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 어느 고등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시험에서 300등 정도 떨어졌다. 우리 학교 학생수는 300여 명. 반항을 하냐고 물어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도저히 책상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효율만을 생각한 잔인한 사각형 공간에서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공부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어른들 말처럼 그 일이 나중에 쓸모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알지 못한다면 나는 하지 않겠다. 나는 알고 있다. 성적을 올리는 법은 자신이 받은 점수에 울고 웃는 것이다. 점수 공개를 할 때 바들바들 떨다가 점수가 낮으면 식음을 전폐하면서 좌절하고 바라던 점수가 나오면 안도를 하는 것이다. 이 지옥 같은 여정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어울리는 친구들도 바뀌었다. 그 친구들은 보충수업, 야자 시간에 담을 넘어 PC방에 놀러 갔다. 시험점수에 연연하는 애들보다 훨씬 쿨했고 나는 그게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전에는 여우 같은 것들이 주변에 참 많았다. 오후 5시 보충수업이 시작되면 나는 헤드폰과 CD 플레이어를 들고 교문을 나갔다. 뒤를 돌아보았다. 1000명이 넘는 전교생이 갇혀있는 있는 괴상한 학교 건물을 보니 오묘한 긴장이 혈류를 타고 온몸에 퍼진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자유! 날 가두었던 감옥에서 나와 끝없이 파란 하늘과 구름이 펼쳐있다. 그리고 상쾌한 비트가 시작된다. 나는 확신했다. 자유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미로콰이 앨범을 들으며 학교 앞 분식점을 지났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걸었다. 브레이크 부분에서 경쾌한 턴을 했다. 혹시 누가 봤을까 봐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더 격렬하게 춤을 추며 걸어 나갔다.
도착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어떤 앨범으로 시작해서 어떤 앨범으로 끝날지는 정해져 있다. 어제 새로 산 앨범을 듣는다. 2007년 더 콰이엇은 앨범 <The Real Me>를 발매했다. 어제 택배로 이 CD를 받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비닐을 뜯고 오디오에 넣어 밤새 들었다. 가사집을 쥐고 울먹였다. 돌이켜 보면 이 앨범은 대단한 철학가의 잠언도 베토벤의 대단한 음악성도 아니지만 나의 바로 앞에서 길을 알려주는 좋은 형이었음에 틀림없다.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살 수 없어. 바람처럼 왔다 이슬처럼 갈 수 없어’
더 콰이엇의 리드미컬한 랩으로 이 문장은 확실히 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거듭 확신한다.
그래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다음날, 이번에는 정말로 보충수업을 빼먹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의 새로운 친구들은 PC방을 가자고 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하지 않을 이유도 찾지 못했기에 학교 종이 울리자마자 급식실 뒤쪽으로 따라갔다. 한 명씩 담을 넘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한 발씩 디뎌 초록색 펜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넘어보지 못한 곳, 밟지 못한 곳이 보인다. 펜스의 정상에 올라탔다. 학교 건물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통해 책상에 앉은 아이들이 틈틈이 보인다. 반대편에는 흐느적 PC방을 향해 걸어가는 세네 명의 아이들이 있다. 나는 묘한 코 기운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담장을 넘어 PC방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