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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Feb 21. 2024

정치 성향, 그딴 게 뭐라고...?

나는 정치 성향이 다른 배우자와 산다.  


사실 이 주제는 꺼내놓고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그 전부터 글을 쓸까 말까 몇 번 고민을 했다.

그러다 지난 주 목요일, 남편과 나는 또다시 이 문제로 부부 싸움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가지 생각 끝에 앞으로 이 문제로는 그 어떤 대화조차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나는 정치 성향이 정반대인 남편과 산다.

국민의 40% 이상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밥도 먹기 싫다는데, 나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함께 산다.

그리고 그렇게 산지 곧 있으면 8년이다. 그 사이 우리는 두 번의 대선과 한 번의 총선을 함께 겪었고, 두 번째 총선이 곧 있으면 또 다가온다.  


한참 열애 중이던 2016년의 총선은... 사실 그닥 기억도 잘 안난다.  

그 당시 우리는 정치 말고도 할 얘기가 많아 정치 얘기같은 건 해본 적도 없고, 우리에게 총선일은 그저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는 공짜 휴일. 어렴풋하게 기억하기론 총선일을 끼고 춘천으로 백일 기념 여행을 다녀왔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정치 저관여층이었던 나는 투표조차 안했고, 남편은 사전 투표를 하고 와 개표 결과를 틈틈이 검색해 봤을지언정, 내 앞에선 정치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귀기 시작해 고작 백일. 우리에겐 사랑을 속삭이기에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우린 서로 짐작은 하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을 했는데...

왜냐. 우리는 그래야 우리의 사랑을 지키고 결혼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내심 알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땡땡땡 지역 출신으로, 연애 시절 굳이 드러내놓고 말한 적은 없어도 그의 정치 성향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반해 나는 서울에서 태어난 정치저관여층. 그런데 아빠의 고향이 남편과는 정반대 지역이다.

때문에 알게 모르게 아빠에게 영향을 받아, 정치 저관여층에 무당파라곤 해도 남편과 정치적 결이 같다곤 할 수 없는데...    

맞다. 우리는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현실 커플이다

영화에서처럼 양가 어른들이 지역감정으로 인해 우리의 결혼을 반대했던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한 지금도 서로 불편한 구석이 아예 없다곤 말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일예로 특정 언론사 뉴스를 즐겨보는 아빠는 남편과 내가 가면 슬그머니 TV 채널을 돌리고, 특정 신문사 장기 구독자인 시어머니는 그 덕에 받은 서비스를 자랑처럼 늘어놓다 뒤늦게 나를 의식하곤 머쓱해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부부다. 연애 시절엔 우리도 서로 알아서 피했는데, 결혼 후엔 그게 잘 안된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함께 9시 뉴스를 볼 일도, 손잡고 투표장에 가 투표를 할 일도 없었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선 일절 서로의 생각 같은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가능했는데...

탄핵과 갑작스레 치뤄진 대선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지난 2017년. 온국민이 일시에 정치 고관여층이 돼 버린 세상에선, 그게 불가능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때 처음으로 서로의 민낯(?)을 마주하게 됐다.

탄핵이야 상식이 있는 사람 누구라도 진영을 넘어 생각을 함께 한 사안이라 딱히 부딪힐 게 없었지만, 이후 이어진 대선에서 우리는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고 시시때때로 부딪혔다.

그때는 정말이지 TV만 틀면 쏟아지는 뉴스와 인터넷 검색 창을 도배한 각 진영 후보들의 기사가 마치 가만히 있는 우리 부부를 들쑤시고 부추겨 일부러 다투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다투고 결합, 다투고 결합... 결합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봉합. 그러다 결국 나는 고집을 꺾고 남편의 뜻에 따라 그가 지지하는 후보를 찍어주기로 약속하고 가정의 평화를 지켰는데...

(정치인보다 더 대승적인 결단을 한 나)



결혼하고 처음 부부가 함께 한 투표. 결국 대통령이 누가 되던 나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투표장으로 가 투표를 했고 이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그리고 그 덕에 우리는 행복하고 편안한 공짜 휴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게 끝이면 좋으련만, 어김없이 다음 대선은 또 돌아왔다.

후보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또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를 놓고 다시 다투기 시작했다. 그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좋아하고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 다퉜다기보다, 각자가 생각하는 차악이 달라서 다퉜는데...

그러다 한 번씩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었다.

'최선의 선택도 아니고 고작 차악이나 선택 하자고, 우리가 이렇게 다툰다고???'

