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ugspitze에서의 하루, 그리고 콜드플레이
다음 날.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을 먹고 Zugspitze로 갈 준비를 마쳤다. 시간이 남아 부족한 아침잠을 더 보충하기도 한다. 아쉬웠던 건 더 빠른 기차편이 취소되어 9시에나 출발할 수 있었단 사실. 이게 지금 어떤 결과물을 낳게 될까.
한 시간 남짓 가는 기차 가는 길이 마치 설악산 국립공원 한계령에 진입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원래 이런 대단한 산에 들어갈 땐 비슷한 걸까. 인제에서의 맑은 물들이 떠오른다. 독일인, 오스트리아인들은 설악산을 가면, Zugspitze 가는 길 같네? 라고 생각하려나. 이 장엄한 광경에 갑자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마지막이 생각난다. 이것만큼 알프스에 어울리는 음악도 없지 않을까.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반복해 다시 듣는다. 듣다 보니 어느새 난 독일 국경을 지나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날씨는 굉장히 화창했고, 해발 3000m의 추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몇몇은 두꺼운 옷을 챙기기도 했으나, 정말 많은 이들이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올라갔고, 생각보다 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문제라면 도착하자마자 올라가려 했으나,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나는 그곳에서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이게 내가 간과한 첫 번째 결과. 다만, 그 시간에 이곳의 시내를 둘러본 건 참으로 신의 한 수였다. 아름다운 바이에른의 시골은 그 지역만의 작은 맥주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고, 시내 안에 있는 성당에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있었다. 재밌는 건 많은 이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영성체만 모시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는 점. 그들은 아마도 옆에 있는 많은 맥주정원(Biergarten)에서 일하는 이들일 테다.
Garmisch-Partenkirchen은 알고 보니, Garmisch와 Partenkirchen, 두 마을이 따로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1936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빙상경기장, 스키점프대 등이 남아 있다. 그나저나 1936년, 나치가 권력을 잡고 있었던 때가 아닌가. 그들은 역사적인 올림픽 개최 사실만 대문짝처럼 붙여놓고, 나치 이야기는 쏙 빼놓았다. 하하.
아무튼, 여긴 이 Zugspitze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광경 덕분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사실 독일 내에서 제일 핫한 명소인 협곡도 가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허락하지 못해 가지 못했다. 언젠가 또 갈 일이 있겠지. 엄청난 자연 광경을 볼 수 있을 뻔했는데, 아쉽게 됐다.
어쨌든. Partenkirchen 시내를 구경하다 보니, Zugspitze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지 못하게 생겼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해 다시 돌아갔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배낭으로만 이동하니, 걸음이 날아다니는 것만 같다.
Zugspitze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인데, 독일에서 올라가는 것, 오스트리아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오스트리아로 올라가게 되면, 시간은 훨씬 짧은데 이곳의 또 다른 명소인 Eibsee, 산 아래에 있는 호수는 갈 수 없다. 그냥 산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는 셈이다. 가격은 10유로 더 싸지만, 이게 당락을 결정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래. 독일에서 올라가려면, 일단 기차부터 타야 한다. 이 기차를 타고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다. 종점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타느냐, Eibsee에서 케이블카를 타느냐. 결국 왕복으로 돌아올 것이기에 선택하면 된다. 나로선 먼저 올라간 이후에 내려와서 수영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종점까지 가기로 했다.
이 산악열차의 스케일은 아주 어마어마한데, 처음엔 경사진 길만 올라가더니, 나중엔 꽤 긴 터널을 통과한다. 이 산악열차는 Zugspitze 올라가는 걸 위해 1930년에 건설됐다. 이 모든 건 19세기 말부터 계획되었는데,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건설이 지연됐고, 이는 수십 년이 지나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건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경제가 박살난 상황에 많은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대규모의 토목공사는 아니었을까. 심지어 이 건설이 진행되는 와중에 미국발 대공황, 즉 전쟁이 끝나고 10년쯤 지나 전쟁배상금으로부터 숨통이 트이던 독일에게 제일 강력한 타격을 준 사건이었는데 국가에선 어찌됐든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시행한 셈이다. 실업자 구제의 목적도 있었겠지. 이건 어쩌면 독일판 뉴딜정책은 아니었을까. 이 모든 게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각설.
이 터널을 통과하니, 해발 2500m, 하나의 평원에 도착한다. 이 평원에서 조금의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독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만년설도 보게 된다. 만년설 내지는 이 빙하와 그냥 죽은 얼음의 차이는 이 얼음 아래에 물이 흐르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가까이 가면, 이 빙하 안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마어마한 경치도 경치지만, 제일 더운 이 한여름에 아직도 얼음과 눈이 있다는 사실, 얼음장과 같은 물이 흐르는 사실에 대자연에 감탄한다. 어찌 헤겔은 이런 걸 보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지루한 것이라고 평가했던가. 난 Königsee 이후로, 처음으로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는다. 소름이 쫙 끼쳤달까.
Glacier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정상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다. 웬걸. 별로 차이 안 나는 고도에 두통과 답답함이 느껴진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고산병이던가. 아니면 맥주 때문이었을까. 그나저나 이 정상 위에 지어진 이 엄청난 건축물에 감탄하고, 자연에 또 감탄한다. 많은 태양광 패널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Island Grid의 참된 예가 아닌가.
