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보이 Jan 19. 2024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지만...

2024년 + 20일

연말연초 무기력의 끝을 달리는 나.

먹고, 자고, 싸면 어느덧 하루가 간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는 별개로, 나는 늘 뭘 하며 먹고 살까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그런데 궁리만 한다. 궁리만 할 뿐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닥 절실하지 않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나의 정체성 확립을 하지 못한 채 방황 중인 40대다.  

사춘기가 아니라 사십춘기다.


그 탓일까.

작년 가을 시작해 열심히 하던 브런치도 손을 놓은지 좀 됐다.

그 사이 빈 집을 지켜주신 구독자님들껜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다.

일상은 늘 재밌거나 감동적이지 않을 뿐더러, 방심하면 그냥 물처럼 흘러가버린다. 공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일상을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아야, 겨우 흘러가는 그 안에서 뭐라고 건져 글이라도 쓰는 것일텐데...

연말연초. 시간은 덧없이 흐르기만 했고, 그 안의 나는 한없이 무기력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처럼 교훈이나 정보를 주는 글을 쓰자니, 그런 재주는 쥐어짜내도 없다.

이래저래 써봐야 푸념이나 투덜거림 정도..

그런데 그동안은 그조차도 글로 뱉지 않고 삼키기만 했다.    

부끄럽지만 해가 바뀌고 내가 한 거라곤, 올 여름 휴가 계획을 짠 것 밖엔 없다.

요며칠 계속 항공권과 호텔만 눈이 빠지게 검색을 했는데...


그러다 무심코 본 친구의 SNS.

호주 시드니로 여행을 간 친구가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최근 취미로 시작한 그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직업 작가가 된 그녀.

활발한 작품 활동과 전시 일정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그녀가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내가 꿈꾸기만 하고 여태 못 가본 나라, 호주로!!!

남편과 나는 늘 호주 여행을 계획만 하고, 항공권이 비싸다는 이유로, 휴가가 짧다는 이유로, 비행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미루기만 했다.

그리고 올해도 역시 나는 싸고 가깝다는 이유로 호주 대신 일본이나 동남아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코로나 때 엔데믹을 기다리며 미리 환전해 뒀던 호주 달러도 진작에 털어 쓰고 없다)

내가 못한 걸, 친구가 했다.

순간 부러움이... 아니 사실은 묘한 시샘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손으론 좋아요를 누르고, "좋겠다" "부럽다"  "예쁘다"등의 댓글을 기계적으로 달았지만,

속으론 샘이 났고 우울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겉과 속이 다를 때가 참 많다.

진심이 결여된 축하나 위로, 감사를 습관적으로 한다.  

속으론 별로 축하하지도, 위로하지도, 감사해 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론 뻔한 말들을 기계적으로 내뱉는다.

실은 남의 좋은 일에 축하보다 시샘을 더 많이 하고, 남의 슬픈 일에 별로 공감하지도 못하는 게 솔직한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속내를 감추고 남들처럼 괜찮은 사람인냥 사는 건, 순전히 교육으로 습득된 도덕성 때문이다.

생각나는대로 느끼는대로 뱉으면 살았다간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속으론 별별 생각을 다 한다.

그리고 그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은 어떨 땐 말이나 행동보다 상대를 더 흠집내기도 한다.


십 수년 전쯤 잠깐 성당엘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인상 깊게 들었던 기도 문구 하나가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도 한 번씩 생각나는 그 구절.

"주님, 우리가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였는데...

역시나 생각만 하는 것도 죄는 죄인가 보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면 중죄인일지도 모른다.

친구나 형제를 시샘하고, 상대가 안되기를 바라고, 심지어 누군가는 잘못되기를 바란 적도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죄책감이란 형벌을 받는다.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치졸할까, 자기 혐오에 빠진다.

그리고 보통 이런 감정들은 내가 온전하지 못할 때, 내 삶에 만족하고 있지 못할 때 더 빈번히 찾아오는데…

요즘의 내가 그런 것 같다.


여기서 탈출하고싶다.

마음은 평화를 되찾고, 생활은 건강한 루틴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실 어찌해야 할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탈출은 하고픈데, 탈출구가 잘 안보이는 느낌이랄까

해서 사실 요 며칠은 계속 두 발을 딛고 우두커니 서서 주변만 두리번거린 것 같다.

그래선 탈출구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일단 푸념이던 뭐던 끄적이는 걸로 한 걸음을 내딛어 보기로 했다.


2024년+20일.  

아침 기상 후엔 미지근한 물을 마시기 시작했고

여름 휴가 계획을 세웠고,

브런치를 다시 열었다.

 





   


    


     


 



작가의 이전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영화 현장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