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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돈키호테를 찾아서

터무니없는 재능에도 예술을 하겠다고 우기는 사람들

사람들은 햄릿이 아니라 돈 키호테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문호 투르게네프가 한 말입니다. 사람들이 냉철하고 우아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저는 그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그들의 필요일지 모른다라는 의심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누구나 멋져 보이는 일을 따라가지 않고 형편없어 보이는 것에 생명을 바치는 어리석은 돈 키호테를 향한 사랑은 진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투르게네프는 햄릿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습니다. '머릿속에는 자기 자신만의 일로 가득 차 있고 그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이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겠죠. 반면에 우스꽝스럽고 미치광이라 여겨져도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낄낄거리며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랑. 누구도 훼방할 수 없는 굳건한 사랑은 돈 키호테에게 있습니다.


돈 키호테는 하찮다고 평가되는 것을 사랑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가 좋아합니다. 돈 키호테와 달리 우리는 왜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나요. 우리의 모든 시야 때문입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세요.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액의 자본과 인력을 쏟아 만든 광고매체, 당신이 사랑하는 콘텐츠에 숨어있는 마케팅, 우리를 자극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밤낮을 고민한 뉴스 제목과 그 아래 달린 경솔한 이들이 배설한 댓글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SNS. 가장 관음적이지만 가장 많은 시선에 스스로를 억압하는 SNS의 시대는 우리를 모두 같은 취향으로 몰아갑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자신의 취향이 자신의 고유의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공급에 의해 취향이 결정된다는 문화산업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말입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길을 걸어도 수많은 간판들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기고 맙니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우리는 세상의 거대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돈 키호테를 특이하고 이상하다고 치부하며 '일관된 취향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고 어쩔수 없다’는 발언이 어리석은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거짓말을 거부할 수는 없을 까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돈 키호테가 그립습니다. 로맨스 영화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죠. 로맨스 영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청년층이 위축되고 더 이상 영화 같은 사랑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위험을 부풀려 겁을 주고 위험을 감수 하는 돈 키호테를 미련하다 치부합니다.  ‘현실적인 사랑’에 대체된 ‘영화 같은 사랑’을 다시 빼앗을 수는 없을까요.


그래도 저는 아직 숨어있는 돈 키호테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투르게네프는 돈 키호테가 역사를 바꾼다며 거창하게 얘기하지만 제 주변 곳곳에 작은 돈 키호테들을 발견합니다. 누가 뭐래도 자기 애인이 제일 잘생기고 예쁘다고 우기는 객관성을 잃어버린 사람. 아무 효용 없는 중세전쟁사를 읊으며 고증 안된 중세 영화에 흥분하는 역사덕후 이과계열 전문가. 아무도 이해 못 하는 소리를 내는 모듈라 신스를 모아 놓고 홍조를 띠며 실실거리는 전자음악 마니아들.


그리고 제가 만난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돈 키호테들이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재능과 환경에도 예술을 하겠다며 모든 것을 던진 이들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부활한 돈 키호테의 현현입니다. 그들은 작업할 때마다 하찮은 자신의 재능을 마주합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자신을 믿고 나아갑니다. 수많은 천재들 사이에 절망을 맛보지만 특유의 궤변을 떠들어 대면서 절망을 헤쳐나갑니다. 물론 말 같지도 않은 그의 예술론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사실 니 노래 너무 구리다'는 정확한 평가에 좌절합니다. 하지만 다시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심지어 고독한 자신을 스스로 멋지다 여깁니다. 그는 항상 어이없는 도전을 하고 무참히 쓰러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역경을 마주한 위대한 예술가라며 가사를 적을 것입니다. 다시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고 당황해 얼이 빠져 있는 우리의 돈 키호테,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돈 키호테가 역사를 바꾼다는 말이 거창하다고 했던가요. 그 말을 하고 나서 저는 책장의 사(史)로 끝나는 책들을 꺼냈고 이내 깨닫습니다. 역사가 움직이는 순간에는 항상 돈 키호테가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는 돈 키호테의 궤변이 우리의 세계보다 진실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마주할 것입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세상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현실을 산다는 말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말이었는지를. 우리가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숨어있는 돈 키호테들에게 전합니다. 비록 지금 여러분은 사회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한 채 바퀴벌레 취급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 대해 투르네게프는 이렇게 예찬합니다. '돈 키호테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역사에 읽을 가치가 있는 것들은 없었을 것'이라고. 뒷일을 생각해 일일이 따져보지 않고(사실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사랑하는 것에 자기 몸을 내던지는 소수의 그대들이 우리 시대의 신화처럼 소중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돈 키호테 이야기들과 그것을 살아내는 어리석고 사랑스러운 돈 키호테를, 저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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