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것저것 하다가 이것저것 펼쳐놓은 채 씻고 자려고 화장실에 가려는데, 무언가 느낌이 쎄~하다. 누구냐 넌. 화장실 문틀에서 무언가가 꿈틀꿈틀 샤샤샥 벽을 타고 기어가더니 거미가 좋아하는 천장의 어귀에 딱 안착하고 꼼짝도 안 한다.
도.마.뱀.
되시겠습니다.
얘네들이 왜 "뱀"자가 붙냐면, 기어가는 거 보면 영락없이 뱀이다. 다리가 있지만 몸이 휘청휘청 요동치며 뱀곡선을 만들며 돌아다닌다. 이 녀석들이 벽을 쏜살같이 내달리는 걸 보고 있자면 얘네들은 인셉션 영화장면처럼 중력을 온 사방으로 느끼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대체 저 수직벽을 어떻게 잡고 쏜살같이 내달린단 말인가. 한두 번 보는 광경이 아닌데도 봐도봐도 신기해죽겠다.
벽만 타는 게 아니라 가끔 천장도 타고 돌아다니는데, 곤충도 아니고 다리 멀쩡히 달린 녀석들이 어떻게 중력을 거스르고 "천장"을 "걸어"다닌단 말인가. 생체 모방 공학이 발달해서 저 비슷한 로봇을 만들려면 앞으로 몇 백 년은 더 걸릴 것 같단 말이지.
자. 어쨌든. 요 녀석 천장 모퉁이에 콕 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꼬챙이로 꼬리를 꼭꼭 찔러봐도 미동도 안 하네. 나름 지 딴엔 편한 장소인가 보다.
적당히 타협을 보자고.
그럼 너 거기서 오가는 벌레나 잡고, 대신에 내 침대 위로는 올라오기 없기.
하나 더.
방안에 오줌이나 똥 싸놓고 도망가기 없기.
각서를 받진 않았지만, 단단히 일러놓고 대충 알아먹는듯한 눈치라서 그냥 불 끄고 그냥 잤다.
아침에 눈 떠보니, 어. 이제 거기서 사라졌다. 제 갈길을 갔나? 이제 신경 안 써도 되려나?
창가 블라인드를 보는데, 익숙한 그림자가 보인다. 요 녀석 멀리는 안 갔네.
꼭꼭 숨어라. 발톱이 하나 살짝 나왔어요.
나 그럼 출근하고 올 테니까, 오늘도 벌레나 좀 잡고 방 청소 좀 해놔.
그렇다고 똥싸놓고 어지럽히기는 없기다.
요새 뎅기 모기도 유행한다는데, 내 방에 와서 벌레 잡아주고 가면 좋지 뭐.
딱히 소리도 안 내고, 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빨리 뛰어갈 때 빼고는 신경 쓸 일이 없는 조용한 녀석이다.
덩치도 손바닥만 해서 그리 징그럽지도 않고 눈망울도 초롱초롱 귀엽다.
그런데, 내가 널 어떻게 정의해야 하려나.
1. 반려동물
2. 애완동물
3. 무단침입동물
4. 방충동물
5. 염탐동물
내가 딱히 벌레나 도마뱀 무서워하는 부류는 아닌데, 우리 진짜 동침하지는 말자. 자다가 미끈한 게 만져져서 깨는 건 싫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