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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Nov 04. 2023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태극기 그리는 법"

한 번 그려보셔요. 진짜로요.

 의도치 않게 갑자기 고위직이 되어버린 바람에 이런저런 정부행사나 국제행사에 참석할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누군가 잘못 사용한 대한민국 태극기나 우리회사 로고를 볼 때면 마음이 정말정말정말 불편하다.


 분명 저 행사를 기획한 사람은 한국인이거나, 최소 우리회사 관계자 아니면 협력관계자일 텐데 조직의 상징인 로고 사용에 왜 저다지도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뭐, 알아보고 비슷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조직의 상징인 로고는 정말 중요하다. 그 전체에 조직의 철학, 문화, 자긍심, 무게감, 이미지, 지향점 등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래 예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생각한다.



 균형 잡히고 깔끔한 애플 오리지널 로고. 비슷하지만 기괴한 느낌마저 드는 애들 장난감도 안 되어 보이는 오른쪽 로고. 오른쪽 로고는 오리지널 로고에서 장평비만 좀 과하게 손댄 건데도 저런 질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https://brunch.co.kr/@ragony/213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대통령 순방 행사 때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태극기가 보여서 쓴소리를 좀 했었다. 내가 총대 메고 좀 쓴소리 해 대면 그래도 조금조금 개선과 발전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점점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태극기가 점점 더 많이 보인다. 한 번 불편한 게 눈에 들어오니 그것만 들어오는 걸 수도 있다.


 안 되겠다. 내, 이참에 "태극기 정확히 그리는 방법" 강의 좀 해야겠다.




1. 장평비 2:3의 사각형을 그린다.

 시작이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중요하다. 이거 하나만 지켜도 50%는 했다.

 정말 다수의 인쇄물에서 이걸 안 지킨 국기들이 보이는데, 진짜 기본은 좀 하자.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게 사실 실수가 좀 잦은 이유가, 전 세계 국기들이 가로 세로 장평비가 다 동일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그런데 편집자나 행사 기획자가 이걸 상식으로 장착하고 있지 아니해서 최종 결과물에 문제들이 생긴다. 회사 로고든 타 국가 국기든 다 죄다 표준 사각형에 때려 박고 안 들어가면 좌우로 상하로 잡아 늘려서 맞춰버리고 끝내는 경우를 매우 잦은 빈도로 본다.


 장평비만 잘 맞춰도, 최소한 태극기의 신성한 동그라미가 타원으로 찌그러 질 일은 안 생긴다.

 말이 나온 김에 1:2 장평비의 국기들을 좀 살펴보자. 위 사각형을 보면 느낌이 오겠지만, 우리 태극기보다 확연하게 긴 느낌이 온다.


 대표적인 예가, 저기 북쪽나라 깃발.

 아니지, 우리나라는 저 북쪽땅에 사는 사람들의 단체를 "나라"라고 인정한 바 없으니 "북쪽나라"라고 말하면 안 되겠다. "인공기"를 불손하게 게시해도 "국가보안법"에 의거해서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따로 올리진 않겠다.(현행법에 의거, 인공기를 소지하기만 해도 처벌받을 수 있으니 이건 민감한 건이다.)


https://namu.wiki/w/%EC%9D%B8%EA%B3%B5%EA%B8%B0


 필리핀 국기도 1:2의 장평비를 갖춘 국기다.



 그냥 딱 봐도 우리 국기와는 가로 세로 비율이 다름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2:3이 아닌, 3:4의 장평비를 갖춘 국기를 표준으로 채택하는 국가들도 종종 있다. 이런 국기는 우리 나라 국기보다 좀 통통해보인다. 산마리노, 가봉, 파푸아뉴기니 같은 국가들은 3:4 비율의 국기를 사용한다.


https://www.fmkorea.com/best/2863707684


 미국은 특이하게 19:10이라는 신박한 비율의 국기를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태극기 보다가 미국 국기를 보면 항상 좀 길게 느껴진다.



2. 정원을 그린다.


 먼저 네 귀퉁이에서 맞은편 모서리를 잇는 보조선을 살짝 그리고 중심을 찾는다. 세로 길이가 2라면, 지름 1 크기의 정원을 그린다.

 중요한 것은 타원이 아니다. 정원이란 거다.

 사실 타원을 그리기가 정원을 그리는 것보다 180배는 더 어려울 것 같은데, 타원 태극이 그려진 태극기를 매우 잦은 빈도로 본다. 이게 다 1번에서 장평비를 안 맞추고 편집자나 행사기획자들이 지들 맘대로 원본 이미지를 잡아 늘린 결과이기 때문이다.


3. 원 안에 내접원을 그린다.


 지름 1짜리 중심원 안에 지름 0.5짜리 내접원을 그린다.

 중요한 것은, 내접원의 중심이 원의 중심을 관통하는 수평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왼쪽 상단 꼭짓점과 오른쪽 하단 꼭짓점을 이은 사선 위에 내접원의 중심이 위치해야 한다. 그래야 익숙한 태극곡선을 그릴 수 있다.


4. 원지름 1.5짜리 안내원을 그린다.


 이제 건곤감리 4괘의 위치를 찾기 위한 작업이다.

 태극원 지름이 1이라면, 1.5 지름을 갖는 안내원을 그린다. 나중에 다 지울 거니까 살짝 그려야 한다.


5. 4괘를 배치한다


 "건"에 해당하는 삼선(아디다스 마크가 아님)의 규격은 가로 1/2, 세로 1/12짜리 긴 검정막대기 세 개다. 각 막대기의 간격은 1/24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절대 수치가 아니라, 국기의 세로 비율이 2라고 했을 때 거기에 비례하는 수치이다.

