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다니엘 Aug 19. 2024

여름 휴가, 장도의 시작

독일 최고의 풍경을 찾아 떠나다

간간이 당일치기로 어딘가로 가긴 했는데, 이렇게 장거리로 이동하는 건 3월 이후 처음이다. 첫해 독일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격주로 놀러 갔던 걸 생각하면 참으로 많이 변했다. 이는 웬만히 볼 건 다 봐서일 수도 있고, 지금이 더 바빠졌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때보다 경제적인 상황이 안 좋기 때문일 테다. 수차례 이론적으로 갈 수는 있지만, 가지 못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꼭 어딘가를 가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나름대로 찾아냈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점이라면 이곳이 이제 나의 일종의 가족이 있는 진정한 집이기 때문일 테다.      


그래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나의 욕구는 언제나 그래왔듯 존재했다. 이 역마살은 해군을 가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본능일까. 생각해보면 분명히 어릴 때 난 집돌이였고, 새로운 것을 보는데 그다지 흥미로워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것도 내가 알고자 하는 욕구가 팽창하면서 온 부산물 따위일까. 그 부산물이 커지다 보니, 이젠 하나의 기질이 되어버린 지도 모른다.      


오늘 시작된 긴 여정은 역시나 다소 즉흥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전날 분명히 유럽 최대의 놀이동산을 다녀오고 심신이 피곤할 법도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원래 친구들을 만난다고 뮌헨으로 떠나는 것도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었기에. 하지만 여러 조건이 만족하여 뮌헨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바이에른의 알프스를 가는 것보다 그냥 바이에른 알프스에서 하루 자는 건 어떤가 하는 논리로 이어졌다. 그래서 어제부터 부랴부랴 기차편과 숙박 시설을 알아봤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Garmich-Partenkirchen. 독일의 최고봉 Zugspitze가 있는 곳이다. 독일 내에선 동계 스포츠의 메카이다. 우리로 따지면 평창 정도가 되겠지. 그런 면에서 바이에른의 알프스는 한국으로 따지면 강원도가 되겠다. 대신 강원도의 메인이 강릉이나 원주 정도가 아니라 아주 현대적인 서울이나 부산 정도의 사이쯤인 뮌헨이겠지. 그나저나 뮌헨을 한국의 도시에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싶다.      


어쨌든. 이 최종 목적지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일찍 산행을 시작하려던 나의 계획은 비싼 숙박비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일 싼 숙소의 가격이 20만원부터 시작하니, 가난한 학생이자 나홀로 여행객이 부담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래서 집에서 여기까지 가는 길 어딘가에 숙소를 잡기로 했다. 그래도 이 지역 자체가 알프스이다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개중에 제일 합리적인 오스트리아 티롤 어딘가에 숙소를 부랴부랴 잡았다. 이는 이것마저 놓치면 오늘 길거리에서 자겠다는 불안함으로부터 기인했다.      


재밌는 건 독일에서 독일로 이동하는데 기차가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 이는 알프스의 험준한 산이 국경을 따라 기찻길을 만들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일 테다. 이 교통편은 아마도 아주 멋진 경치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지금은 검은숲을 지나고 있다. 이번에도 고속열차를 제외하곤 모든 기차를 탈 수 있는 49유로 티켓으로 이동한다. 덕분에 좋은 건 좋은 풍경을 보며 지나가는 점이랄까. 이쪽 루트를 지나가는 것도 이제 열 번은 넘을 테다. 이번엔 바이에른의 도시들이 있는 동북쪽이 아니라, 이렇게 하여 살짝 동남쪽으로, 콘스탄츠 호수 (Bodensee)를 지나간다. 그리하여 이번엔 프라이부르크로 이사 오며 2년 전에 방문했던 콘스탄츠가 아니라 반대쪽인 린다우로 갈 계획이다. 거기서부턴 알프스를 넘어가는 여정이다.      

뮌헨에 도착하고 토요일엔 내가 독일에서의 삶을 시작했던 Straubing의 맥주축제를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완벽한 휴가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처음엔 이 휴가 전에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그리고 이를 기다린다고 많이 지쳤는데, 이렇게 2주 정도 기다린 게 여러모로 더 알찬 여정이 될 수 있었던 듯하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인가.              




이제 도나우 강의 발원지, Donaueschingen을 거쳐 콘스탄츠행 기차를 탔다. 하지만 콘스탄츠까지는 가지 않는다. 중간에 갈아타서 호수를 둘러 갈 예정이다. 검은숲을 완전히 넘으니 지형이 평평하고 듬성듬성 산이 보인다. 예전엔 이곳도 숲이든 무엇이든 했겠지만, 다 벌목하고 도로를 깔고 했을 테다. 검은숲을 넘어 이쪽으로 온 적은 한 번도 없어 새로운 풍경이라 흥미롭다. 별달리 지금까지 대단한 건 없지만.     


