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속에 내가 보여요.
처음엔 자기 전에 잠깐이라도 짧게라도 메모란 걸 해보자 싶었다.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보면 어제 뭘 했는지, 심지어 바로 전 끼니에 내가 뭘 먹었는지조차 금방 생각이 안나는 요즘. 뭐라도 적어둬야만 했다.
그래서 일기 (내 경우엔 晩노트다)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도 거창하다. 사실은 그냥 메모다.
오늘의 내가 뭘 했고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내일의 나에게 알려주는 간단한 메모다.
그런데 어디선가, (사실은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61가지 비결 중 하나는 아침에 쓰는 일기란 사실을 알게됐다.
'아침에 또 일기를 쓴다고...?'
처음엔 전날 晩노트에 있었던 일을 다 토해놓고 나면 잠을 잔 사실 밖엔 없는데, 대체 거기단 뭘 쓰란 말인지 의아하기만 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은 다음의 세 가지를 아침 일기에 적는다고 한다.
1. 오늘이 감사한 이유 3가지
2. 오늘 하루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3가지
3. 오늘의 다짐 3가지
그래서 나도 따라 해봤다. (참고로 이건 朝노트를 따로 마련했다)
보통 릴스에 뜨는 요리 레시피는 곧잘 따라 해도, 성공한 사람들이 떠드는 어쩌고 저쩌고는 배가 아파비웃기만 했던 나. 그런데 어쩐지 이건 좀 따라해보고 싶었다.
처음 시작한 게 6월 중순. 그리고 좀 있으면 곧 8월 중순이니 이제 두 달 째인데...
알겠지만, 그리고 다들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 감사할 일 혹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일 세 가지를 찾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처음이야 비가 갠 것도 감사, 간밤에 깨지 않고 잘 잔 것도 감사, 지금 이 순간 내 몸 어딘가 아프고 불편한 데가 없는 것도 감사하다고 썼지만...
문제는 그것 밖엔 잘 없다. 매일매일이 다 거기서 거기 그게 문제다.
'와 뭐 이리 일상이 재미 없고 단조롭지? 왜 이렇게 별 볼일이 없을까?'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잡다, 도리어 비루한 내 일상의 민낯을 보게 된 느낌인데...
문제는 이 <세 가지>에 대한 집착이다.
그것만 버리면 사실 쉽다.
처음부터 아예 매일매일 이런 걸 세 가지나 꼽을 수 있는 건 하루 24시간 스펙타클하게 사는 성공한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나는 그저 진심으로 그 순간에 감사하거나 기쁜 일 한 가지만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그게 어떤 날은 암만 생각해도 없고, 어떤 날은 세 가지나 되기도 한다.
그리고 비록 그게 날씨 같은 사소한 것일망정, (나는 날씨에도 큰 영향을 받는 몸둥아리이니) 나에게 중요하면 중요한 거다 생각하기로 했는데...
이건 좀 거시기 한 이야기지만, 일예로 집밖똥 (밖에 나가 화장실 가는 게 조금 힘든) 나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오면 그날 하루가 그렇게 가뿐할 수가 없다. 뭘 해도 잘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시작이 순조롭다. 그러니 배변을 클리어 한 것도 나에겐 그날 하루가 감사하고 기쁜 중요한 이유인데...
나의 朝노트엔 대체로 이런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책에서 본 그들의 일기와는 조금 다르더라도이렇게 하루 두 번 아침과 밤에 일기를 쓰다 보니, 생각지도 않게 얻은 게 하나 있다.
내가 내가 아닌, 제 3자의 입장에서 내 삶(일상)을 볼 수 있게 된 것.
다시 말해 그간의 일기를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는 건, 본래 나에게서 빠져나와 좀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파악해 보는 느낌인데...
대체로 나는 주말에 못한 집안 일을 하느라 월요일이 제일 바쁘다.
그리고 하루 두 번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욕실 청소와 먹거리를 만드는 날은 온종일 집안 일만 하다 하루가 끝난다.
다른 일을 할 물리적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실은 에너지, 의욕, 열정이 없어서다.
이건 날씨 탓을 좀 하자면, 요즘처럼 가만 있기도 쉽지 않은 날은 밀린 집안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할 때가 있다.
그러니 계속 쳐져 있지 않고 어떻게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몸을 움직여 주부의 할 일을 해낸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한 날이 몇 번 있긴 했는데...
그러다 보니 아쉬운 건, 주부로서의 나는 보이는데 작가(직업인)으로서의 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일상 속 늘 해왔던 일은 꾸역꾸역 해내지만, 새로운 일, 안 하던 일은 잘 안하는 사람.
루틴을 갖고 산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자칫 그것만이면 관성대로 사는 게 되어버리는데, 요즘의 내가 그랬다.
그러니 새롭고 좋은 루틴을 한 가지씩 늘리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삶을 만들고자 매일 비슷한 다짐을 하는데...
과연 100% 만족스런 하루란 게 있을까?!
내 경우는 없다.
일기를 쓰다보면 느끼는 거지만, 매일매일이 불만족스럽고 부족한 거 투성이다.
'왜 오늘 나는 아침에 계획한 그 일을 시작도 못했을끼?' '왜 오늘 나는 그 순간에 참지 못하고 화를 냈을까?' '왜 오늘 나는 정신줄을 놓고 먹어댔을까?' 등등...
그래서 나는 반성하고 후회할 일이 없는 무결점의 하루를 만들기보다, 많은 반성과 후회를 해도 한 가지쯤은 스스로 칭찬하고 만족할 수 있는 하루를 만드는데 더 노력하기로 했다.
'무지성 먹고 마셨지만, 자기 전에 10분 스쿼트를 한 나를 칭찬해.' '글은 안썼지만, 내일은 온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밀린 집안 일을 다 해치운 나를 칭찬해.' '화를 냈지만, 빠르게 사과한 나를 칭찬해.'처럼...
이런 게 정신 건강엔 도움이 되겠지만,
모든 상황을 자기 좋을대로만 생각해 버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그건 좀 주의가 필요하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