 각 괘는 지름 1.5짜리 안내원에 외접해야 하며 꼭짓점끼리 이은 사선과는 정확히 90도 각도를 이루어야 한다. 외접, 수직. 이거 기억하자. 중요하다.

 나머지 "곤", "감", "리"에 해당하는 막대기도 그려준다. 막대 사이의 수평 수직 간극의 비율은 "건"과 마찬가지로 1/24을 지켜서 그린다.

6. 이제 가이드라인을 지운다.


 대충 익숙한 이미지가 완성되어 간다.

7. 색칠한다.


 빨간색, 파란색으로 태극을 색칠한다.

 중요한 건, 여기서 빨간색 파란색이 "원색"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극기의 표준 색도는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별표 2에 규정되어 있다. 조금 가볍게 느껴지는 원색보다는 진중한 기품이 느껴지는 약간 어두운 빨간색, 약간 어두운 파란색이 표준 색상이다.


출처 : 나무위키


 사실 모니터에서 태극기를 표기하는 것에는 좀 문제가 있다. 물감의 색과 빛의 색이 다른데 빛을 섞어 색을 표현하는 코드인 RGB값으로는 태극의 색상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태극기 색상에 대한 RGB값을 정의하는 공식 법령이나 국가규정이 없다. 다만, 공식표준은 아니지만, 국가기술표준원에서 표준색상을 제시한 적이 있긴 하니, 그걸 따르도록 하자.(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국기 색상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재정의하는 대한민국 국기법 개정안을 발의할 거다.)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제시한 태극기 색채가이드 (출처 : 나무위키)


 파워포인트에서 마우스로 한 땀 한 땀 팔 달달 떨어가며 칠하려니 뭐가 좀 안 깔끔하긴 하지만 성의로 봐주시길.(나도 다른 어플에서 페인트통 기능을 쓰면 공간을 채워 채색하는 것 정도는 쉽다는 걸 모르진 않으나 그냥 손으로 칠해보고 싶었다.)



 색칠하고 완성본. 작도가 가능한 CAD 같은 툴을 쓴 게 아니라 파워포인트에서 감으로 그리다 보니 건곤감리 간극비율 자체가 아주 미묘하게 살짝 떠 보이고, 정교한 마우스 제어를 실패해서 색이 조금조금 튀어나갔지만 100% 작가가 직접그린 수제 태극기이니 정성만 예쁘게 봐주시길.





 이번에는 복습.

 제대로 된 태극기인지 아닌지 단박에 알아채는 방법.


1. 장평비 2:3인가?

 - 눈으로 가상의 정사각형을 만들고, 세로에 두 개, 같은 사이즈가 가로 세 개 들어가면 맞다. 자주 신경 써서 보다 보면 2:3인지, 3:4인지, A4규격인지 등은 귀신같이 알아채는 눈썰미가 생긴다.


2. 태극원이 정원(완전한 원, Perfect Circle)인가?

 - 태극기에 타원 재료 안 쓴다. 혹시 어딘가 타원 태극기가 있으면 정갈히 폐기 후 정품을 들이시길.


3. 태극원의 사이즈가 너무 크거나 작지 않나?

 - 태극원을 가상으로 종이 귀퉁이로 옮겨본다. 세로 기준으로 태극원 두 개가 꽉 들어차면 정상이다. 남거나 모자라면 안 된다.


4. 건곤감리가 잘 명기되어 있나? 위치와 두께는 정상인가?

 - 가끔 3,4,5,6 건곤감리 안 지키고 3,3,3,3으로 되어 있는 태극기도 봤다.(미치겠다 진짜)

 - 건곤감리 사각형이 너무 두꺼운지, 얇은지, 간극은 적절한지 잘 살펴보자.

 - 건곤감리 사각형은 가상의 대각선과 완전히 90도 각도로 배치되어야 한다.


5. 색상은 차분한가?

 - 건곤감리는 회색 아니다. 완전한 검은색이다.

 - 태극의 빨강, 파랑은 원색이 아니다. 진중하고 묵직한 어두운 빨강, 어두운 파란색이다. 역시 정본을 자주 정성 들여 보다 보면 짝퉁 색상이 단박에 눈에 들어온다.







 모든 게 정갈한 대한민국 태극기이다.


 그리기 수업 잘 따라오셨으면 국기 안에 숨어있는 작도선들이 보이게 되실 거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태극기는 최고의 권위와 자부심이 담긴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국기를 대충 적당히 취급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그게 우리 손으로 벌어진다면 스스로의 자긍심을 떨어뜨리는 일이며 다른 나라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면 국격 자체를 모독하는 일이다. 국기를 신성시 취급하는 것은 국민이라면 지켜야 할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잘못된 태극기들이 많이 보인단 말인가. 태극기 교육은 초등학교 때 받고 나면 끝인가? 아니 최소한 업계 디자이너들이나 행사 기획자들은 신경을 극도로 써야 할 문양이지 않느냔 말이다.


 국가공무원 채용시험을 칠 때나 임명직 공무원 의무직무교육을 받을 때, 태극기 그리는 법에 대해 문제를 내고 반드시 재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해 본다. 선출직 공무원은 어쩐다... 아, 그러면 되겠다. 선거 입후보자 등록 시 손으로 그린 태극기를 첨부할 것. 잘못 그려 첨부하면 자격 박탈. 차후 다른 사람이 대신 그려 준 걸로 드러나도 자격 무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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