖은가.)


 암튼 오늘 포커싱하는 주제는 [문제 접근의 프레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손쉬운 시장 논리로 [공급확대] → [경쟁증가, 가격하락]의 이론과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국민들에게 이미 키워드가 [의대 정원 확대]로 설정되어 강대강 대치가 지속되는 게임은 적어도 여론만큼은 정부 쪽에 유리해 보인다. 의협이 여론을 돌리려면, [의대 정원 확대 반대]가 아닌 다른 키워드로 짧고 강한 언어로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만한 전략을 수립해 보시길 추천드린다(그래놓고 나도 그런 키워드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거고 의사회 관계자님들, 국민들 지지가 더 떨어질만한 발언 좀 신중하시길.

부산시 의사회 관계자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대한민국의 0.1% 아니냐"며 "각고의 노력으로 진학한 학생들이 왜 뛰쳐나갔겠냐"고 반문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22517172238884


 아니, 뭘 스스로 대한민국 0.1%래...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의예과는 물리학과나 인기 공대 다음에 가는 학과였고 대충 IMF 이후에나 인기가 급등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2010년대 이후 실제 의대 인기는 더더욱 하늘을 찔러 대학 입학 성적만 따져서는 현재 의대생들은 정말 성적 상위 0.1%가 맞는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 성적을 사회적 지위에 바로 투영시키는 듯한 저 발언은 상당히 거북하게 들린다. 스스로 "특권층"임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는 집단임을 방증하는 것 같아서 없던 반감도 확 생기는 것 같다. ㅡ_ㅡ

 

https://khariles.tistory.com/8358에서 가져왔습니다.


 어쨌든. 애니웨이.

 현 싸움의 프레임과 전략을 보건대, 의협이 국민들 마음을 얻어 여론전에서 승리하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승리하길 바라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좀 전략을 잘 짜 보시길. 그리고 진짜 마음에 있든 없든, 기득권 티 좀 고만 내시고 연극이나마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처럼 티라도 좀 내 보시길.


 어차피 기득권이고 지금 쥐고 있는 카드도 강력해 보이지만, 승리를 하더라도 국민들 지지 없는 승리는 언젠간 또 무너지기 마련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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