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은혜로운
(이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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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9일 화요일.
파리 여행 엿새 차. 총 여정 11일 차.
오르세 미술관 오픈런 관람 후 늦은 브런치(어쩌면 런디너) 해결하러 동네 식료품점 겸 밥집 Da Rocco 찾아가서 밥 먹고 온 이야기.
저도 압니다.
미술관 얘기 길게 길게 하는 거 지겹고 힘들다는 거요.
그거보단 먹는 얘기가 재밌죠.
오르세 미술관을 다 보고 나왔더니 무려 오후 3시가 넘어버렸습니다. 오전만 알차게 보고 나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것도 봐야지 저것도 봐야지 욕심을 부리다 그만 시간을 넘겨버렸습니다.
목마르고 배고픕니다. 미리 봐 둔 서민밥집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https://maps.app.goo.gl/FoAutqdq2Qj2d6oX9
구글신 덕분에 오르세 미술관에서 걸어 찾아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어림 1km쯤 떨어져 있네요.
Da Rocco는 식당이라기보다 동네 식료품점입니다.
프랑스풍이 아니라 이탈리아식 식재료와 음식들을 포장해서 팔고 있네요.
가게는 크지 않습니다. 홀 내 식사도 가능하긴 하지만 최대 8명 수용이 한계처럼 보이는군요. 주력 장사 아이템은 식료품 판매입니다. 미리 만들어 둔 빵, 쿠키, 샌드위치, 파스타들도 덜어서 판매하는군요.
메뉴판 나왔습니다.
이제 시켜보겠습니다.
......
아니 뭘 알아야 시키지. 이탈리아 음식 이름을 프랑스어로 써놨네.
음식점 메뉴판은 제발 좀 '사진+설명+아라비아 숫자로 가격' 이렇게 통일 좀 합시다. 미리 비주얼 좀 보고 주문하면 안 될까나요.
일단 대충 번역기 돌려보고요.
라자냐 기본하고 파르마 햄+모차렐라 치즈 세트 시켜봅니다.
감자 크로켓 추가했고요, 음료는 따로 안 시켰습니다. 탭워터 먹었어요. 음료 안 시킨다고 눈치 주지 않았습니다.
주인장 할아버지. 영어는 못 하셨지만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웃음으로 반겨주시며 친절하셨어요.
Parma는 이탈리아식 햄의 한 종류입니다. 비주얼이 육회 생각이 좀 나기도 하네요.
가운데 올리진 건 모차렐라 치즈구요. 파란 풀이 roquete라는 명칭인가 봅니다. 열량 높아 보이네. 일단 비주얼도 합격.
식전빵과 올리브유는 기본 세팅입니다. 주문한 거 아님. 서비스.
라자냐는 딱 상상했던 그 맛과 비주얼이었습니다. 넓직한 파스타면 사이에 고기가 층층 올려진.
치즈 들어간 감자 크로켓 역시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익숙했던 맛.
다 차리니 근사합니다. 이만하면 푸짐하지요.
고럼 맛있게 잘 먹어보겠습니다.
이게 얼마만에 먹는 식사냐.
손님은 우리밖에 없던 소박한 식당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순 없습니다. 밥 먹는 와중에도 가방 채어 갈까 봐 꽁꽁 묶어놓고 가방 한쪽 클립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습니다.
식사에 정신 팔린 동안 가방 낚아채어 가는 건 여기선 아주 일상이거든요.
냠냠 맛있게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역시 고기가 들어가니 힘이 좀 나는 것 같네요.
라자냐 12유로
파르마 햄 세트 15.8유로
크로켓 3.6유로
합계 31.4유로입니다.
세금 팁 봉사료 기타 등등으로 장난 안 치고 깔끔하게 받는군요.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두 사람 배불리 실내에서 따끈한 고기음식 먹고 요 정도 나왔으면 은혜로운 가격 맞습니다.
아직 갈 곳이 세 군데나 남았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습니다.
빨리 움직여야겠습니다.
※ 다음 이야기 : 비 오는 날의 로댕 미술관 관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