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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Jan 26. 2024

두 번은 못하겠다 싶지만, 다시 하면 잘 할 것도 같은

가족여행. 아니 효도여행

지난 연말 가족여행, 아니 효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단 무사히 다녀온 것을 감사히, 다행으로 생각해요.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계획의 무산 등으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고 그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용솟음 치기도 했지만, 여하튼 여행은 무사히 잘 마쳤네요.

그리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것도 전부 추억이지 싶은 생각에...  

후일담 비스무리, 몇 자 적어 남겨 볼까 합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한 건 저 였어요.  

그리고 사실 원래 계획은 남편과 저, 둘만의 연말 여행이었다죠.

그런데 역시 문제는 이 사실을 양가 부모님께 알리느냐 마느냐 였어요. 시댁엔 딱히 문제될 게 없지만, 문제는 친정엄마.

"니들 또 여행이니? 돈 모을 생각은 않고 매일 그렇게 나 다니기만 하면..."

그럴 게 뻔했거든요. (7080만 아는 이럴 때 하는 말) 안 봐도 비디오 였어요.

일년에 밖으로 나가는 여행은 여름 휴가 단 한 차례만 쳐주는 엄마에게 연말 여행은 사치 그 자체.

해서 저는 구구절절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사실 우리가 곧 소멸되는 항공사 마일리지가 좀 있어. 그래서 그걸로 비행기 표도 공짜로 끊고, 호텔도 완전 반값에..."

그런데 웬걸요. 그러자 대뜸 엄마가,    

"그래? 그렇게 좋은 거면 나도 갈래. 니 아빠랑 나, 안 쓴 마일리지 많아. 아마 땡땡(저의 남동생)이랑 뚱뚱이(저의 언니)도 그럴 걸?"

그렇습니다. 혹 떼내려다가 냅다 혹이 다섯 개(엄마, 아빠, 남동생, 언니, 형부)나 더 붙어버렸어요. 졸지에 부부의 연말 여행이 가족 여행, 아니 효도 여행이 돼 버렸답니다.  


저는 일본어를 좀 할 줄 알아요. 십 년 남짓 전에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봐 오다 취미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했던 게 아까워 자격증까지 땄으나, 도로 지금은 여행 회화만 조금 하는 정도로요.

해서 전부터 애써 배운 일본어가 제로가 되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그럴 듯한 일본 여행 한 번 다녀와야겠다, 저도 늘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이게 이렇게 갑자기 성사가 돼 버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건 또 '갑자기', '느닷없이'가 제맛이긴 해요. 계획하고 하다보면 계획만 하다 끝나버리는 경우가 참 많잖아요.

그래서 이 참에 잘 된 일이다 싶어, 저와 남동생은 열심히 여행 준비를 했어요.

참고로 남동생은 찐효자예요. 분주한 아침 출근길에도 아파트 현관 앞 계단이 얼어붙어 있으면, 엄마아빠가 혹 외출길에 낙상이라도 당할까, 집으로 올라와 뜨거운 물을 길어다 계단을 녹여놓고 가는 아이예요. 그러니 노인이 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간다함은 남동생에겐 특명과도 같은 일.

남동생은 효자여서, 그리고 저는 일본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두 사람은 함께 여행 준비를 도맡아 했습니다.  

호텔 예약 등의 사전 셋팅을 남동생이 하고, 저는 여행 중 일정을 담당하는 걸로 역할을 분담했죠.

그런데 칠순이 넘은 부모님을 모시고, 게다가 모두가 나 하나(남동생도 있지만)만 믿고 있는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녔어요.

활동 폭이 제한적인 부모님을 생각해 적당히 스팟을 고르고 동선을 짜 놓으면, 사방에서 추가 주문이 들어옵니다. "어디가 좋다는데, 거기도 가는 거지?" "아, 거긴 왜 안 가? 거기가 핫 스팟 아냐?"

차라리 치고 박고 싸우면서 함께 고민하고 계획하는 게 나아요.

제일 짜증나는 건, 계획할 땐 아무 소리 없다가 애써 잡아놓은 계획은 아랑곳 않고 지나다 본 뭐에 꽂혀서, 혹은 어설프게 아는 걸로 툭툭 던지는 한 마디였어요.

그런가 하면 역에서 가까운 호텔은 비싸다, 저렴한 호텔은 방이 좁다 등등등. 끊임없는 의견 개진들.

