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와 관련된 괴담과 진실 사이 어딘가에
우린 가끔 간과하곤 하는데 물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건 없다. 독일에 살면서 그 중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왜? 갑자기?
아래의 지도를 살펴보자.
흰색에 가까울수록 석회함량이 적은 물, 짙은 초록색 내지는 붉은색일수록 석회량이 더 많다는 뜻인데, 독일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를 비롯한 바이에른, 프랑크푸르트 주변의 독일 중부지역과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작센과 튀링엔, 마지막으로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북부 지역까지 골고루 석회함량이 많은 물을 지니고 있다. 순간, 기차를 타며 봤던 풍경을 떠올린다. 적어도,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 주에 있었던 수많은 시멘트 공장들. 그곳의 물은 석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지나갈 때만 해도 이렇게 생각지는 않았는데, 이렇게도 연관을 지을 수 있다.
한편, 내가 사는 독일 남서부의 끝자락, 프라이부르크엔 유난히도 석회함량이 적은 물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의 논문 주제와 맞물린 추론을 이끌어낸다. 이는 아버지가 독일에 와서 했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데, 이곳을 비롯한 검은숲 지역은 석회암보다 화강암이 더 많은 지역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지질이라는 걸 의미하는데, 그리하여 독일 내에서도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 석회 성분(독일어로 kalk)이 정말 인체에 해로울까?
많은 괴담과 같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과학적으로 ‘소량’의 석회성분은 인체에 무해하며 오히려 이 미네랄이 도움이 된다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이 석회 때문에 이 유럽에서 맥주 혹은 와인 문화가 발달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이 특유의 텁텁한 물맛은 우리나라에서 먹는 물과는 다른 맛임은 분명한데, 우리가 사 먹는 제일 비싼 생수, 알프스의 에비앙의 석회성분이 웬만한 독일의 수돗물보다도 석회 성분이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다. 즉 아예 영향이 없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물을 마시는 점에 있어선 크게 상관이 없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이곳 사람들은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 정수기? 그런 건 이곳에 살며 본 적이 없다. 혹자는 이 석회 성분이 배관을 막히게 하여 애초에 정수기를 설치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이 석회 성분이 안 좋은 점이라면, 배관은 배관이고 우리가 쓰는 모든 주방 기구에 이 석회 성분이 낀다는 셈이다.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데, 그것과 더불어 적어도 피부에 닿았을 때 더 건조하게 하고, 머릿결을 뻣뻣하게 만들 수 있다. 피부가 예민한 사람은 그리하여 이곳에서 없던 피부병도 생길 수 있다. 나 또한 예민한 편이라 이곳에서 머리가 더 빠지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음, 서양인의 탈모 인구가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일까? 알 수 없다.
한편, 이 프라이부르크로 이사 오기 전 만났던 누군가가 이야기하기를, 이곳 프라이부르크의 수돗물은 검은숲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이 석회 성분이 전혀 없다고까지 말을 한다. 그러곤 이곳에 이사 오고 물을 쓰는데, 역시나 이 석회 때문에 냄비에 얼룩이 생긴다. 그가 거짓말했던 걸까?
그러곤 어느 날, 독일인들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곳 중앙역을 기준으로 서쪽, 즉 라인강에 가까운 곳은 독일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일반 물과 동일하고, 이 반대쪽인 동쪽, 즉 검은숲과 가까운 지역은 모두 검은숲으로부터 나오는 물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아! 그런 비밀이...) 그들이 이야기하기를, 검은숲 쪽의 수돗물을 마시면 물 자체가 너무 맛있다며, 반대쪽과는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래도 반대쪽 물도 독일 평균 중에선 아주 좋은 것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이 대화 이후, 이 중앙역 기준으로 반대편인, 검은숲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건가 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해봤다. 그렇다면 내가 마시고 씻는 물이 그야말로 자연에서 오는 물이 아니겠는가. 허허. 한국에서 살면서는 절대 해보지 않을 생각을 이곳에 살며 하게 된다. 심지어는 이것 때문에 저쪽 동네가 더 집값이 비싼가 싶은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