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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Jul 27. 2022

아무튼 밥

04 미스 초밥왕




 나는 스시*를 싫어했다. 사실 회를 싫어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스시라는 것이 회와 초밥의 조합이고, 밥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초밥의 기호는 대부분 회의 기호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적 처음 먹어본 회는 식감 부분에서 남의 살을 씹는다는 느낌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었다. 남들은 맛이 고소하다는데 솔직히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그냥 초장맛 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회나 스시는 어린 나에게는 안 먹기에는 아까운 비싼 음식이었다. 남이 사주는 그것도 비싼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것은 K-유교 어린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싫어도 꾹 참고 조금이라도 먹곤 했다. 그렇게 종종 외식으로나 누구 집에 놀러 가서 하나둘씩 먹다 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스무 살 무렵에는 어느새 광어나 우럭 같은 흰 살 생선회를 먹을 수 있게 됐다. 붉은 살 생선은 느끼해서 잘 못 먹었지만, 흰 살 생선은 먹다 보니 담백하고 고소해서 꽤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밥이라는 단어는 생선 초밥의 뜻으로 통용되나, 이 글에서는 초밥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 그대로 식촛물에 묻힌 밥을 의미하는 초밥이라는 단어가 계속 쓰이므로 생선 초밥은 원어 음을 그대로 차용해 스시로 표기합니다


 그러다가 대학생 때 훈제연어가 뷔페 메뉴로 나와 인기가 있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붉은 살 생선의 세계에도 발을 들이게 됐다. 그 레스토랑은 아르바이트생에게는 35% 할인을, 직원에게는 40% 할인을 해주어서, 일이 일찍 끝난 날은 자주 몇 명이 모여서 음식이 목구멍까지 차도록 먹곤 했다. 직원들은 단가에 빠삭해 어떤 메뉴를 먹어야 돈이 안 아깝게 뷔페를 즐길 수 있는지 알았고, 당연히 훈제 연어는 단가가 높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메뉴라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뷔페에 들어서면 연어부터 접시에 쓸어 담곤 했다. 그래서 그 레스토랑에 오래 다녔다 하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연어 맛있게 먹는 법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연어 느끼해서 잘 못 먹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렇게 먹으면 맛있어. 하나도 안 느끼해" 하면서 자기만의 방법을 열과 성을 다해 전수해주곤 했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먹다 보니 어느새 나도 연어 맛에 눈을 뜨게 되고 고소하고 진한 그 맛에 퐁당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흰 살과 붉은 살 생선회를 정복하고 나니 초밥집에 가서 거의 모든 메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회전 초밥집에서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하고, 가볍게 10 피스에 만 원대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동네 초밥집에서 혼밥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요란뻑적한 고급 일식집에 가서 비싼 만큼 살살 녹는 오마카세를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스시는 내 인생에서 극복의 아이콘이자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했으나, 역시 인생을 알 수 없는 법. 뉴질랜드에 가면서 평화로운 스시의 세계는 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나는 번역 일을 계속하기는 했지만 여러 사정상 매주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만만치 않은 집세를 위해 스시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서방에서 소비하는 스시의 형태는 동아시아에서 주로 먹는 형태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초밥이라고 하면 네모난 밥 위에 길게 생선회가 올라가는 니기리즈시(握りずし)의 형태를 떠올리지만, 서양권에서는(사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기네는 Western이 아니라고 하지만 여튼) 우리가 생각하는 초밥보다는 김을 이용해 말아먹는 롤(마키즈시, 巻きずし) 형태를 생각하곤 한다. 김밥처럼 김 위에 초밥을 올리고 생선회나 야채 등 한 가지 재료만 넣어 작게 마는 노리마키즈시(海苔巻きずし)와 생선회와 아보카도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크게 마는 후토마키즈시(太巻きずし),  그리고 후토마키즈시를 누드 김밥처럼 밥이 바깥으로 오게 말아낸 뒤 위에 다양한 고명을 얹는 캘리포니아 롤 같은 형식이 그것이다. 사실 마키는 확실히 스시의 일종이긴 하나 우리가 생각하는 스시의 대표주자는 아닌데, 뉴질랜드에서는 스시 하면 대부분 이 롤을 떠올린다는 것이(사실 그들은 스시와 롤이 서로 다른지 같은지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참 신기하다.


