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않는 것이 원칙
글쓰기에는 관성이 있어서 한 번 주제를 잡으면 자꾸 비슷한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난다.
정치사회비평글을 한 번 쓰면 자꾸 그런 것만 보이고, 건강을 주제로 글을 쓰면 한동안 건강 주제만 생각이 나더니, 어제 태극기 그리기에 관한 진지한 잔소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늘어놓고 나선 그 새 온 머리세포가 잔소리거리를 찾기 위해 활성화가 되어버린 것 같다. (부제 : 오늘 작가, 잔소리 빌런으로 거듭나다)
https://brunch.co.kr/@ragony/337
오늘 눈에 자꾸 밟히는 것은, 브런치 대문에 뜬 제목들.
정확히 말하면 "마침표를 찍은 제목들"이다. 대충 세어 봤는데 대문에 뜬 30개의 글 중 3개의 글에 제목 끝에 마침표가 찍혀있다. 정확히 10%의 비율이다.
이놈의 머릿속 세포들은 그냥 무던히 넘어가주면 좋으련만 자꾸 또 불편한 시그널을 보낸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일면식 없는 작가님들께 "제목에 마침표를 찍으셨네요. 보기가 별로 안 좋아요."하고 말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나는 가끔 이웃작가님들 브런치글에 오타나 편집 오류가 있으면 제안창을 똑똑 두드려서 알려드리는 편인데 그것도 친분이 있는 분들께나 그러지 아무에게나 그러진 않는다. 누구든 모르는 사람에게 지적질을 당하면 기분이 편할 리 없으니까.
글쓰기의 기준이란 것이 법령도 아니고 안 지키면 처벌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회적 약속 같은 거 아닌가. 가끔 그래서 파격을 시도하는 작가들에게 더 많은 찬사가 주어지고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파격은 파격이고 그건 그거고 제목에 마침표가 찍히면 어쩐지 불편하고 거부감이 좀 든다. 제목은 본문 내용을 함축하며 주의를 끌고 본문 첫 문장으로 안내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마침표가 거기에 찍혀 버리면 어쩐지 거기서 끝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제목이 시선을 잡아끌어 본문까지 가이드해야 하는데 마침표가 "잠깐 스톱"을 외치는 느낌이랄까.
모르고 뇌피셜로 내 맘에 안 든다고 지적부터 해대면 안 되니 레퍼런스를 좀 찾아보자.
국어의 어문규정과 표현 방법은 국립국어원에서 담당한다. 마침, 그럴싸한 규정집이 있다.
2014년 발행, 문장부호해설 편.
https://www.korean.go.kr/front/etcData/etcDataView.do?etc_seq=431
친절하게 검색 요약 서비스.
5쪽 하단에 아래 원칙이 박혀있다.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쓰지만 제목에는 쓰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고.
다만, 제목이 두 문장 이상이면 각 문장의 구분을 위해 마침표를 쓰는 것이 권장된다.
중요한 것이 있다. 제목에 마침표를 쓰지 않는 것은 "원칙으로 한다"인 것이다.
다른 함축된 의미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가 담겨 있겠다.
한국에서도 흥행한 "너의 이름은."이라는 제목을 가진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다.
서술형으로 끝난 문장을 가진 제목도 아닌데 일본어 제목이건 한국어 제목이건 제목에 마침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특별히 의도한 표현이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077487&memberNo=29949587&vType=VERTICAL
자아~ 그러니까, "작가의 특별한 의도"를 반영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제목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게 좋겠다. 의도가 있다면 제목에 마침표를 썼다고 틀린 표현은 아니다. 최종 선택은 작가님 본인의 몫이다.
마침표 이야기를 꺼낸 김에 하나 더 강조하고픈 이야기.
마침표는 연월일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다수의 문서에서 "일"에 해당하는 마침표를 생략해서 쓰는 것을 자주 본다. 아래 해설서처럼, 일자 다음에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1919년 3월 1 처럼 쓰다 만 것이 되니까 연월일 대신 점을 찍을 때는 신경 써서 끝까지 다 찍어주자. 이건 "마침표를 찍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권고조항이 아니라 "생략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 강제조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