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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몬에 음악을 검색하면

알바몬에 들어갔다. ‘음악’을 검색했다. <음악 들으며 할 수 있는 알바(물류)>, <음악과 함께하는 칵테일바(여성구함)>. 나는 문득 이런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세상은 음악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아무도 나에게 음악을 하라고 권유한 적 없었다. 정말 나 같은 뮤지션을 필요로 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는 걸까. 나는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한번 검색했다. ‘작곡’. ‘검색된 결과 없음.’ 


전화가 울렸다. 아무도 찾지 않는 서울의 지하 작업실에서 나를 찾는 유일한 사람들. ‘1588-XXXX’.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진동이 울렸다.

‘당사 연체로 카드 이용이 불가하오니 양바랍니다.’

이번 달 목숨을 걸었던 데모 작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는 일단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알바를 찾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나의 예술 행보와 관련되어야 할 것. 유니폼을 입지 않을 것. 

나는 알바몬에 들어가 다시 검색했다. ‘예술’. 검색 결과 ‘검색된 결과 없음’. 예술과 연관된 단어가 더 있을까. ‘인문학’. 검색 결과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모집’. 그래 이거다. 돈도 벌면서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다니. 오히려 나의 긴 예술 여정에서 더없는 기회일 수 있다. 나는 지체없이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자기 소개서>

안녕하세요. 저는 프리랜서 작곡가입니다. 아, 백수라고 오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일을 하고 있는 프리랜서 음악가입니다. 주 3회 5시간 파트타임 연구원을 구하신다는 공고를 확인하고 부랴부랴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만들고 있지만 인문학을 사랑합니다. 성경부터 도덕경, 쇼펜하우어까지 많은 인문학 서적을 섭렵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니체는 음악을 지속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함석헌은 세계를 보는 눈을 선물해주었고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최루탄 없이 세상에 저항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나를 안주하지 않도록 늘 응원해주고 마키아 벨리는 세상 앞에 타협하지 않을 힘을 줍니다. 김현은 나의 예술관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돈키호테는 나의 영원한 심장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읽은 책들은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두운 밤을 홀로 걸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저는 유능하지 못해 사회에서 거절과 무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퇴짜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는 꼭 바그너의 교향곡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나에게는 이토록 드넓은 세상이 있다! 너희가 나를 쉽게 평가하고 업신여겨도 이 토록 깊은 세계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교향곡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질주하는 돈키호테를 상상합니다. 풍차에 고꾸라질지언정 내 인생은 멈춤 없는 여정이어라. 


하지만 당장 내야 할 카드값과 월세 앞에서 나는 다시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재정적 어려움 앞에서 나의 돈키호테가 더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에 저는 합격을 해서 월세를 내고 카드값을 갚아 인간이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을 누리고 싶습니다. 아래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자격증과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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