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커피 찾는 남편과 거꾸로 자는 나
나는 여자 형제도 없고 기숙사에 살아 본 적도 없어서 5살?6살?부터는 내 방에서 지금까지 혼자 잤다. 어쩌다 여행이나 외박을 할 때 빼고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잔 기억이 별로 없는데, 잠자리도 꽤 가리는 편이라 밖에서 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거의 평생을 혼자 자던 내가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자야 한다니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겪게 되는 불편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을까 싶은데 결혼한 지 6개월이 된 지금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남편이랑 문득 누구의 잠버릇이 더 심한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거의 바로 벨기에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2주 정도 먼저 벨기에로 와서 집도 구하고 기본적인 살림살이들을 준비해놓고 내가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벨기에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새벽에 추위를 느껴 남편이 일어나 보니 내가 이불을 둘둘 말아서 자고 있어서, 남편이 덮을 이불이 없었다고 했다. 시차 때문에 저녁 6시부터 깊은 잠에 빠진 나를 깨울 수도 없고, 한기를 느끼며 오들오들 잠을 청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바로 집 근처 이케아 팝업스토어로 가서 똑같은 이불을 하나 더 사 왔다. 실은 애초에 이불을 살 때 각자 숙면을 위해서 각각 이불을 하나씩 덮고 잘까 고민하다가 괜찮겠지 싶어서 하나만 샀다고 했는데 이불 쟁탈전에서 철저하게 패배한 남편이 바로 후회했다고 했다.
각자 이불을 갖게 된 후에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남편의 이불은 자기 전과 거의 같이 정갈하게 놓여있는데 반해, 내 이불은 이상하게 둘둘 말아있다. 내가 이불을 빵빵 차고 자는지 이불솜도 발 쪽으로 쏠려있다. (도대체 잘 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가끔은 이불을 거꾸로 덮고 자고 있기도 하다. 잘 때도 벽 쪽을 바라보고 이불을 반쯤 안고 자는 나와 달리 남편은 정 자세로 똑바로 잔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내 잠버릇이 엄청 심하고, 고통받는 사람은 남편처럼 보이지만 반전이 있다.
남편은 일단 거의 1분 만에 잠이 드는 사람이다. 어릴 적 아버님이 자기 전 '오늘 일을 반성하고, 내일 할 일을 계획하고 자라'라는 말씀을 하셔서 오빠도 잠이 들기 전 아버님의 말씀에 따라 오늘 일을 반성하고 내일 할 일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항상 내일 할 일을 계획하기도 전에 잠이 들어 버렸다고 한다. 매일 반성만 열심히 했던 착한 어린이였다며 농담을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잠자리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참 잘 잔다. 반면에 나는 자기 전 오늘 한 일 반성, 내일 계획은 물론 몇 년 후 계획까지 세울 수 있는 사람이다. 정말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새벽까지 보내는 일도 많다. 심호흡도 해 보고, 물도 마셔보고, 화장실도 괜히 한 번 다녀오고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고 나서야 겨우 잠들 때도 있다. 잠들기 전에 너무 머리 복잡한 일을 생각하거나, 무서운 영화를 본다거나, 기분 나쁜 뉴스를 보거나 하는 것을 자제한다. 만약에 이런 걸 본다 하더라도 꼭 행복한 웹툰이라도 한 편 보거나 따뜻한 노래라도 들어서 좋은 기분으로 잠이 들 수 있게 노력한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자면서 이러한 노력들도 통하지 않게 될 때가 가끔 있다. 바로 남편의 코골이 때문이다. 코 고는 소리가 정말 심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남편은 그 정도는 아니다. 가끔 아주 시끄럽게 골기도 하지만(대부분 술 한 잔 했을 때다) 대부분 잠들기 애매할 정도로 코를 골았다가 안 골았다가 한다. 하지만 작은 코골이도 내 귀에 대고 곤다고 생각하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처음엔 베개를 쿡쿡 누르다가, 베개를 흔들어보다가, 어깨를 흔들어보다가, 정 안되면 내가 직접 자세를 옆으로 바꿔준다. 근데 이렇게 하고 나면 내 잠이 다 깨고 만다.
남편이 자주 보는 웹툰 중에 신혼 이야기를 다룬 웹툰이 있는데, 그 웹툰에서 남편의 코골이 소리를 '커~피~'라고 표현을 했다. 남편이 이거 재미있다고 나에게도 보여줬는데, 이상하게 그 웹툰을 보고 난 후 남편의 코골이 소리가 진짜 '커~피~'처럼 들린다. 남편도 그 표현이 재미있었는지 잠에 들기 전에 요즘은 '여보, 나 오늘은 커피를 많이 찾을 것 같아.'라고 미리 경고를 하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고서도 '여보, 나 어제 커피 많이 시켰어요?'라고 물어본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 '커피는 오빠가 잔뜩 시켰는데, 잠은 내가 못 잤어'라고 투정을 부려 보았다.
이번 주 남편이 피곤했는지 커피를 하도 많이 찾는 탓에 참다못한 내가 자세를 거꾸로 바꿔서 잤다. 거꾸로 자고 있는 나와, 반듯하게 자고 있는 남편. 겉으로 봤을 땐 나의 잠버릇이 더 심해 보이지만, 이건 모두 밤새 커피를 찾는 남편의 잠버릇 때문이라는 거..... 억울한 마음에 글을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