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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20. 2022

파키스탄 행 출국 짐싸기

2021.12.16.~12.19 이야기

 미리 얘기하지만 나는 정리랑은 거리가 좀 많이 먼 사람이다.     


 거기에 모든걸 아끼고 모으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비닐봉지, 종이조각 하나 잘 못 버리고 차곡차곡 모으는 스타일이다. 주변에 이런사람 한둘 꼭 있기 마련인데, 공통점은? 짐이 너무 많다. ㅠㅠ     

 나도 알고 어머니도 안다. 그 많은 짐들을 어차피 다 안 쓴다는것을. 그런데 그걸 버리자니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그렇게 타협하며 산다. 그래... 안쓰면 어때. 마음 편한게 제일이지 뭐.     


 어쩌다 마누라가 나 몰래 내 물건을 몰래 버리기라도 치면 난리가 난다. 마누라가 버린 물건 도로 주워오기도 부지기수로 했다. 가끔 뭔가 많이 없어진것 같은데 그게 뭔지 딱 꼬집을수가 없어서 마누라한테 물어볼수가 없는데, 나 없는 동안 뭔가 버렸던게 확실한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물증이 없다.     


 음식도 매한가지라 오래된 음식을 잘 안 버리고 그걸 꾸역꾸역 먹어대서 탈이 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한 번 크게 아픈 다음부터는 오래된 음식을 눈 딱 감고 버리는 편이다. (그래도 쉽지는 않다.)     

 내 성향이 이런데, 이민에 준하는 짐을 쌀 엄두가 나겠는가? ㅠㅠ     


 그렇다고 단신부임인데 체면 안서게 컨테이너 이삿짐을 신청할 수도 없고(전례가 없댔다), 관례대로 40kg 항공위탁 수하물 꾸려서 가는게 최선이었다. 그나마 단골 여행사가 호의를 베풀어 돈 안받고 45kg까지 수하물을 늘려줬다.     


 출국하기 마지막 주 금요일까지 승진축하주, 송별주 하느라고 거의 날마다 술자리가 빠지지 않았다. 나를 축하해주고 내가 떠나는걸 아쉬워서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인데 내가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초청에 감사할 따름이나 그렇게 술자리를 자주해도 만나볼 사람 절반도 못 만나고 온 것 같다.     


 날마다 술자리를 했으니, 당연히 집에 들어갈 시간은 부족하고, 몸도 맘도 피곤하니 짐 쌀 엄두는 더더욱 안 나고 완전 악순환이었다.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12월 초에서 20여일 더 받아 12월 22일로 출국일을 받아왔는데, 준비할 시간에 술만 퍼먹고 정작 출국준비를 별로 못했다. 그나마 시간이 날만한 주말마다 백신맞고 퍼져서 침대에서 꼼짝달싹 못했다.     


 날짜는 다가오고. 안되겠다. 출국 전 주 목요일 금요일에 눈 딱 감고 휴가를 냈다. 더 붙잡혀 살다가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항공수하물은 무턱대고 막 쌌다간 안 된다. 수하물 규정부터 꼼꼼하게 봐야한다. 위탁수하물 규정은 45kg까지, 기내수하물 규정은 7kg이하에 작은 손가방 하나. 배터리 들어가면 안 됨. 노트북 등 민감한 전자기기는 가급적 기내수하물로 보내야 뒤탈이 없댄다.     


 내가 구매한 카타르 항공편은 노트북 가방도 기내수하물로 취급한다는 규정이 있어, 노트북가방을 메고, 기내수하물용 트렁크를 또 가져가는게 불가능했다. 각종 블로그 정보를 보면 안 깐깐할때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대는데, 기내트렁크에 카메라 백팩 소지한 승객이 탑승거부 당했다는 얘기를 보니 소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업무용 노트북과 개인용 노트북 두 대를 가져가는데, 노트북 두 대와 주변 액서서리(가방, 파우치, 충전기, 멀티허브, 마우스, 패드 등)만 넣어도 가방 무게까지 합쳐서 7kg가 넘는다. 아, 기내수하물은 노트북으로 끝이구나. 공간이 남는데도 더 넣을수가 없다. 보조배터리, 충전케이블, 외장HDD등 작지만 민감하고 무거운 것들은 보조가방에 넣고 메고가기로 했다.     


