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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위한 되풀이

201018

by 이건우

나는 겨울이 좋습니다. 겨울은 춥고 앙상합니다. 겨울은 밝고 창백합니다. 숨을 쉬면 숨이 보입니다. 숨은 하얗습니다. 숨은 피어나고, 숨은 흩어집니다. 하얀 숨들이 흩어져 더해진 겨울은 하얗습니다. 피어나는 것들이 많으면 흩어지는 것들도 많습니다. 모두 하얗습니다. 앙상하고 창백한 표정입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올 때면 내게도 피어나고 흩어지는 것들이 생길 것입니다. 몸에는 조그만 열꽃들이 피기도 할 것입니다. 마음에 하얀 김이 서리기 시작할 때 겨울은 돌아올 것입니다. 흩어졌던 겨울이 다시 필 것입니다. 춥고 밝은 마음이 하얗게 여물어 갈 것입니다.

가을엔 곡식이 익고, 겨울엔 마음이 익습니다.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희게 맺히는 마음이 있습니다.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가만한 마음에는 하얀 나비가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나비가 날아갈 마음의 빈 곳에 손을 대어 봅니다. 겨울이 오면, 그곳에도 나비가 피어오를 것입니다. 그곳에서 나비는 흩어질 것입니다. 지난겨울에도 그랬습니다.

나는 겨울이 좋습니다. 희고 밝은 것들이 피어나고 흩어지는 계절입니다. 차가운 숨을 들이마셔도 뜨거운 숨이 나옵니다. 마음이 익는 방식입니다. 겨울이 올 때까지 성긴 숨을 쉴 것입니다. 숨이 비로소 희고 밝아질 때, 나는 피어나는 것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흩어지는 것들을 볼 것입니다. 나비가 나는 방식입니다.

나는 겨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비가 나는 겨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비를 깨우는 중입니다. 늘 그래왔습니다. 흩어졌던 것들은 흩어지기 위해 되풀이됩니다. 겨울은 춥고 앙상하지만, 나는 겨울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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