사실 그때 내가 남편과 다퉜던 건, 그 전과 좀 다른 남편과 나의 차이가 내겐 좀 더 심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달라 다툴 땐 그저 답답한 정도였다면, 싫어하는 사람이 달라 다투는 건 어쩐지 좀 큰 문제처럼 느껴졌달까.

내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정의와 상식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할 땐 그게 답답하다 못해 슬펐고, 반대로 나의 정의와 상식이 그에게서 부정 당할 땐 답답하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이건 기본 전제 자체가 잘못 됐다.

여기엔 남편도 나도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만이 정답이고 진실이라고 믿는 오만함이 깔려 있는데, 그것부터가 문제다. 그래놓고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답답해 하고 섭섭해 하고, 그러다 다투기까지 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보다 어리석고 못난 일이 또 없다.    

그리고 이제와 말이지만, 사실 남편과 내가 차악인 줄 알면서도 그 누군가를 지지했던 건, 그저 우리 편이 지면 안된다는 못난 승부욕 때문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쓸데없고 소모적인 논쟁 따윈 그만하고, 정치 따위 관심 끄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자며 부부는 다시 두 손을 맞잡았는데...


그런데 사실 요즘도 그게 잘 안되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 목요일 뉴스를 보다 나와 남편은 또다시 부딪혔다. 사소하게 꺼낸 얘기에도 상대방이 평소와 다르게 발끈하면 이내 다툼이 돼 버린다.

그러다 결국 나는 우리 부부가 그 무엇도 아닌 정치적 성향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왔는데...

그래봐야 내가 향한 곳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 북카페. 읽던 책을 꺼내놓고 멍하게 앉아 있는데, 책의 글자가 정말 한 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대신 ‘정말 이러다 이 사람과 결국 헤어지는 건 아닐까,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사는 건 역시 무리였을까, 정치 성향이 다른 건 유머코드나 취미가 안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더 큰 문제인 걸까, 그런데 성적 취향도 아니고 정치적 성향 때문에 헤어진다고 하면 너무 억울하고 창피할 것 같은데 어쩌지? 정말 만의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나는 양진영 정치인에게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하나?' 등등...

짧은 30여분의 시간 동안 오만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30분이 지났을 무렵, 별안간 축 처진 목소리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토보이야. 어디야? 내가 잘못했어. 어서 돌아와. 데리러 갈까?"


순간 이혼까지 생각했던 절망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


"밥은 다 먹었어?"

늦은 저녁을 챙겨주다가 다투고 나온 참이었다.    

"응. 다 먹고 설거지까지 해놨어."

"마누라가 집을 나갔는데, 밥이 입으로 들어가디?"

"들어가던데. 바구니에 있는 사과까지 먹었어."

"뭐 바구니에 사과? 그거 안 씻은 건데???"

"헐. 진짜? 난 또 씻어놓은 건 줄 알고 그냥 먹었는데? 당신 나 독사과 먹인 거야?"

"먹이긴 누가? 당신이 먹었다며?"

평소처럼 뱉어내는 남편의 뻘소리에 그만 풉 웃음이 터졌다.

진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 밤 내내 잠이 안와 뒤척이던 나는 내 나름대로 결심 하나를 했다.

 

<다시는 남편과 맞지 않는 걸 맞추려고 애쓰지 말자. 그게 정치가 됐던 무엇이 됐던... >




나는 완벽한 부부라면 설령 정치 성향이 다르더라도 서로 대화하고 토론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도 쿨하게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성숙한 부부이길 진심으로 바랬다.

그런데 살면서 우리는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부딪혔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부부가 되지 못하는 걸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왔는데...  

이제는 그 부분에서만큼은 좀 자유로워 지려고 한다. 애써 무리하면서까지, 남편과 내가 싸우지 않고 토론을 하는 완벽한 부부일 필요가 있을까.

완벽한 부부가 되기 위해 (갈등과 극복의) 무리수를 두느니 부딪히는 부분은 외면하고 침묵하면서 지금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 싶다. 이 또한 그냥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그만.  

해서 이제부턴 맞지 않는 걸 굳이 맞추려고 싸우기보다, 그냥 편하게 내버려두려고 한다. 그리고 꼭 모든 게 잘 맞아야만, 완벽하고 성숙한 이상향의 부부란 생각도 버릴 것이다.


그는 나와 정치 성향이 다를 뿐이고, 나는 그것까지 포함한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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