 위탁수하물은 큰 트렁크, 중간 트렁크 두 개와 골프백 하나. 총 세 개를 보내기로 했다. 개수는 상관없고 총 무게만 45kg 넘기지 말라고 했다. 가져갈 물품은 대충 이렇다.

ㅇ 속옷, 양말, 긴팔 외출복, 반팔 외출복

ㅇ 구두, 안전화, 골프화, 운동화(신고가기)

ㅇ 정장, 정장허리띠, 캐쥬얼허리띠, 넥타이, 셔츠

ㅇ 비상약, 쓰던 화장품, 손톱깎이, 칫솔치약, 면도기, 반짓고리 : 샴푸, 면도거품 등은 무게도 무겁거니와 부피도 커서 제외. 설마 안 팔겠어. 가서 사야지.

ㅇ 영문 재직증명서, 국제운전면허증, 여권, 비자, 증명사진 몇 장

ㅇ 백신접종증명서, 코로나 PCR 음성확인서(48시간 이내)

ㅇ 동하계 근무복, 선글래스

ㅇ 때밀이타월(이건 외국에서 구하기 진짜 힘들다)

ㅇ 먹거리(라면,통조림,김치,된장,고추장,미역,건어물,김 등 외국에서 사기 힘든 것) : 나는 이건 포기하고 하나도 안 쌌다. 비위가 좋은 편이라 굶어죽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ㅇ 마스크 : 한꺼번에 너무 많이 싸가면 통관에 걸려서 세금낸다고 했다. 후진국에서는 잘 구해봐야 덴탈마스크 정도이고 한국식 KF94 새부리 마스크 못 구한다. 수백개 들고갈 수는 없어서 적당히 넣었다.

ㅇ 책 : 야심차게 준비한 우르두어 첫걸음, 토익교재 등. 가서 말은 하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ㅇ 환전 : 일단 가자마자 살 게 많을 듯 하므로 1,000달러 준비. 신용카드 되는곳이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골프장 입장료, 레슨비 모두 현금만 쓴다고 했다. 달러 가져가서 환전. 파키스탄 루피화는 국내에서 환전하기도 어렵다.     


 2021.12.21. 화요일 오후 14:34분 진주역 출발 KTX로 서울가는 교통편을 확정예매했다. 원래 인천공항 가는 차편은 공항리무진이 원래 제일 편하다. 무거운 트렁크를 이리저리 옮길 필요없이 버스에서 한 숨 자고나면 딱 공항에 도착할 수 있고, 도착하자마자 공항 무료카트를 쓸 수 있어 짐 많은 지방여행객에겐 다른 대안이 별로 마땅치 않다. 허억... 인천공항 리무진을 찾아보았는데 원래 있어야 할 차편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코로나탓에 공항 이용객이 급감해서 공항리무진 버스도 망했다. 고속버스와 KTX 대안이 있는데 비용은 비싸지만 KTX가 역사 안에서 공항철도와 연결되니 그나마 편할 것 같았다. 사실 그 이상의 대안은 없다.      


 14시 반 기차면 대충 집에서 14시에 나가면 되겠지. 출발 일시까지 정한 다음에 정작 출국짐은 12.16. 목요일부터 싸기 시작했다. 이거 보면 이것도 가져가야겠고 저거보면 저것도 가져가고 싶고 옷이 뭐 얼마나 무겁겠어 하면서 막 싸기 시작했는데 봉지 봉지 담다보니 역시 안 들어간다. 지금부터는 덜어내기. 겨우 싼 짐의 절반을 덜어내야 한다. 겨울외투는 딱 하나, 너무 두껍지 않은걸로 그냥 입고가는걸로. 나머지 다 제외. 긴팔 셔츠는 딱 네벌만. 넥타이는 딱 두 개만. 트레이닝복은 하의만 딱 두 개만. 생활복 티셔츠도 딱 두벌만. 뭐든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런식으로 절반씩 덜어냈더니 겨우 짐이 들어간다. 짐 싸는게 힘든게 아니라 가져갈 것 두고 갈 것 마음 정리하기 너무 힘들었다. 이건 스스로 해야지 누가 해줄 수 있는게 아니다. ㅠㅠ 이렇게 넣었다 뺐다 쌌다 풀었다 하는 과정이 주말 내내 걸렸다.     


