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전설 _ 이지은 그림책, 웅진주니어
어느 날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져 심술쟁이 호랑이 꼬리에 피어난 노란 꽃 한 송이.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나쁜 장난만 일삼던 호랑이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꼬리 꽃 때문에 변했다고요?
우당탕탕 호랑이와 꼬리 꽃의 진득한 우정 이야기. 꼬리 꽃 덕분에 숲 속 동물들과 점차 가까워지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된 호랑이는 모든 날, 모든 계절을 신나게 꼬리 꽃과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와 꼬리 꽃 모두 털이 하얀색으로 변하게 된다. 헤어짐을 예감한 꼬리 꽃은 마지막까지도 호랑이와 즐거운 놀이를 한다.
홀씨가 되어 홀홀 날아간 꼬리 꽃, 그리운 그 자리에 숲 속 동물 친구들이 호랑이와 함께해 준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봄, 들판 가득 노란 꽃이 가득하다.
이지은 작가의 그림책 중 <친구의 전설>을 가장 처음 읽게 되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친구의 전설 뮤지컬‘ 홍보 현수막을 보게 되었고, 그림책 원작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해서였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아직 만보가 만화 형식의 책을 익숙해하지 않을 때라, 그리고 나 또한 만화 형식의 그림책을 읽어 줄 자신이 없어서 꽁꽁 숨겨 두고 나만 혼자 읽었다. 가끔 이런 책들이 있다. 내가 보고 싶어서 일단 사고, 나중에 만보를 읽어 주게 되는 책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그만 눈물이 찔끔 나고 말았다. 노란 꽃이 홀씨가 되어 훌훌 날아갈 때 아픈 이별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특정한 이별의 기억이라기보다는 살면서 숱하게 겪었던 헤어짐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단짝 친구와 헤어졌을 때, 좋아하던 선생님이 전근 가셨을 때, 친구들 중 나 혼자만 다른 학교에 진학하게 됐을 때, 가슴 시린 짝사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민들레 홀씨처럼 홀홀 날아가 버렸던 이별의 순간 속으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흘러서 만보랑 이 책을 읽었을 때 만보가 어떤 것을 느꼈을지 궁금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만보는 이별의 순간을 느끼기보다는 민들레 홀씨가 되어 날아가는 순간을 황홀하게 느꼈다. 홀씨가 날아가는 장면에 박 가공이 되어 있어서 반짝반짝 참 아름다웠다. 아마도 만보는 헤어짐이 무엇인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어린 영혼이었을 것이다. 만보가 이 그림책을 읽고 가장 만족감을 느꼈던 순간은 홀씨가 되어 날아간 노란 꽃이, 다시 들판 가득 피어서 호랑이를 만나러 왔을 때였다. 봄이면 민들레 홀씨를 홀홀 불어 사방팔방 씨앗을 퍼뜨리는 만보이기에, 마지막 장면의 노란 꽃이 가득한 들판을 매우 좋아했다. 이별의 순간보다 황홀한 재회의 순간을 더 집중하는 것처럼.
한참 동안 깔깔거리며 만보와 이 책을 자주 읽었던 때가 있었다. 칸칸이 적힌 작은 글씨들을 실감 나게 읽으며 역할극을 하듯이, 애니메이션을 보듯이 읽었다. 그리고 그쯤에 ‘친구의 전설 뮤지컬‘도 보고 왔고, 이지은 작가의 다른 책들도 열심히 읽었더랬다. 그러다가 지금은 이 책에 흥미가 살짝 식은 상태였는데, 오늘 다시 이 책을 꺼냈다. 헤어짐의 슬픔을 알게 된 만보를 위로하기 위해서다.
우리 가족은 얼마 전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도, 아는 사람도 없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 그 때문에 2년 동안 다니던 유치원을 수료하고, 올해부터는 새로운 유치원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만보는 아주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유치원에서 준 수료 사진 속 친구들 얼굴을 보다가 그만 이별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들이 있는데… 이제 다시 만날 수가 없어… 엉엉….”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즐거움이 또 있을 거야.”
“여기에는 친구가 없어… 그럴 수가 없잖아… 엉엉….”
한참을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울던 만보는 친하게 지낸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 집에 초대할 수 있다는 말에 울음을 그쳤다. 이사 온 이곳은 시골이라,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 유치원에서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많은 기관으로 옮겨야 하나 하는 고민이 깊어진다.) 그러니 헤어짐이 더욱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생생한 이별을 겪은 만보의 눈물에 나도, 남편도 마음이 아팠다.
수료식 때 같은 반 친구들과 015B의 <이젠 안녕>을 같이 불렀다고 한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라는 가사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그 노래를 부르면서 헤어지는 순간이 매우 슬펐다고 한다. 엄마들 단톡방에도 그 노래를 같이 듣다가 울었다는 친구가 몇몇 있다는 이야기도 올라왔다. 6살, 7살 어린이들에게도 이별은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내가 아이들의 우정의 깊이를 너무 얕게 봤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금방 잊을 거라고,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슬픔의 단계를 건너뛰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불가능한 일인 것을.
오늘 밤 만보와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말해 주려고 한다. 헤어짐은 또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며,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걸.
신나게 놀다 다시 만나.
카테고리: 창작 그림책 (국내)
추천 연령: 6세 이상 - 헤어짐을 슬퍼하는 친구들에게
관련 주제: 친구, 우정, 이별, 새로운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