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는 참 따뜻한 분이다. 내게도 한결같이 다정하게 대해주신다.
나는 뚜벅이 직장인이었다. 결혼 후에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다. 차로 가면 가까운 거리였지만, 지하철을 타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시아버지께서 그걸 안쓰러워하시며 모닝을 사주셨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딴 운전면허는 긴 세월 장롱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차가 생긴 거다. 그 차로 처음 출근하던 날, 창밖은 눈 부신 햇살이 가득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햇살 속을 미끄러지듯 달리던 기분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첫째를 낳고 출산휴가 중일 때 몸과 마음이 참 힘들었다. 출산 전날까지 만삭으로 출근했기에 갑자기 아이와 단둘이 집에만 있는 시간이 낯설었다. 그때 살던 동네는 유모차를 끌고 나갈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주변에는 친구도 살지 않았다. 초보 엄마라는 불안함과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겹쳐 산후우울증도 생겼다. 하루 종일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며 버티던 날들이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 잠깐 집 아래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이런 적이 처음이어서 무슨 일인가 싶어 급하게 내려갔더니 예쁜 봉투를 내미셨다. 받을 때 느낌이 꽤 두꺼웠다. 남편한테 받았다 얘기하지 말고, 오직 나를 위해 다 쓰라고 하시는데, 그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그저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그런 시아버지께 늘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마침 오래 타시던 차가 고장이 났는데, 수리비가 많이 들어 이참에 바꿀까 한다고 하셨다. 결혼 초에 남편이 돈 많이 벌면 아버지 차를 사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때는 '사드리면 좋겠지만 우리 형편에 어떻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덧 마음만 먹으면 사드릴 수 있는 경제적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가 새 차 사드리는 거 어때요?”
남편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나야 그러면 좋겠지만, 괜찮겠어?”
나는 괜찮았다. 너무 괜찮았다. 사드릴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게 기쁘고 감사했다. 돈으로 누린 경험 중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시아버지께 벤츠를 선물한 거라고 말할 것이다.
남편은 연봉이 높았던 직장인일 때도 국산 차를 타고 다녔고, 지금도 국산 차를 타고 다닌다. 차 욕심이 별로 없다고 말하지만, 각종 차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는 걸 보면 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자신은 타보지도 못한 차를 아버지께 선물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차가 나온 날,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시아버지와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남편 표정을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구나. 이런 순간을 더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부모님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뭐라도 더 해드리고 싶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경제적 자유를 향한 여정은 마침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들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베풀기 위해 오늘투자 공부와 실행을 꾸준히 이어간다.
파이어족의 삶은 끝이 아닌 과정 그 자체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여정을 오늘도 정성 들여 나아간다.
* 이번 회차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4화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