급기야 호텔을 알아보던 남동생은 이른 아침 형제들 단톡방에 다음과 같은 톡을 남겼어요.

  

남동생의 당부톡^^

성격상 잔소리는 많아도 큰소리는 못치는 언니. 이 톡 하나로 입이 쏙 들어가버렸다죠.


그리고 마침내 석 달을 준비하고 기다린 끝에 저희의 가족여행, 아니 효도여행이 시작됐습니다.

남동생이 며칠 먼저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사정을 파악했고, 뒤이어 언니와 형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출국하고, 사정상 금토일 밖에 시간이 안됐던 저희 부부가 마지막으로 일정에 합류했어요.

효자이기도 하지만 철저한 성격의 남동생이 미리 역과 호텔 사이 지름길을 알아두고, 가까운 곳의 카페나 식당들을 점찍어 둔 덕에 제가 없는 며칠 동안도 별 무리는 없었던 것처럼 보였어요.    

간혹 계획해뒀던 일정에 차질이 생겨 남동생이 다른 대안을 알아봐달라고 하면, 한국에 있던 제가 인터넷 서치와 톡으로 정보들을 실어나르기도 했구요.


그런데 웬걸요!!!

선발대 여행 3일차, 저희 부부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남동생이 없는 틈을 타) 사방에서 원성이 쏟아졌습니다.


엄마 왈, "야, 여기 볼 거 하나도 없어."

언니 왈, "방은 또 왜 그렇게 좁다니?"

아빠 왈, "생각보다 일본 음식 영 먹을 게 없구나."


사실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은 아녜요.

뭐든 과하게 표현하는 엄마, (왜 볼 게 하나도 없었겠어요. 이건 그냥 메가울트라빅잼은 아녔다는 정도의 표현이고), 늘 무심코 툭툭 싫은 내색하는 것에 거칠 게 없는 언니 (언니의 툴툴댐은 그냥 습관. 혼잣말이겠거니 듣고 흘리면 돼요),  그리고 미식가라기보다 대식가인 아빠. (말씀은 저리 하셔도 식사 때마다 빠짐없이 완식을 하셨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출발 전 약 3개월, 그리고 여행을 와 3일 내내 혼자 총대를 메고 몸 고생 마음 고생 했을 남동생을 생각하니 제가 다 화가 나지 뭡니까.

사실 남동생에게 바톤을 이어받아 남은 3일을 책임져야 할 제 입장에서, 저 소리가 나중에 고스란히 제가 들어야 할 소리라고 생각하면 ... 화 안 나는 게 이상하죠. 그래서,


"엄마 그래도 그렇지 말하지마. 땡땡이가 얼마나 오래 알아보고 준비한 건데."

"언니 일본 호텔 방 좁은 거 이제 알았어? 그렇게 넓은 방 원하면 언니가 알아봤어야지."

"아빠 잘 드시면서 괜히 그런다. 아빠가 제일 많이 드셨다던데?"


호텔 라운지에 모여 저녁 식사 중에


괜히 두둔한 게 아닙니다.

실상 볼 거 없다던 엄마는 근처 대형마트에서 장 보는 걸 가장 즐거워했고, 언니는 호텔 방이 좁다고 투덜댔지만 우리가 묵었던 호텔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음료 무료 제공) 라운지가 있어서 저녁마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마트에서 사온 이런저런 먹거리들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어요. 아빠야 말해 뭐해요. 무엇을 드리든 다 잘 드시면서 괜히 말씀만 "허허. 먹을 게 없다." ...

그러니 찬사나 감사 따윈 없었지만 남동생의 계획은 그런대로 다 성공한 셈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요.

남동생이 멨던 총대를 다음부턴 제가 멨어야 하니까요.

저는 짧은 저희 부부 일정에 맞춰 그곳의 몇 안되는 핫스팟을 가족 모두가 함께 둘러보는 걸로 일정을 짰고,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어요.

일단 도착해서 처음 간 우동집은 붓카케 우동의 원조격인 유명 맛집임에도 불구하고, 생강 맛이 강해서 별로. 그 다음엔 갓 튀겨 낸 고로케가 일품이라는 정육점을 찾았는데, 아뿔싸 고로케가 품절.

그리고 지하철 역에 내려 여차저차 가다보면 짠 나온다는 그 핫스팟은 왜 또 그렇게나 멀던지...

