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녀는 다시 뜨개질에 빠졌다. 보고 싶은 유튜브 채널을 틀어놓고 손으로는 목도리를 뜨고 있다. 작년에는 너비 10센티, 길이는 1미터가 채 안 되는 차콜빛 목도리를 떠서 나에게 주었고 연이어 동생에게 준다고 제법 길게 목도리를 떴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올해 11월쯤 완성본을 내게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전체적으로 아주 옅은 파스텔톤 무지갯빛 목도리는 동생에게 잘 건너갔을 것이다. 이번에는 면실로 무늬까지 넣어가며 뜨고 있다. 나에게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솜씨라는 게 딸아이에게는 있다. 아이들 저학년 때까지 내가 해주는 헤어스타일은 몇 가지 돌려 막기로 점철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딸은 자유자재로 머리 스타일을 꾸미고 다닌다.
친정 엄마는 겨울방학이면 이불을 깔아놓은 아랫목에 앉아 뜨개질을 했다. 양쪽이 뾰족한 대바늘로 조끼를 뜨고 이불 커버도 완성했었다. 윗풍이 센 방에서 목에 두르면 따뜻한 털목도리를 뜬 엄마는 곱게 포장하여 할아버지에게 보내 드렸다. 할아버지는 겨울만 되면 그 목도리를 즐겨 하셨다. 한 번은 엄마가 뜨개질을 하다 귀가 가려웠는지 그 대나무 바늘로 귀를 후비고 있었는데 내가 엄마 옆에 앉다가 그 대바늘을 건드리고 말았다. 귀에서 피가 나는 걸 보자 엄마가 혹시나 못 듣는 건 아닐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후유증 없이 엄마의 귀는 나았고 나는 뜨개질 바늘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뜨개질 하는 딸아이 옆에 갈 때마다 조심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그녀가 쓰는 대바늘은 짧고 반대편이 뭉특하다. 안심이 된다.
서른을 넘긴 딸아이가 주말 책상에 앉아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자니, 강호에 낚시를 드리우고 시간을 낚는 선비 모습이 떠올랐다. 강호에 낚시를 드리울 나이는 아직 한참 멀었는데 아이는 지금 무얼 낚고 있을까. 20대에는 매일 이쁘게 화장한 후 차려입고 나가서는 무슨 신데렐라라도 된 듯 12시 넘어 마차를(?) 타고 귀가했었다. 이제는 걱정하며 기다리는 부모를 배려해 귀가 시간 예고도 하고 저렇게 한가로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한가롭게 뜨개질하는 그녀의 모습이 한 여름 뜨거운 더위를 지나온 선선한 바람 같다. 펄펄 끓는 성하를 지나, 가을이 미처 오기 전, 해 떨어지고 불어오는 스피아민트향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