 짐을 반 쯤 싸다보니, 트렁크 세 개에 골프백 하나, 도합 45kg을 혼자 어떻게 서울까지 가져가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일요일 오전까지 항공수하물 걱정만 하다가 집에서 공항까지 짐 보내는게 도저히 혼자서 들고 갈 수 없는 분량이란걸 짐을 싸보니 자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민족이 원래 배달의 민족 아닌가. 택배 서비스가 우리나라만큼 잘 된 곳이 또 어딨어. 오늘 부르면 내일 와서 모레 공항에 갖다주겠지. 걱정없이 공항택배를 검색해보니, 4영업일 전에 연락하라고 적혀있다. 망했다. 2영업일밖에 안 남았다. 택배 보내고 공항가면 짐은 오고있고 나만 도착해서 몸만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거다. 다시 후회가 된다. 미리 안 알아보고 뭐 했을까. 사람이란게 참 간사하고 우둔해서 눈앞에 벌어지기 전에는 당췌 걱정도 생각도 안 나나 보다. 누구를 탓하랴.     


 아, 어쩐다. 이럴 경우 긴급 택배 어디 없나? 그래. KTX특송이 있지. 적어도 서울역까지만 미리 보내놔도 훨 나을거야. 그래서 찾아보니... KTX특송이 있기는 한데, 진주역에서는 서비스가 안 된다. 망할. 이것도 포기. 고속버스 화물 특송은 내가 거기서 받아서 도로 지하철 타고 이송할 자신이 없다. 이것도 포기.     


 나같은 사람 또 있겠지. 답은 언제나 인터넷에 있어.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나같은 사람이 있다! 대형택배 말고, 여행택배에 특화되어 지방도 2영업일 이전에만 신청하면 공항배송이 가능한 곳이 있다. 대신 좀 비싸다. 지방 기준 한 꾸러미에 5만원. 아, 보내주는게 어디냐. 트렁크 세 개에 골프백 하나, 손가방 하나 이렇게는 혼자 절대 못 가져간다. 세르파 한 사람 고용하는 셈 치면 더 싼 편이니 눈 딱 감고 불렀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 개 보낼까 말까 하다가 앞 단위가 10만원으로 넘어가는 현실을 자각하고, 내가 가다 짐에 깔려죽어도 들고가야지 마음먹고 딱 하나만 보내기로 했다. 바퀴없는 골프백만. 아무튼 짐 문제도 절반은 해결했다. 손이 두 개인데, 트렁크 세 개는 못 밀지. 큰 트렁크 위에 작은 트렁크를 쌓아다 밀고가면 답이 될 듯 했다. 그냥 밀면 불안하니, 중간 이동시 떨어지지 않게 꽁꽁 묶을 고무줄과 가위도 챙겼다. 그래, 이렇게 하면 돼.     

 이제 마음을 좀 놓고 기다리니, 월요일 아침에 업체연락이 와서 골프백을 싣고 갔다. 다행이다. 공항에서 만나자. 팔자에 없는 골프인생이 스타트부터 힘들구나.


지방 소도시 진주에서 골프백을 아침에 보내고 다음날 오후에 공항에서 찾을수 있었다.

 

 이제 짐 무게를 재어보자.

 큰 트렁크 22kg, 중간 트렁크 13kg, 이미 보낸 골프백 13kg. 아, 그렇게 다이어트 했는데도 총 중량 3kg 초과다(최대 45kg 제한). 안 되겠다. 더 빼자. 일단 골프백에서 골프공을 절반으로 줄였다. 골프채를 포함한 골프잡화는 한국이 품질도 더 좋고 더 싸다고 해서 로스트볼 100개도 같이 사서 가려고 했는데 공이 무겁다. 반(50개)만 가져가는걸로. 골프공 하나가 대충 46g이니 2.3kg 다이어트 성공. 의외로 책이 무겁다. 책을 싹 뺐다. 3권 빼니까 2kg 감량. 한권은 도로 넣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야... 체중계가 무슨 신뢰성이 있다고. 1kg은 보험으로 아껴두자. 결국 책도 다 뺐다. 정 보고싶으면 인터넷으로 전자책 빌려서 노트북으로 보자고.(이미 이때부터 공부할 마음이 싹 없어졌다. 해외가서 공부는 무슨 공부... 살아남기 바쁠텐데. 역시 빠른 자기합리화.)     

 이제 짐 다 쌌다. 짐 다 싼 시간이 떠나기 한시간 전이다. 다 싸서 싼게 아니라 출발시간이 임박해서 될대로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덮었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벌써 너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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