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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Dec 04. 2023

새 시대에 필요한 과학기술과 철학

하이젠베르크의 삶을 돌아보며


프라이부르크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제일 흥미롭게 들었던 태양 에너지 수업. 그 흥미로움은 그저 태양광이 기존의 에너지를 대체할 거라는 전망 때문만이 아니라, 물리학자이자 이 대학과 연계된 연구소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던 노교수 덕분이었다.


교수님은 으레 어르신들이 그렇듯 예전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셨다. 수업 도중 본인이 80년대 후반, 처음 이곳 프라이부르크에서 석사논문으로 태양전지를 연구할 때만 하더라도 태양광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하는 이는 드물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려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회의론자가 많은데 그때는 오죽했겠는가. 40여 년 전, 스무 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태양광에너지 연구소(Fraunhofer ISE)는 지금 유럽대륙 내 최대 응용과학 연구기관 중 하나인 프라운호퍼 연구소 내에서도 규모로 따지면 두 번째로 큰 연구소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과학자들이 생각이 바뀌어서 세상에 보급되기보다는 외려 그들이 죽고, 새로운 세대가 그들을 대체하면서 받아들여진다.”


교수님은 이를 아인슈타인이 말했었나 하면서 머뭇거렸다. 나는 그 당시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아 찾아보았지만, 정확한 인용구를 찾지 못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하이젠베르크에 관한 자서전을 읽다가 막스 플랑크가 본인의 자서전에서 언급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한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것의 반대자들이 설득당하고 개종선언을 하는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자들이 서서히 사라져 없어지고 자라는 세대가 처음부터 진리와 친숙해지는 경로를 통해 자기 자신을 관철한다.”

(“A scientific truth does not triumph by convincing its opponents and making them see the light, but rather because its opponents eventually die and a new generation grows up that is familiar with it.”)


원문: "Eine neue wissenschaftliche Wahrheit pflegt sich nicht in der Weise durchzusetzen, daß ihre Gegner überzeugt werden und sich als belehrt erklären, sondern vielmehr dadurch, daß die Gegner allmählich aussterben und daß die heranwachsende Generation von vornherein mit der Wahrheit vertraut gemacht ist." Max Planck, Wissenschaftliche Selbstbiografie, Leipzig 1948, Seite 22




막스 플랑크 평생 기존의 고전역학과 대비되는 새로운 세계관을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실증적인 증명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했으니 이 말이 구구절절이 이해가 간다. 그가 생각했던 이론은 30년이 지나서야 다른 연구자에 의해 끝내 증명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 핵심 인물 중 하나인 하이젠베르크.


그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 20세기 초반의 이론물리학자들의 친숙한 인물이 많이 나온다. 그의 몇 년 선배였던 파울리부터, 보어, 그의 지도교수는 좀머펠트. 이외에도 플랑크, 아인슈타인의 이름도 언급된다. 2차세계대전 당시 원자탄을 만들려던 연구 과정도 소개된다.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접하고, 적국이었던 독일의 이야기를 보니 또 새롭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그저 나치에 부역했던 게 아니라 전문가로서 본인의 나라가 더 망가지는 것보다 그곳에 남아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고 전쟁 이후 망가진 조국 과학의 재건을 힘썼다는 점이 인상 깊다. 어쩌면 그저 나치가 싫어 망명한 과학자보다도 더 고된 길을 걸었던 이는 그가 아니었을까.


나치 독일이 미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패배했던 요인이 단순히 경제 규모에서의 차이뿐만이 아니라 과학 기술 정책이 국가 정책과 극명하게 충돌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몸소 체험한 그는 전후 독일 과학 재건에 있어, 과학기술정책 및 정치에 깊숙이 개입한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 그저 과학기술 자체로서가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기술이어야 하며, 그 수단으로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랜 민주전통을 지닌 나라들에서 사람들은... 과학이 모든 형태의 공공생활에서 책임의 일부를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근대 산업국가에서 과학연구의 역할을 볼 때 20세기 중반에 정치와 과학이 서로 독립적으로 수행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과학과 정치의 분리는 단지 하나의 환상, 근대세계에서 과학이 떠맡고 있는 책임으로부터의 위험한 도피일 수 있다.”

“사회가 과학연구를 강력하게 지원해줄 것을 바라면서도 그 밖의 경우에는 두 영역의 광범위한 분리를 옹호하는 생각은, 나에게는 우리 시대에 더이상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또 인상 깊은 점은 그가 해냈던 물리학의 돌파구(breakthrough)가 단순히 물리학적, 혹은 수학적 지식보다도 철학적인 고찰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철학적 고찰을 혼자가 아니라 부단히 다른 이와 토론하면서 이를 정립했다는 점 또한 주목한다. 천재도 토론이 필요한데 범인인 나는 얼마나 더 많은 토론을 통한 오류의 수정이 필요하겠는가.


한편, 내 지식이 짧은 탓일 수도 있지만, 현대 물리학엔 20세기의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등의 슈퍼스타가 등장하지는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기술의 진보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 인류에게 제일 당면하고 긴급한 문제는 당면한 기후변화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기후변화 중 제일 큰 문제를 차지하는 것이 에너지 분야이기에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제일 중점적으로 연구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이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으로 태양광, 풍력, 수소, 배터리 등등을 논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번만큼은 개인적으론 사람들에게 제일 회자되는 인공지능을 언급하고 싶다.


혹자는 인공지능의 기술이 에너지 효율을 높여 기후변화 문제에 이바지한다고 하는 이가 있는 반면, 그보다는 인공지능 자체에 에너지 소비가 어마무시하여 에너지 효율로 얻는 에너지 절감을 뛰어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자연을 착취한 방식을 본다면 당연히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양자역학의 많은 돌파구가 결국 원자탄으로 이어지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처럼, 어쩌면 인공지능 기술의 진보 끝에 파멸, 폭주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또 어쩌면 인류는 상호파괴를 금하고 억제의 수단으로 핵을 바라본 것처럼, 인공지능도 그런 길을 밟을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핵 개발의 열매가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 인공지능의 연구 결과가 챗GPT를 만든 오픈AI가 말하듯 낭만적으로 인류를 위한 연구로만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데에서 우려는 계속된다.


한편 이전 세대의 위대한 석학들의 삶을 되짚어보건대, 그 중심엔 그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 뒷받침했다는 걸 상기한다. 오펜하이머가 산스크리트어를 외운 것처럼, 하이젠베르크가 시를 항상 가까이 두고, 꽤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다는 점이 그저 수학만 한다고 경지에 이르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


이렇듯 더 많은 공부와 철학적 고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되짚어본다. 또 어쩌면 플랑크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한편 지금의 상황을 보면 지금의 세대가 이전보다 더 현명하지도, 더 순수하거나 선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장래엔 더 많은, 어려운 문제를 불러일으키지는 않겠냐는 고민도 함께한다.




마지막으로 하이젠베르크의 철학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막스 플랑크가 거부당했던 30년 정도의 역사를 떠올리며.


“이 이른바 ‘실증주의’는 과학의 발달에서 오늘날까지도 아주 중요한, 그러나 숙명적인 재난과 같은 작용을 했다... 실증주의는 하이젠베르크의 커다란 철학적 적이었다. ‘실증주의는 커다란 연관성을 보지 않으려 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안개 속에 묻어두려고 하는 오류를 범한다. 적어도 그것은 아무도 연관성에 관해서 숙고하도록 고무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는 마지막까지 본래의 문제는 철학의 영역에 있지 실재에 대한 불충분한 지식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주 일반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실험에서 입자들의 스펙트럼을 갑자기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계의 신을 만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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