아침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이니 기차가 정말 한산하다. 아마 적어도 열 두시까지 가지 않더라도 두 시간만 지나도 이 기차가 이렇게 한산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린다우까지만 간다면, 알프스를 빙글빙글 도는 사람은 얼마 없을 테니 그곳에서도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먹을 것 쌌는데, 마치 내가 반지 원정을 떠나는 호빗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바리바리 싸들고, 큰 배낭에 그 옆에 숲까지 있으니 안성맞춤이랄까. 먹어서 치울수록 배낭이 가벼워지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아직도 짐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아이패드라도 안 챙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기에서 내가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오류를 범하지 않아 다행이다. 지금처럼 요 며칠 아무 생각 안 하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휴가의 본 목적을 달성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금요일부터 과감하게 쉬었는데, 불과 며칠만에 머릿속이 아주 상쾌하다. 괜히 이 휴가에 머리 아플 일을 만들지 않고 싶다. 못 보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얼마나 좋은 일인가.



보덴제 도시의 풍경들. 저 멀리 보이는 알프스

린다우에서의 구경은 뒤로 하고, 체력이 있어 목적지까지 가기로 했다. 몇 번의 작은 열차와 버스를 탔는데, Kempten 이후에서부터는 웅장한 알프스를 통과한다. 여러 아름다운 호수와 산, 이것이 2년 전 내가 바이에른을 떠나고 제일 그리워했던 것 아니었던가. 많고 많은 곳 중에 Immenstadt가 기억이 남는다. 이곳 숙소가 괜히 비싼 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이렇게 많은 시골을 지나고 버스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저 높은 뾰족 봉우리가 나를 반긴다. 저것이 Zugspitze인가. (알고 보니 한참 더 가야 볼 수 있었다) 숙소를 잡으려고 했던 몇몇 곳을 지나니, S-bahn이 기다린다. 도대체 몇 번을 갈아탔던가. 6번? 7번? 다행인 건 단 한 번도 다음 열차를 놓치지 않았다. 역시 고속열차보다 완행열차가 더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인가. 한국과는 참 다르다.      

S-bahn의 종점은 Zugspitze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는 곳. 날씨도 그렇고 물리적으로 바로 당일에 가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이렇게 가서는 내가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초 계획은 72유로라는 어마무시한 티켓 가격 때문에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열차 안에서 정보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정상까지 가는 게 훨씬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다음날 일찍 그곳에 가보기로 한다.      



그래.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오스트리아 티롤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Reutte.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여기도 적지 않게 스키 리조트와 휴양시설이 갖춰진 나름 오스트리아 알프스 내 명소다. 내리자마자 웅장한 산들이 나를 반겨준다.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맥주를 먹으니 긴장이 풀어져 완전히 퍼진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던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보통 일할 땐 안 아프고, 휴가 때 아픈 것도 비슷한 증상이다. 긴장이 풀어지니. 나 또한 훈련받을 때 한 번도 안 아프던 게 끝나고서 온몸이 아프지 않았던가.      


각설.      


점심 먹고 쓰러져 잠깐이라도 눈을 붙였다. 슬슬 일어나 이곳을 둘러보려고 하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일기예보를 보는데 괜찮다고 하여 이곳 주변의 호수를 둘러보기로 했다. 웬걸. S-bahn을 내리자마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진다. 이대론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그치길 기다리지만, 그칠 것 같지 않은데, 저 멀리 산 너머는 푸른 하늘이 떠 있다. 아무래도 산악 지형이라 그런지 날씨가 변화무쌍하다는 걸 실감케 한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헛수고를 하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다시 시내로 돌아와 걸칠 옷이라도 한 벌 사려고 하는데,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아뿔싸. 여긴 오후 여섯 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시골도 참 시골이다. 어쩔 수 없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중국집을 갔는데, 탕수육을 판다. 생각보다 괜찮다. 배도 든든하겠다, 숙소 옆에 온천이 있는데, 이곳에 숙박하면 50% 할인된다고 하여 가본다. 온천 주인장은 사람이 없는지 영업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오늘 손님을 더 안 받는단다. 에헤이. 손님 없다고 사우나 불은 다 내렸나 보다. 어쩔 수 없지. 그냥 집에 돌아가서 일찍 자기로 한다.           

그나저나 이곳은 정말 아름답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과 가정들이 눈에 띈다. 심지어 도시 안에 말을 위한 농장도 있다. 알프스의 험준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게 정말 장관이다. 다만 아쉬운 건 너무 차량이 많다. 차량 통행 때문에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길이 협소하고, 다소 위험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시골이고, 겨울엔 스키 타러 사람들이 많이 올 테니 그런 이유로 차량 중심의 도로 형성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의 도시 외곽, 시골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젤 여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