 스시의 가장 독특한 점이라면 미지근하게 먹어야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보통 음식은 뜨겁거나 차갑게 먹어야 맛있는데, 초밥은 밥이 너무 뜨거우면 생선이 익어서 안 되고, 너무 차가우면 밥이 다 굳어서 딱딱해져서 안 된다. 적당히 식은 밥 위에 생선회를 올려 먹어야 초밥과 생선회가 어우러져 최상의 맛을 낸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일하던 레스토랑은 대형 마트 안에 입점한 곳이라 위생 점검이 엄청나게 철저했는데, 뜨겁게 제공하는 음식은 모두 70도 이상을 유지해야 했고, 차갑게 제공하는 음식은 4도를 넘어서는 안 됐다. 그렇다, 스시도 4도를 유지해야 했다. 스시를 4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갓 지은 따끈한 밥을 얇게 펴서 냉장고에 집어넣어 식혀야 한다. 멀쩡한 밥을 찬 밥으로 만들어 열심히 스시로 말아 낸 뒤 잘라서 냉장 쇼케이스에 넣어 전시한다. 차가운 냉장 쇼케이스 안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초밥은 당연히 더 딱딱해져서 나중에는 한 개만 먹어도 차갑고 딱딱한 덩어리들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속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찬밥은 라면에나 말아먹어야 하는 뜨신 밥의 민족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우려고 돌리면 자칫 회가 다 익어버리고 만다. 익어버린 회라니…. 그것을 스시라고 부를 수 있는지 조금 자신이 없어진다. 회는 빼고 밥만 돌려야 하는데 로컬들이 과연 그런 수고를 할까 그것도 자신이 없다. 결국 이것은 스시라는 이국의 음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인데, 마트 측에서는 음식의 고유한 특징보다는 혹시 있을 배탈 사고를 방지하고 위생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스시에만 예외를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손님들이 딱딱한 스시를 사 갈 때마다 우리나라 음식도 아닌데 맛있는 걸 맛없게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님들은 "so good~~"을 외치며 스시를 사갔다. 아니… 저기요… 그거 아니에요…. 듣는 이 없는 나의 외침이 얼마나 많이 허공에서 부서졌던지.


 그렇게 먼 태평양 나라에서 한국 외국인 노동자는 일주일에 4번 차가운 밥과 차가운 재료에 손끝이 시려가며 아침마다 스시를 말았다. 김밥을 마는 것과는 마는 법이 조금 달라 처음에는 고전했으나 곧 기계처럼 하루에 몇십 줄씩 종류별로 말아 재꼈다.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나오는 장인을 생각하면 곤란하고, 그냥 공장에서 똑같은 상품을 매일 찍어내는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 여하튼 우리가 생각하는 스시의 대표주자 니기리즈시 메뉴보다 이 롤이 훨씬 더 잘 팔려서 아침 업무의 대부분은 롤을 말고 자르고 포장하는 일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하고 오후 2시쯤 집에 왔기 때문에 점심은 대개 초밥으로 때웠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아침부터 식초 냄새에 시달리고 밥과 사투를 벌이다 보면 좋아하던 초밥이 냄새도 맡기 싫어지고 만다. 그리고 점심마저 매일 스시로 먹다 보면 이제 스시의 스만 들어도 지긋지긋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식초 냄새에 절어 아픈 손목과 손가락을 부여잡고 집에 와서까지 초밥을 먹을 때면 진짜 '지겹다 지겨워.'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초밥은 알고 보면 설탕과 식초가 많이 들어가고 스시 자체가 밥의 비중이 높은 음식이라 엄청 살찌는 음식이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찐 7kg의 살 중에 아마 한 5kg는 스시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찐 살은 뉴질랜드에서 내 자존감을 깎아 먹는데 아주 큰 몫을 했다.