사실 저희 부부끼리였음 가는 길에 줄지어 늘어 서 있는 상점들을 구경하며, 가깝지는 않아도 지루하지 않게 이동했을 거예요.

그런데 고령의 부모님과 취향이 각자 다 다른 일곱 명이 함께 움직인다는 건, 생각만큼 신속하지 않았어요.

소품점이 궁금한 사람, 그보단 뭐라도 좀 마셨으면 좋겠는 사람, 소품점도 카페도 다 필요없으니 간다는 그 핫스팟만 빨리 가자는 사람 등등...

사진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는 사진을 찍느라 저만큼 뒤쳐져 걷는데, 누구는 눈으로 보면 될 걸 사진 같은 건 뭐하러 찍냐고 잔소리를 하고...

여하둥둥 이래저래... 그 길을 걷고 걷다 마침내 목표점에 다다랐을 때 그때서야 겨우 단 한 번, 가족 모두는 같은 생각을 했지 싶어요.

"와! 좋다. 이런 맛에 일본엘 오지."

그리고 모두가 그 기분에 취해 있을 때, 저는 그 틈을 타 가족 사진 한 장을 재빠르게 찍었습니다. (모두가 순순히 응해줘서 유일하게 건진 가족단체사진인데, 찍고나니 내가 너무 이상하게 나와 지울까 했던 건 안비밀! 다행히 꾹 참았습니다;)


사실 여행은 사진이란 말 크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요.   

결혼식도 여행도 인생의 순간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건 역시 사진이니까요.

저는 부모님이 연로해지면서부터 이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스스로 이 생각을 한다는 것조차 참 슬프 일이긴 하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부모님과의 이별에 대비해 되도록 많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놔야겠다 생각했거든요. (동영상이면 더 좋구요. 근데 잘 응해주지 않는 부모님이랍니다)

여행도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결혼 후 처음 간 이 가족 여행이 혹 마지막 여행이 돼 버리면 어쩌나, 출발 전부터 내심 마음이 좀 힘들었어요. 안해도 될 생각이고 안 그래야지 싶다가도, 한 번씩 불쑥 이게 마지막이면 어쩌지... 어쩌지...


그런데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이번 여행에 크게 만족한 엄마. 여행에서 돌아오마자마자 다음 여행을 알아보기 시작하셨거든요.

"나는 내가 여행 같은 건 못갈 줄 알았어.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까, 더 늦기 전에 부지런히 가야겠더라."

허리와 무릎 수술로 잘 걷지 못해 여행 같은 건 늘 귀찮다 하셨다 엄마가 여행에 자신이 붙었나봅니다. 그리고 말씀으론 볼 거 없다, 먹을 거 없다, 힘들다, 하셨던 아빠도 가족과 함께 했던 그 시간만큼은 엄청 뿌듯하고 행복하셨나 봐요. 돌아와 며칠 후 아빠의 카톡 프로필이 여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바뀌어 있는 걸 확인했거든요. (가족 사진이면 좋으련만, 본인 사진^^)

 


파파고가 잘못 읽어낸 한자를 엄마가 제대로 읽는 바람에 놓칠 뻔한 기차를 가까스로 타고, 언니가 감기로 앓아 누워 거의 호텔 방에만 있다시피 하고, 가려던 맛집이 전부 웨이팅 아니면 재료 소진으로 식당 찾아 삼만리를 하고, 결국 배고픔과 지침으로 한계점에 다다른 엄마가 사위들 앞에서 욕으로 랩을 할 뻔 했으나, 마침 그 동네 신년 소바 나눔 행사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고, 아빠가 엄마 여권이 든 가방을 들고 혼자 이미그레이션으로 가 버리는 바람에 엄마가 한국에 못들어올 뻔 했지만...


한국이 사십 년만에 폭설로 난리일 때, 마냥 따뜻하고 화창해서 봄 같기만 했던 그곳에서 가족 사진 한 장 남긴 걸로 우리의 여행은 충분히 뜻깊고 아름답고 행복했다고... 그렇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이런 게 바로 두 번은 못가겠다 싶다가도, 돌아서면 또 가고싶어지는, 다시 가면 더 잘할 것도 같은, 가족 여행 아니 효도 여행 아니겠어요?


내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여행을 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지만, 그러니 더 자주, 부지런히 가족 여행을 도모해봐야겠습니다.


엄마아빠, 날 좋은 봄에 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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