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7
인천공에서 보내는 첫 밤이 그리 나쁘지 않다. 내일 오전에 출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루를 묵기로 하고 공항 내에 있는 '다락휴'라는 캡슐호텔에 왔다.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구나 싶을 정도로 생각했던 것 이외의 깔끔하고 편안한 숙소라 감사하게도 이렇게 출국 전날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침대에 앉아 가만히 오늘의 일을 되돌아보니 감사한 일이 참 많았다. 생각지 못했던 동생들의 배웅과 기대하지 않았던 공항 리무진 아저씨의 도움, 사실 찬찬히 지나온 날들을 되짚어 보니 나의 걸음걸음에는 항상 누군가의 친절과 도움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생각지 못했던 타인의 작은 배려와 따뜻한 마음들이 있어 내가 그동안 그 많은 시간을 웃으며 걸어올 수 있었음을.
며칠 전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근황과 요즘의 생각들을 나누었다. 나는 그때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진부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로 요즘에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건지에 대해 생각해. 우리를 살게 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다 보니 그건 바로 '마음'인 것 같아.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마음이고 사람이야. 사람의 말 한마디가 어떤 사람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잖아. 그런데 그런 말들은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난 최근에 주변의 몇몇 지인들이 건네준 작은 위로와 응원에 힘을 많이 얻었어. 한 날은 너무 지쳐서 모든 걸 멈추고 싶단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냥 별것 아닌 쿠폰 선물에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서더라.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고 위해준다는 것이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적어도 나란 사람은 그래. 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거야."
그동안 나는 많은 마음들을 내어주고받기도 하고, 어떤 마음들은 버리기도 했으며 어떤 마음들은 모르고 지나치기도 혹은 알면서 모르는 척하기도 했다. 성경에도 나와있는 '지켜야 할 무엇보다 너의 마음을 지키라'는 그 말이 참 맞다고 생각했었다. 상처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지키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다. 지나고 보니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지켜온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어준 마음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준다면, 누군가를 살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지난날 내가 되고 싶다 했었던 '숨통 트이는 한 마디를 해주는 멋진 어른'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힘들었던 작년 겨울, 세상의 모든 온기를 모아서 나에게 주고 싶다고 일기에 쓴 적이 있다. 오늘 저녁이 지나면 다시 해가 뜰 것이고 나는 고국을 떠나 머나먼 섬나라로 간다.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곳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기로 했다. 새로이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기꺼이 나의 온기를 나누어주어야지. 그것이 나를 살게 하고 타인을 살게 하고 그렇게 온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