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진우 Nov 19. 2022

본인 장점을 5가지나 댈 수 있나요?

전 아니요.... 그래도 생각해보려고요.

 대학을 졸업한 지 이제 좀 되었는데도 아직도 3학년 때의 일이 자주 생각난다.

그 날은 드로잉 실기 수업의 종강 날이었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곧 다가올 방학에 들떠 하고 있었다. 약간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 갑자기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꺼내셨다.


 “지금까지 함께 수업을 들은 학우들에게 자기소개할 겸, 마무리 인사를 할 겸,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5개씩 말해보세요.”


 느닷없는 주문이었다. 나는 다행히 출석부 중간에 있어, 바로 발표할 일은 없었다. 하필 성에 ‘ㄱ’이 들어가는 바람에 맨 처음으로 자기소개하게 된 어떤 여학생은 당혹스러워 했다. 그녀는 멋쩍은 낯으로 손을 들어 제 소속을 밝히고 소개를 떠듬떠듬 시작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 익숙해진 모양인지 그녀는 곧 제 이야기를 술술 꺼냈다. “저는 이런 점이 별로고요, 이런 점은 꽤 괜찮아요.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제 이런 성격으로 잘 해결하기도 했고요....”


말을 마치고 나서 박수가 나왔다. 바로 그다음 학생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 역시 처음 입을 열 때는 주춤거렸으나 이내 간결하고 명확한 어조로 자기에 대해 능숙히 설명했다.


어느덧 출석부 중간까지 다다라 내 차례가 찾아왔다. 이름이 불리자마자 나는 손을 들었다. 앞서 여러 학생의 소개를 들었기에 어떻게 말하면 되는지 대충 감이 잡힌 상태였다. 나는 별로 긴장하지 않은 채로 내 학번과 소속 학과를 밝혔다. 그리고 단점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 좀 내향적인 편입니다. 인간관계가 좁아요. 음, 그리고 많이 불안해합니다. 어떤 일이든 대담하지 못해요.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 쉽게 휩쓸리기도 해요.”


 솔직하되 너무 비굴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괜히 말 중간 중간에 웃음기를 실었다. 실실대는 꼴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내 단점들이 그리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제법 괜찮은 삶을 살고 있노라고, 그런 스탠스를 당당히 보여주고자 했다. 다만, 그 스탠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단점 5가지를 다 말한 뒤 나는 갑자기 말을 잃어버렸다. 내 장점이 무엇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은 탓이었다.


 “어, 그리고 제 장점은요....”


 이상한 일이었다. 별로 긴장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이 완전히 백지화되었다. 나는 초조하게 얼마 없는 내 성공의 경험을 마구잡이로 떠올렸고 그 결과, 장점 하나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전 성실합니다. 성실하다는 칭찬을 몇 번 들어봤어요.”


 정말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이따금 들어온 말이었다. 음, 그래, 난 성실할 거야. 학점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렇지? 뒤늦게 스스로 장점을 납득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또 나오지 않았다. 성실한 거 말고도 다른 장점이 뭐가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아무거나 말해야지 싶으면서도 들러붙은 입술이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정적이 길어졌다. 학생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바보같이 어버버하는 내 모습을 교수님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우진우 학생? 계속하세요.”

 “아, 네.”


 그러니까요... 제 장점은요...., 말꼬리를 늘리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하지만 생각나지 않은 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단점이라면 더 말할 수 있는데 말이다. ‘교수님, 장점 대신 단점을 더 말해도 되나요?’ 하도 말이 안 나오니 도중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그날 나는 장점 5가지를 전부 말하지 못했다. 자기소개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제 단점은 물론이고 제 장점까지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나는 그들의 당당한 모습을 멍하게 지켜봤다.




 그때 있었던 일은 아직까지 충격이 크다. 알고는 있었다. 원체 자기 긍정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래도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나인 게 분명하다고. 좀 서글픈 일이다.


 지금도 종종 긍정을 잃을 때가 있다. 심할 때는 내핵을 뚫을 수준까지 땅굴을 깊이 파 나를 맹렬히 비난한다.


 ‘난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 난 쓰레기야. 아니야, 난 분리수거도 안 되는 찌꺼기야! 다들 날 좋아하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해! 내가 봐도 난 진짜 별로거든.’


