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항공 탑승 시에는 코로나 음성임을 증명하는 PCR 검사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너무 미리 발급받으면 안 되고, 탑승 항공기 출발시간 기준 48시간 이내 검사분이어야만 되는 까다로운 규정이다. 아, 그래서 수요일 새벽 비행기를 타라고 한 거구나...
월요일 아침에 검사하면 화요일에 겨우 검사 결과가 나오니까. 나는 인사발령일이 12.20. 월요일이니 발령일로부터 5일간은 근태가 자유롭다. 월요일부터는 회사를 안 가고 출국 준비에만 전념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인근 선별 진료소인 한일병원으로 향했다. 미리 간다고 갔는데도 9시 전부터 줄이 길다. 하ㅡ 요새 난리긴 난리구나. 줄 서있다가 옮으면 어쩐다? 겁이 좀 나서 마스크를 다시 고쳐 썼다. 30분쯤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왔다. 보건소 검사 권고 대상자가 아니면 유료검사 해야한단다. 회사에서 돈 줄 건데 노 프라블럼. 검사비용은 78,560원. 출국 대비 검사이니 영문 증명서를 발급해 달라고 하니, 이 또한 수수료가 붙는다. 비싸지 않아 다행이다. 1천 원 추가 결재. 영문 증명서에 여권번호 써야 하니 여권 달랜다. 아니 이건 아무도 말 안 해줬는데? 순간 당황했지만, 여권사진 스마트폰에 찍어두었다. 사실 신분증을 사진으로 찍어 폰에 보관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인데 이럴 때는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어쨌든 찍어둔 여권사진으로 문제 해결. 늦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영문증명서를 이메일로 보내준댄다. 아, 그럼 또 올 필요 없네? 바쁜데 잘 되었다. 음... 설마... 설마설마 내가 확진자일 리는 없겠지? 거주지 주변에도 이미 확진자가 퍼질 대로 퍼진 마당에, 무증상 감염자도 많은 마당에 그게 내가 아니라는 확신은 가질 수 없으니 막상 검사하고 나니 걱정이 살살 된다. 만일 확진자라면 모든 계획이 다 꼬인다. 닥치면 생각하고 생각하지 말자. 회사 규정상 사전검사를 하게 되면 회사에 보고를 해야 한다. 사전검사 신고서를 써서 회사에 알렸다. 이제 면죄부(음성확인서)만 기다리면 된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그럴 리 없어.
오후에는 본사 들러 마지막 하직인사를 하러 갔다. 사실 내가 가는지 마는지 큰 관심들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쉽다. 한동안 못 볼 사람들이고 날마다 가족보다 더 붙어 지내던 사람들인데. 깔끔한 인상 심어주고 가려고 정장에 타이까지 갖추고 전 층을 다 돌았다. 딱 “잘 다녀오겠습니다.” 만 하려고 했는데, 중간중간 격려 말씀해 주시는 분들을 뿌리칠 수가 없어 여기저기서 말씀 나누다 보니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해지기 전에 오늘만큼은 일찍 가려고 했는데 마지막 날까지 늦게 들어가네... 딸내미가 왜 늦게 오냐고 전화통에 불이 난다. “갑니다. 아빠 가고 있어요.” 딸. 아빠는 항상 바쁘단다. 놀고 있는 게 아냐.
이제 인사도 다 돌았다. 만일 만일, 내일 코로나 사전검사에 양성 나오면 내 인생도 망했지만 본사도 망했다. 전 층 다 돌았다. 괜히 돌아다니며 인사했나? 또 걱정이 된다. 만의 만의 만의 하나지만 양성이면 슈퍼 울트라 전파자로 회사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리라. 아닐 거야. 아니고 말고.
딸내미가 아빠를 애타게 찾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내일 떠나니 오늘 아빠랑 맛있는 거 먹잔다. 그래, 오늘 뭔들 못 사주겠니 딸. 그동안 같이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해 아빠가. 딸이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 이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다.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더해져서 무척 좋아라 한다. 파스타, 리조또 각 하나씩 시켰는데 역시 어른 메뉴라 둘이 먹기 양이 너무 많다. 다 못 먹었다.
아빠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스스로 찾아갈 리 없으니까 나온 김에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가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버지 두 분 누나까지 모두 작은 진주 소도시에 살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20분이면 뵈러 갈 수 있어 참 좋다. 딸내미와 할머니 할아버지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내친김에 큰누나가 일하고 있는 홈플러스 가서 쇼핑 겸 인사하고, 딸내미는 용도도 많이 벌고 신났다. 여기저기 돌아댕기다 들어가니 이제 밤 10시다. 어. 짐 아직 다 안 쌌는데. 마지막날 오전까지 짐 싸게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