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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비만 500이라며 한숨 쉬던
친구의 변화

by 욜로나



“넌 도대체 어떻게 돈을 불린 거야?

아... 나도 돈 좀 많이 벌고 싶다. 애들 학원비가 정말 장난이 아니야.”


모임 자리에서 오랜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처음이었다. 나는 파이어족이나 투자 관련 이야기는 먼저 묻기 전에는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에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얹는 일이 갈수록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친구의 표정에서 지침과 간절함이 느껴져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애들 학원비가 얼마나 들어?”


친구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둘이 합쳐 한 달에 500만 원쯤? 이것도 많이 줄인 거야.”



친구는 학군지에서 청소년 둘을 키우고 있는 직장맘이고, 남편 역시 직장인이다. 고등학생은 주요 과목당 학원비가 10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과외냐고 물었더니 한 교실에서 몇십 명씩 듣는 수업이라고 했다. 그러니 몇 과목만 들어도 아이 둘의 사교육비가 한 달 500만 원쯤 된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순간 내 앞에 있는 친구의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에는 끼워진 두꺼운 샤넬 금반지 두 개, 디올 가방, 샤넬 구두, 샤넬 브로치와 귀걸이. 친구의 익숙한 화려함이었지만, 그날따라 그 반짝임이 매직아이처럼 하나씩 부각되어 다가왔다. 그것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500만 원쯤 되는 듯했다.



사실 그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월급을 소비로만 흘려보내지 말고, 자꾸 자산으로 바꿔야 해.”



하지만 앞에 말은 삼켰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는 미국 우량주 투자부터 해보는 건 어때?

제대로 공부하고 시작하려 하면 시작을 미루게 되더라. 우선 마음에 드는 주식 한 주만 사서 매일 흐름을 확인하면서 기록해 봐. 그럴 시간이 없으면 지수 추종 ETF도 괜찮아.”



그리고 박종기 작가의 <지중해 부자>를 추천했다. 에세이처럼 쉽게 읽을 수 읽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주식 투자를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주식을 사고파는 방법도 중요하겠지만, 투자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니 꼭 읽어보라는 말과 함께.


그 책에 나오는 아래 내용을 특히 좋아한다.



“인생을 바꾸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는 무모함에서 나오는 거야.

다 잘 될 것 같은 일에 뛰어드는 건 용기가 아니지.

그런 건 남들도 다 하니까.

무모할 것 같은 일에 승부를 걸어 봐.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는 거야.”



내 삶의 방향을 바꿀 때도 이 책에서 말하는 무모함이 있었다. 마흔에 초등교사를 그만둘 때도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인생책을 만나고 사업과 투자를 실행한 용기도 무모함에서 나온 거였다. 그 무모한 선택이 지금의 삶을 열어준 열쇠였다.



두 달 후 모임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나 드디어 주식 사봤어. 테슬라로.”


친구의 표정이 아주 밝은 걸 보니 수익률이 좋은 듯했다. 친구가 나랑 이야기 나눈 후 테슬라 주식을 바로 샀다면, 당시 테슬라 주가는 약 130달러였다. 두 달 후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테슬라 주가는 약 430달러. 만약 친구가 한 달 학원비 500만 원과 몸에 두른 명품값 1,500만 원을 합친 2,000만 원을 투자했다면, 지금쯤 그 가치는 약 6,600만 원으로 불어나 있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관점 자체가 바뀌는 경험일 수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함께 간 여행에서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항상 머릿속엔 회사 생각만으로 가득했거든. 근데 투자 시작하고 나서 일에 대한 예민함과 스트레스가 줄었어. 투자한 돈이 많지 않아서 크게 늘진 않지만, 그냥 마음이 좀 편해졌어.


그러고 보니 여행 내내 “컨디션 안 좋다, 출근하기 싫다.” 같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습관처럼 흘러나오는 말들이었는데, 그 부정적인 말들이 사라진 자리에 작은 평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 변화를 보며 혼자 흐뭇하게 웃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선택을 용기 내어 실행했을 뿐인데 그 작은 시작이 마음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이렇듯 모든 것은 시작과 함께 시작된다.



오랜 친구일지라도 돈 이야기를 깊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돈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한 명 더 생겼다. 친구는 요즘도 투자 관련 책도 읽고 종목을 공부하며 꾸준히 투자를 실행하고 있다.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지, 행동하면 분명 잘 해낼 줄 알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친구가 예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고, 부정적인 말들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소중한 월급을 소비로만 끝낼지, 아껴서 자산으로 바꿀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단단한 삶은 거창한 전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눈앞의 작은 선택, 작은 행동이 쌓일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쌓인 날, 삶은 어느 순간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 지난 연재글 두 편이 연이어 터지면서 구독자님이 늘었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7년 동안의 제 파이어족 경험을 글로 잘 담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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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