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망할 놈의 음악을 한답시고'를 읽어주시고 아껴주시고 성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좋아요도 눌러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연재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다만 이 글의 좋아요 말고 제 연재 브런치북 좋아요를 한 번 눌러주시기를 부탁드려 봅니다. 아직 단 한 명도 눌러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눌러주시는 분들을 일생,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실수로 슈퍼 뮤지션이 된다면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해 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들은 우선 나를 축하해 주길 바란다. 아르바이트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인문학연구소라는 곳은 강남 한복판에 우아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나는 오늘 첫 방문이었지만 첫 출근이기도 했다. 사장님은 면접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일을 하도록 했다. 네다섯 명의 직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눈동자에는 윤기가 없었다.
“다들 일로 와봐”.
사장은 나에게 직원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김 실장이야”.
그녀는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으며 이곳의 유일한 정규직이었다. 그리고 파트 타이머 아르바이트생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여기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를 나온 이 팀장이야. 손석희 알지? 손석희 후배야 후배”
“여기는 윤 팀장이야. 파슨스 알지? 미술 제일 잘하는 대학 말이야. 거기 출신이야”
“여기는 한 팀장인데, 한예종 나왔어”
“여기는 김 팀장인데, 서울대 나왔어”
어마어마한 학력의 젊은 이들이 멍한 눈으로 모여있다. 참으로 신기한 곳이다. 맥락을 잡기가 어렵겠지만 이그의 장르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다. 이것이 한치의 픽션 없는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참으로 궁금했다. 학벌로 모든 것을 보는 이 인간은 지방대 음대 출신인 나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여기는 이 연구원이야”
“이 친구 태권도 4단이래”
그렇다 나는 태권도 4단, 어린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자 다들 고생하고, 난 들어가 볼게 고생해~”
사장이 퇴장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했다. 첫 일은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책을 분류하고 그 박스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양은 천 권에 가까웠고 무게도 상당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모두 여자였다. 나는 내 역할을 예감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박스를 날랐다. 연구소의 주 업무는 사장이 매주 기고하는 조선일보의 칼럼을 윤문 하는 일, 월간지를 제작하는 일, 어디 회장님들이 오시면 커피를 접대하는 일 등이었다. 그리고 책과 박스를 나르고 포장하는 일.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팀장이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박스를 나르고 포장을 했다. 인문학 연구가 아니라 이곳의 화장실 청소를 했다. 일에 정신이 없어서 실존의 문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따위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쁘지 않은 시급으로 아슬아슬했던 카드 값을 메꿨다.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봉급이라는 산업화 사회가 만든 발명품이 얼마나 규격화된 시간과 공간으로 집어넣는지. 모두 같은 시간에 출근과 퇴근을 하고, 7일을 간격으로 모두 한 날에 돈을 쓰러 특정한 곳으로 놀러 간다.
나는 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 실패하건 성공을 하건 내가 직접 만든 인생을 지어보기 위해 음악을 시작했다.(실패하면 실패한 음악가에 대한 가사를 적어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달콤한 봉급과 예측 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안전함의 유혹에 휩싸이고 있다. 이 산업화 사회 속으로 들어오라는 강한 압박이 조여 오지만 몸부림치지 않는다. 심지어 안락함까지 느껴진다. 멸치로만 보이던 정장 입은 남자들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한다. 월세에만 쫓겨 생각지도 못했던 내가 고작 10만 원 여유가 생겼다고 주식이니 부동산, 주택청약, 적금에 대해 떠들어보고는 상상을 한다. 날렵하게 머리를 자르고 기름칠을 하고 세계경제 추이를 떠드는 내가 약간 섹시해 보인다. '이거 다 대출이에요~'라며 아파트에 사람들을 불러놓고 꾀병을 부리는 상상을 하니 실실 웃음도 나온다. 그리고 '저도 한때 뮤지션을 꿈꿨습니다만..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작은 앨범 몇 개 내봤어요.'으로 시작하는 멘트로 음악 동호회를 장악하는 에이스를 꿈꿔본다.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난생처음 재태크니 뭐니하는 정보들을 찾아 보았다. 몇개 찾아봤지만 주택청약의
원리를 끝내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서른을 넘기고 무슨 뱅크로 끝나는 어플로 처음 자산 상태를 점검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바로 어플을 바로 닫았다. 오래만에 치킨을 사서 작업실로 들어갔다. 가는 길에 핸드폰 요금이 자동 결제가 됐다. 10만원은 사라졌다. 나는 다시 깨달았다. 돌아갈 길이 없다. 사온 치킨을 바로 먹지 못하고 피아노 앞으로 가서 곡을 써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