유럽의 지붕, 알프스가 내 눈에 들어온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최고봉들이 줄지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물론 내가 이따가 내려갈 Eibsee의 풍경도 보인다. 아주 장엄하다. 이제 이 인위적인 건축물에서 진정한 정상으로 올라가기로 해본다. 등산화가 아닌데다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밟았는지 돌이 대단히 미끄럽다. 아찔하다 못해 무섭다. 무서움을 무릅쓰고 올라갔거늘, 사진의 십자가를 빼놓고 철막대기만 찍어놓았다. 에휴. 사진을 너무 이후에 확인해 다시 올라갈 엄두는 내지 않는다.
다음은 독일 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편으로도 넘어가 본다. 같은 정상인데 다른 풍경이 보인다. 케이블카를 보는데, 역시 오스트리아 쪽엔 올라오기 전에 별로 볼 게 없다. 어쩌면 버스를 타고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오는 길이 아름다우려나. 그럴 수도 있겠다만, 독일의 그것처럼 인상 깊을 것 같진 않다.
내려가기 전에 풍경을 가슴에 간직하고, 호연지기를 품은 채 다시금 베토벤 교향곡을 듣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와중, 구름이 몰려온다. 아. 이제 이 구름이 다 산을 덮어버려 시야가 제약될 거라는 걸 생각한다. 여기까진 모든 게 환상적이다. 한 시간 늦게 발급된 표도, 늦게 출발한 기차도.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으니 내려가 보기로 한다. 머리도 계속 아팠고, 춥기도 했다. 호수에 내려가 수영도 해야 하지 않는가.
케이블카는 만원이었고, 좋은 자리 선점에 실패한 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다. 그래도 그 정도면 여기 케이블카에 탄 누구보다도 많이 위에서 즐겼으니 만족한다. 도착해 호수에 가기로 한다. 수많은 사람이 차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 주차장은 꽉 찼는데, 사람들은 계속 오니 기약 없이 뒤까지 차량 행렬이 이어져 있다. 나갈 때도 지옥 같겠다고 생각해본다.
수많은 이들이 피크닉, 물놀이, 하이킹을 즐기는데 나 역시 제일 좋은 전망에서 물속에 뛰어들었다. 물은 아주 적당한 온도로, 물은 정말 눈부시게 맑았다. 다시금 Königsee 이후 최고의 경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Zugspitze를 배경으로 수영하는 건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다. 30분 정도 했을까. 이 정도면 뽕도 다 뽑았다. 이젠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수많은 사람이 버스 줄에 서 있는 점. 절대 모두가 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난 기차를 타기로 했으니 가는데, 웬걸. 기차 줄도 어마어마하다. 나까진 분명히 타겠거니 했는데, 내 앞 20명쯤 앞에서 끊긴다. 또 다른 30분을 기다리게 생겼다.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다.
다행히 30분 후에 기차를 타고 빨리 줄을 선 덕분에 자리도 얻어 갈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사진을 찍고도 싶었지만, 나의 오래된 핸드폰은 수명이 다해 눈에만 담아 간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히 기계에도, 내 눈에도 담지 않았는가.
Garmisch 역에 도착한다. 이상하다. 사람들이 다 뛴다. 추측하기로 이 많은 사람이 다 뮌헨 가는 기차로 탈 것만 같다.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짐을 찾고 나는 이번에도 운이 좋게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다만 다 큰 어른들이 자리를 앉겠다고 뛰고 무질서하게 줄 서는 모습은 볼썽사나웠다. 물론 나도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이제 20분쯤 지나면 뮌헨 중앙역에 도착한다. 얼마 만인가. 1년쯤 되었나. 오늘 뮌헨 올림픽 공원에서 콜드플레이가 공연한다. 이미 하고 있다. 티켓이 없어도 올림픽 공원 위에 올라가면 귀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바로 그리로 가기로 한다.
내일 일어나 컨디션이 괜찮으면 내일도 호수에 가보기로 한다. 내가 가고 싶은 호수는 바이에른의 유명한 맥주 중 하나인 Chiemsee로 가려고 하는데, 내 친구 Carl은 내게 수도원과 다른 호수를 추천해준다. 무엇이 됐든, 아주 좋은 당일치기 여행이 될 테다. 몸과 마음이 자유롭고 좋은 기운을 얻어간다. 한 시간 반 남짓의 기차여행은 아주 시끄럽고 불편하지만, 이 장엄한 광경을 위해선 감내해야 하는 기회비용일 테다.
뮌헨역에 도착하자마자 인파를 뚫고 뮌헨 올림픽 공원에 도착했다. 모든 사람이 경기장 쪽으로 발걸음을 향하는데, 콜드플레이를 보러 왔겠구나 싶다. 수많은 인파와 돌덩이 같은 짐에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만, 오랜만에 친구와 그의 애인, 그 애인의 대형견을 보니 마음이 녹는다.
콜드플레이를 한때 참 좋아했었다. 의도치 않게 모든 앨범을 샀었고, 차에서, 집에서 두고두고 들었다. 내가 아는 히트곡들이 들리는데 참으로 즐거웠다.
아, 어디서 봤냐고? 여기 뮌헨에서 유명 팝스타가 공연을 하게 되면, 티켓을 끊고 보러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밖에 있는 공원, 공원 안에 있는 작은 언덕 잔디밭에서 공연을 보는 게 하나의 전통이다. 2년 전엔 롤링스톤즈 공연을 똑같은 방법으로 봤는데, 이번엔 콜드플레이다. 사람이 대신 훨씬 많다.
집에 가는 길은 역시 험난했다.
겨우겨우 집에 가 여독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