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원이라는 돈이 아주 크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그 돈을 지갑 하나에 쓰는 걸 선뜻 결정할 수 없던 시절의 일이다. 결혼 후 첫 여행지였던 홍콩에서, 나는 지갑을 들었다 놨다 하며 한참을 망설였다.
2007년의 홍콩은 쇼핑의 천국이라 불렸다. 특히 명품을 한국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나는 명품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을 가질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명품 지갑 하나 없는 게 마음에 걸린다며 이왕 홍콩까지 왔으니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 사주고 싶어 했다.
계속 거절할 수 없어 구경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구찌 매장에 들어갔다. 지갑이 진열된 곳 앞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유독 시선을 끄는 지갑 하나를 발견했다. 지갑 전체에 작은 구찌 로고가 음각으로 새겨진 연회색 반지갑이었다. 양가죽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과하지 않은 디자인이 마음을 붙잡았다.
가격은 약 40만 원. 당시 우리 부부의 월급은 각각 200만 원 정도였다. 지갑 하나가 월급의 5분의 1이나 되는 돈. 그 돈을 지갑 하나에 쓰는 일이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내 눈빛을 알아챈 남편은 “이왕 홍콩까지 왔는데 하나 사. 사주고 싶었어.”라고 말하며 권했다. 하지만 "그래. 고마워."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우리 소득에 비해 큰 지출이라는 생각에 지갑을 들었다 놨다 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점원에게 대뜸 사겠다고 말해버렸다. 그 순간 실랑이를 벌이자니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남편을 향해 씩 웃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명품 지갑이 내 손에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고 카드와 돈을 넣던 순간, 기분이 묘했다. 돈을 많이 벌어 이런 걸 마음껏 사고 싶다는 생각보다, 애초에 관심을 두지 말자는 마음이 더 컸다. 그 지갑은 연회색에서 진회색이 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다.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마주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두른 엄마들이 많았다. 돈이 있어도 쉽게 살 수 없는 특정 모델의 에르메스 가방, 보석이 촘촘히 박힌 롤렉스, 샤넬로 온몸을 치장한 모습들에 솔직히 주눅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형편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그때마다 비교라는 감정에 굴복해 명품에 돈을 썼다면, 나의 파이어족 합류는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명품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보이는 것들이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만약 누군가 내가 타는 차와 내가 입고 들고 있는 것으로 나를 평가한다면 그 사람과는 굳이 인연을 맺고 싶지 않다. 어차피 쓰레기가 될 물건에 큰돈을 쓰기보다는 삶의 의미를 안겨주는 경험에 돈을 쓰고 싶다.
또, 24시간 나를 위해 일해주는 소중한 돈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그 돈을 내 일꾼으로 써서 자산을 늘려나가는 과정이 훨씬 재미있고 설렌다. 내 돈이 더 가치 있게 쓰일 자리를 찾아 보내는 일이 더 큰 만족감을 준다.
자기 계발을 위해 여러 책을 읽으며 생각을 단단히 하는 시간이 쌓인 덕분이기도 하다. 이제는 명품으로 가득한 자리에 에코백 하나만 들고 나가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시아버지께서 처음 사주신 모닝을 타고 그런 자리에 나가는 상상을 한 적이 있는데, 상상 속의 나는 아주 당당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나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나를 만든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시선은 밖이 아니라 점점 안으로 향해왔다. 지금도 내 안을 채우기 위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정성껏 보낸다. 물질이 채워줄 수 없는 삶의 본질을 채워가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요즘 가장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은 시어머니와 친구가 떠준 뜨개 가방이다. 겨울인 지금은 내가 고른 색감의 실로 중학교 때 친구가 한 코 한 코 정성을 담아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닌다. 초록과 보라, 색깔도 두 가지라서 옷에 따라 바꿔 들기에도 좋다. 아이들 학교 바자회에서 만든 ‘욜로나’ 키링까지 달았더니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이 되었다. 여름에는 시어머니께서 코바늘로 떠주신 손가방을 자주 든다. 작아 보여도 제법 많은 것을 담아내는 실용적인 가방이다.
이 가방들을 볼 때마다 나는 괜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40만 원짜리 지갑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내가 지금은 삶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할 때가 있다. 그 단단함이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방향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참 소중하다.
* 늘 연재를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