 대충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울분과 설움에 차 징징거리다가 문득 멈춘다. 23살의 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모두의 앞에서 내 장점 하나 제대로 설명 못 하는, 어리석고 어린 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뭘 그렇게까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건지 과거의 내게 안타까움이 인다. 그와 동시에 지금의 나한테도 동정이 일어난다. 분명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날 보며 안타까워할 테니까 말이다. 미리 안쓰러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굴을 팔 때 23살의 나를 떠올리며 장점 5가지를 다 찾으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여전히 5가지를 다 찾는 게 쉽지 않다. 단점이라면 언제든 줄줄 쓸 수 있겠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보려 한다. 익명성의 힘을 빌려 여기에 내 장점을 전부 적어보겠다.


장점1. 성실하다.

이건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첫 번째로 댈 수 있는 장점이다. 물론 예전만큼의 성실함은 아니다. 밤을 새우고 작업에 열을 올리고 미친 듯이 일하고, 이런 건 더 이상 하지 못한다. 그럴 체력도 없거니와 그럴 열정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나 자신을 성실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근거에는 내가 아직 무사히 회사에 다닌다는 점에 있다. 월급 루팡은 해봤어도 무단결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단 한 번도’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회사를 빼먹지 않고 다니는 직장인이라니. 과거, 학원 땡땡이를 그렇게 몰래 치던 내가! 진심으로 기특하다.


장점2. 인내심이 좋다.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봤다. X-ray를 찍었고 결과가 나왔다. 목부터 허리까지 엉망진창이었다. 요즘 몸 어디든 쑤셔서 정상적인 뼈의 형태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정말 찍고 보니 정상이 아니었다. 병원 진료실에서 이런 물음이 날라 왔다. “그동안 안 아팠어요? 어떻게 참으셨어요?” 이에 나는 “그냥 참았어요.”라고 답했다. 의사 선생님은 오오, 감탄 아닌 감탄사를 뱉었다.


음... 아무튼, 난 인내심이 좋다. 잘 참는다.


장점3. 천성이 부정적이면서도 긍정적이려고 노력한다.

나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천성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데 노력을 쏟고 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얼마 전, 우리 팀이 신사업을 맡게 되었다. 나는 걱정이 들어 회의실에서 이 사업이 과연 잘 될지 의문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러다가 도중에 잘 될 거 같다고 황급하게 의견을 바꿨다. 괜히 내 부정적인 발언으로 동료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걱정됐다. 돌연 성과가 잘 나올 거라 말하는 내 얼굴 위로 황당한 시선이 따라붙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처럼 나는 꿋꿋이 긍정적이려고 노력한다. 잘 안되면 긍정적인 척이라도 한다.


장점4. 예민함을 무기로 삼으려고 한다.

상처받는 걸 쉬이 잊지 않는 편이며 불편한 상황을 그냥 넘기지 않는 편이다. 그 때문인지 과민하게 반응할 때가 많다. 우리 엄마는 예전부터 나보고 예민하다고 말했다. 당연히 칭찬의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 나도 내 예민함이 싫다. 제발 무던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떨 때는 이 예민함도 도움이 된다. 정확히는 예민함이 무기가 되는 순간이 있을 거라 믿으며 산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꼼꼼함이 필요한 디자인 작업이나 감정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글 작업에서 말이다. 어떻게든 단점을 좋은 방향으로 승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 근데 이거 장점3과 겹치나?)


장점5. 고집이 세다. 그래서 잘 포기하지 않는다.

쉽게 휘둘리는 주제에 어떤 일에 관해서는 괜한 똥고집을 부리곤 한다. 그렇지만 고집이 세다는 건 잘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연결된다.


지금 가장 포기하지 않는 건 뭘까. 아마 소설 작업일 것이다. 정말이지, 글재주가 없는데도 꾸역꾸역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타자를 친다. 문장을 맺고 점을 찍는다. 언제는 소설을 쓰다가 운 적이 있었다. 더럽게 안 쓰여서였다. 갖은 애를 써서 어떻게든 페이지를 채워도 내용이 더럽게 재미없어서였다. 애석한 일이나 오늘도 미련스럽게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 망해가는 내 소설을 끝까지 붙잡는다. 이 똥고집이 완결로 이어지리라 기대를 걸면서.




 장점 5가지를 주르륵 써봤지만, 어딘가 애잔한 느낌이 든다. 억지스럽게 짜낸 티가 난다. 꾸역꾸역 근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좀 웃기기도 하다. 그래도 23살 때보다는 장점이 4가지나 늘었다. 그게 어디냐며, 생각하기로 했다. 장점3을 들먹이면서 이 글을 급하게 끝내본다. 난 참 긍정적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