이 밖에도 뉴질랜드에서 내 자존감은 여러 이유로 착실히 깎여 나갔는데, 많은 이유 중에 또 한 가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진로 고민을 세게 하고 있을 당시라서(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남들보다 너무 뒤처져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나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마음에 잘 새겨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내가 가는 속도가 나에게 가장 적당한 속도라고 되뇌었지만, 마음은 '남들은 다 이 나이에 알아서 다들 자기 일을 하고 사는데 나는 뭐 한다고 이 먼 땅까지 와서 스시를 말고 있지? 요리사가 되고 싶다거나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서 비자를 따고 싶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곤 했다. 다들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은 친구들.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지 못하는 것 같은 자괴감 같은 것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다고 뭘 하고 싶은지 도통 알 수 없이 지리멸렬하게 지나는 시간들. 시간을 보내려고 들여다보는 미디어에서는 늘 바쁘고 뜨겁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내있었고 흔히 성공한 커리어우먼들의 삶을 비추었다. 그런 것을 볼 때면 나는 그저 뜨뜻미지근하게 하루하루 근근이 벌어 먹고사는 노동자일 뿐이라는 서글픔 같은 것들이 밀려오곤 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Somebody였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저 Nobody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나를 채워갔다. 세상은 늘 '나에게 열정으로 불타라', '뜨겁게 살아라', '최고가 돼라', '빠르게 트렌드를 쫓아가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소유하지 마라', '느리게 살아라', '이익 앞에서 냉정해져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꿈도 목표도 없이 미적지근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정말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많은 날을 잠 못 들었었다.


  인생에 적합한 속도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속도라면, 인생의 적합한 온도는 과연 몇 도일까? 결국 나는 수많은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면서 속도에 대한 질문과 똑같은 대답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다른 것을 모두 태워버릴 것처럼 뜨겁게 사는 이도 있고, 다른 것에 휩쓸리지 않을 정도로 차갑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뜨뜻미지근해도 괜찮은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지 않을까. 늘 뜨겁거나 차갑지 않아도, 그저 체온과 비슷한 정도의 온도로 오늘과 내일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생도 충분히 최고의 맛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스시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차가워 딱딱해진 스시를 접시에 담아 생선회를 빼고 물을 아주 살짝만 뿌려 전자레인지에 20초 정도 데웠다. 그리고 다시 정성스레 빼놓은 생선회를 넣어 미지근한 스시를 입에 넣었던 어느 겨울날, 나는 스시가 다시 맛있게 느껴졌다. 스시는 나에게 또다시 극복의 음식이 되었다.


스시는 사실 생선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발전한 음식이다. 얇게 저며 소금이나 식초에 절인 생선을 밥알 사이에 묻어 발효해 먹는 음식이 그 유래라고 알려져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상온에서 생선을 보관하기 위해서 개발된 음식인 것이다. 맞다, 스시는 태생부터가 뜨뜻미지근했다. 그러다가 뉴질랜드의 나처럼 하루하루 밥벌이에 치여 빨리 한 끼를 때우려는 노동자에게 팔기 위해 생선을 발효하지 않고 식초를 들이부어 밥 위에 얹는 형태가 되었다.  그렇게 스시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제자리를 지키며 하루하루 버티고, 깎이고, 채여가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해 각 계층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노동자들의 스시에서 임금께 진상되는 고급 음식으로 가지를 쳐나갔다. 그 과정에서 스시에는 경사와 축하를 기리는 뜻으로 寿司(목숨 수, 살필 사)라는 한자가 붙었다. 조정에 진상되는 음식이 된 경사스러움을 축하하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스시처럼 뜨뜻미지근한 사람들의 일상도 버티고 상황에 맞춰 변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경사스러운 무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스시가 그렇게 지겹지 않다. 아, 그래도 한 3년간 롤은 안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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