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8천만 원을 부동산에 묶어 둔 채 거의 6년을 버티는 중이다. 팔리지도 않고, 문의조차 오지 않는 땅 하나가 여전히 제주 어딘가에 있다. 그 땅을 살 때만 해도 그 선택이 이렇게 오랜 시간 내 속을 썩일 줄 몰랐다. 돌이키고 싶은 순간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그 결정을 내렸던 날을 꼽을 거다.
그날의 시작은 한 통의 전화였다.
“제주도에 좋은 땅이 하나 나왔어. 모양도 네모반듯하고, 도로도 잘 붙어 있더라.
제2공항 예정지랑도 가까워서 전망도 좋아.”
2019년 겨울, 교직을 그만둔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전화를 받은 다음 날 제주로 내려갔다. 그 당시 나는 땅을 봐도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는 눈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을 전한 사람이 부장 선생님이었다. 내가 교직에서 가장 신뢰했고, 부동산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여겼던 분이었다.
부장님은 BMW5 시리즈를 타고 다녔다. 그 시절에 결혼을 잘한(?) 여자 초등교사가 외제 차를 타는 경우는 가끔 봤지만, 남자 초등교사가 외제 차를 타는 건 본 적이 없었다. 부장님의 태도와 말투는 늘 확신에 차 있었고, 교장 선생님 앞에서도 부장님이 더 교장 같았다.
부장님과 같은 학년을 맡았을 때였다. 부장님이 이끄는 동학년 모임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연산 송이에 한우 등심을 굽고, 매달 10만 원의 회비를 내던 모임(보통은 매달 3만 원을 냈다). 제철 음식을 먹기 위해 멀리 강원도와 제주까지 여행을 떠나는 동학년. 교직 사회에서 보기 드문 분위기, 보기 드문 소비 패턴이었다.
부장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제철 고급 음식 마음껏 챙겨 먹고살려면 교사 월급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전국에 땅을 사둬야 든든하지. 이렇게 좋은 음식 먹으려고 돈 버는 거 아니겠어?”
확신은 사람을 설득한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나는 그의 말에서 ‘부자의 향기’를 맡았다. 주변에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이 부장님 한 분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남의 확신을 내 판단이라고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부장님의 말이었으니 의심 없이 제주로 내려가 땅을 보았고, 남편도 괜찮아 보인다고 하니 아무런 의심 없이 계약서에 덜컥 도장을 찍었다. 그 선택이 인생에서 가장 값비싼 수업료가 될 줄은 미처 모른 채로.
부동산 공부를 시작한 건 그 이후였다. 배우고 난 뒤에야 비로소 보였다. 그 땅은 입지도, 수요도, 미래도 명확하지 않았다. 좋은 땅이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증명되지 않았다. 부장님이 말했던 투자 포인트들은 사실상 허상이었다. 그제야 부장님은 성공한 부동산 투자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보였다. 전국에 땅을 갖고 있다고 하셨지만, 자가도 경기도 아파트 한 채뿐이었다. 땅을 산 돈으로 차라리 서울 아파트를 샀다면 훨씬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 순간은 이미 늦은 뒤였다. 그때부터 팔려고 내놨지만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겨우 한 번 연락이 왔지만, 내가 비싸게 산 탓에 그 가격에는 살 수 없다고 했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땅을 비워두면 망가진다며 누군가 농사를 짓게 해 놓겠다고 하셔서 그러라고 했다.
제주도로 이사한 뒤 거래했던 부동산을 찾아갔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내 땅을 보러 갔더니 농사짓는 분의 정보가 적힌 푯말이 꽂혀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내 연락처를 알 길이 없자 푯말을 꽂아 두신 거였다. 알고 보니 농사짓는 대가로 매년 부동산을 통해 나에게 돈을 보내셨지만, 정작 나는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나에게 전해주겠다며 돈을 받아 가 놓고 중간에서 가로챈 거다. 세상에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농사짓는 분이 수확 철마다 무, 당근, 단호박 등을 넉넉히 보내주신다. 땅은 여전히 팔리지 않지만, 싱싱한 농작물을 받아올 때마다 애써 위안 삼고 있다.
내가 내린 판단으로 인한 결과라서 어쩔 수는 없지만, 3억 8천만 원이라는 큰돈이 6년 가까이 그대로 묶여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파이어족에게 돈은 소중한 일꾼이다. 이왕이면 성과를 많이 낼 수 있는 자산에 투입해야 하는데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묶여 있으니 말이다.
문득 궁금했다.
‘만약 그 당시에 3억 8천만 원을 제주도 땅이 아닌 비트코인에 투자했다면 지금 얼마일까?’
챗 GPT의 답변이다.
비트코인 가격 변화
- 그 당시 비트코인 가격 : 약 7,200.17달러
- 현재 비트코인 가격 : 약 88,000달러 초반 (예: 88,177.68달러)
-> 3억 8천만 원 × 12.25배 = 약 47억 원
47억... 금액을 보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괜히 물었다.
이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
- 노력 없이 남의 덕을 보려 하거나 남의 확신을 빌려 판단하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 내 자금 상황과 투자 성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 사실을 깊이 깨달은 순간 이렇게 결심했다.
‘내가 나의 가장 좋은 스승이 되자.
남의 확신이 아니라 내 판단으로 살자.
남의 성공이 아니라 내 경험을 쌓아서 길을 만들자.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분석하고, 스스로 실행하는 사람이 되자.’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고, 매일 투자 공부와 실행을 이어오고 있다. 실패가 내 안에서 교훈으로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 배움이 나를 더 단단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때까지. 이 모든 과정의 반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이제는 담담히 말할 수 있다.
신수정 작가의 <일의 격>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타인의 성공 경험은 자신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타인의 실패 경험은 자신의 성공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왜일까? 대개 사람은 타인의 성공을 부러움으로 가져가지 자신의 레슨과 피드백으로 가져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의 실패는 명확한 피드백이 되고 타산지석이 된다.”
그래서 내 실패 경험이 누군가에게 타산지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나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기를, 경험을 잃지 않고 선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덧붙여 한 가지 더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시장이 어떤 모습이든, 시장에 발을 담그고 공부하면서 경험을 쌓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 남의 확신이 아니라 나만의 확신을 만들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기회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힌다. 그러니 부디 실패에서 멈추지 말고, 당신의 배움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다시 한 걸음 내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