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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s Jul 09. 2021

커피에 중독되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

나는 커피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시큼 쌉싸름한 맛과 타는듯한 고소함이 커피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도 커피에 대한 사랑고백 수준의 글을 쓴 적이 있으니 이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사실 커피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어쩌면 순수하게 그 맛과 향이 좋아서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 검은색 향기와 어우러지는 카페의 분위기, 함께 마시는 사람, 그 시간이 좋았기에 이런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 커피를 마실 때의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초창기에 좋아했던 커피는 아메리카노였다. 아이스가 아닌 김이 모락모락, 바로 마실 수도 없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말이다. '뜨아'에는 '아아'에서 느낄 수 없는 향들이 더 다채롭게 느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특히 몸이 따뜻해지는 그 기분이 좋았다. 그 덕분에 나른해진 몸과는 반대로 정신이 맑아지는 그 아이러니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카페에 가면 거의 열에 아홉은 '아아'를 주문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목이 말라서, 너무 피곤해서, 그냥 더워서. 심지어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간혹  아아를 주문하기도 했으니 내 취향이 변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커피 냅(Coffee Nap)'이라는 수면법이 있다. 쉽게 말해서 커피 한 잔을 빨리 원샷하고 낮잠을 자는 것이다. 이는 커피의 카페인이 작용하기 전에 잠에 들어서 약 15-20분 후에 일어나는 것으로, 잠에서 깬 순간부터 카페인의 작용으로 인해 맑은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직장인은 종종 이 방법을 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나도 시험기간 오후가 버티기 힘들 때에는 종종 이렇게 했다.


커피 냅의 포인트는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 카페인이 작용하기 전에 잠에 는 것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이렇게 마시다가는 입천장이 멀쩡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커피 냅은 어쩔 수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만 한다. 미지근한 커피는 정말로 맛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얼음을 넣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커피를 사랑하는 이유가 변질되었다. 그 향과 맛과 분위기가 좋아서 마셨던 커피가 이젠 그저 피로회복제가 되어버렸다.


어제 아침이었다. 늘 그렇듯이 8시 30분에 알람이 울리고 눈을 뜬다. 방에는 여전히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오전 8시 30분인지 오후 8시 30분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러니 꼭 일어나서 불을 켜야만 한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꼭 마셔야 한다. 그래야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는 기분이 드니까.


그렇게 냉장고를 여는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이, 미리 내려놓았던 커피를 어제 점심에 전부 마셔버렸던 것이다. 비어 있는 커피 통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커피를 사러 나가기는 귀찮으니 오늘은 커피 없이 버텨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악의 실수였다.


그날은 아마도 최근 수년간 겪었던 모든 날 중에 가장 피곤했던 날이었다. 하루 종일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운동을 해봐도, 찬물로 샤워를 해봐도,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봐도,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다.


나는 커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커피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불과 저번 달만 해도 커피에 대한 순수한 사랑고백을 했었는데, 이제는 집착과 의존이라는 감정이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커피를 마시지 않은 하루였다. 그러니 내일부터 마실 커피를 내리러 가야만 한다. 맛있게 우러났길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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