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노잼도시..? 하노버
반 년 넘게 이어진 꼬리에 물고 물던 질문과 짓누르던 압박이 금요일 오전 부로 종료되니, 이상하게 허전함이 몰려온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주말에도 무언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갑자기 주어진 모종의 해방감이 내게 무언갈 해야 한다고 소리친다고 말하는 듯했다.
고국에 잠깐 다녀가는 것도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안은 제외하니, 유럽 대륙을 조금 돌아보자는 생각이 제일 든다. 일단 뭐 짧게라도 즉흥적으로 가보지 않았던 독일의 몇몇 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북독일 뤼벡이다. 가는 길에 하노버도 들리기로 한다.
하노버하니 영국부터 떠올랐다. 영국 왕조가 원래는 하노버 공국이 뿌리였으니. 처음 하노버의 군주였던 조지 1세가 영국 왕위를 받을 때만 해도, 그는 실권이 없는 대영제국의 왕보다도 하노버의 군주로 정치력을 행사하려 했는데, 시대가 지나며 영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너무 강해지다 보니, 그의 후손들은 독일의 조그만 동네인 하노버의 영토를 신경 쓰지 않게 됐다.
한편 조지 3세가 세상을 떠나고 여성의 왕위계승이 인정되지 않았던 독일의 관습 때문에 영국의 왕위는 빅토리아 여왕이, 하노버의 왕위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가 차지하게 된다. 하노버의 군주는 이후, 독일 통일 과정에서 처음엔 오스트리아에 줄을 섰다가 프로이센이 통일하는 바람에 쫓겨났다가 이후엔 프로이센 황제와 화해하여 제국 통치가문이 되었는데.. 결국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귀족 작위를 박탈당하고, 독일 제국까지 패망하며 완전히 몰락하게 됐다. 뭐 그래도 귀족이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노버 내 궁전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이런 걸 보면 군주제를 폐지하는 데에 나도 동의하고 싶다.
그나저나 지금은 영국왕실이 윈저로 불리는 이유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의 커넥션을 끊으려고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국인들은 동의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 그들의 군주는 독일인의 후손이 아닌가.
프라이부르크를 떠날 때만 해도 새벽이긴 했지만, 청명한 하늘이었는데 여긴 정말 우중충하다. 매번 프라이부르크가 날씨가 더 좋은 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듯하다. 기차는 원래 가던 경로에서 뒤로 돌아가더니 다른 길로 갔는데, 철로에 누가 뛰어든 모양이다. 그렇게 설명은 안 하지만, 사고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경우엔 뛰어들었기 때문일 거라는 독일인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철로에 뛰어든다니, 생각해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한 시간 더 늦게 목적지 하노버에 도착했다. 저번 모임에서 만난 한국분이 짧게나마 가이드를 해줬다. 하노버에서 온 그분들은 수차례 졸업만 하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이것과 더불어 많은 사람이 하노버엔 진짜 볼 게 없다는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들은 터라 기대치가 바닥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인구 50만이 넘는 독일 내에선 대도시인만큼 중앙역 주변에 쇼핑 거리는 분주했다. 독일의 몇몇 도시, 특히 쾰른과 같은 도시에서 보는 것과 유사하게 2차세계대전 때 폭격이 많이 됐던 이유로, 중앙역 주변이 모두 모던한 건축물이다. 말이 좋아 모던한 거지, 고풍스러움이 없다는 의미다.
그렇게 분주한 쇼핑거리를 지나니, 구시가지가 나오는데 건물들이 제법 고풍스럽다. 기대치가 너무 없어서 그랬을까. 생각보다 도시의 느낌이 좋았다. 사실은 내가 하노버를 또 접한 이유가 있었는데, 이는 독일의 옛 총리인 슈뢰더의 책을 읽었기 때문인데, 그는 총리가 되기 전, 하노버가 주도인 니더작센의 주지사이기도 했다. 거기서 그는 니더작센 젊은이들이 보수화되는 걸 우려하며, 그들에게 쓴 편지를 봤었는데, 그때 난 여기가 그다지 살기가 좋지 않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사실 그런 선입견과 별개로 하노버는 살기 꽤 괜찮은 도시처럼 느껴졌다. 도시 내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고, 녹지구성도 잘 되어 있다. 누군가의 평가처럼 독일에서 제일 못생긴 도시라고 하기엔, 그것이 너무 박하다고 할 수 있다. 구시가지를 조금 지나니, Herrenhausen 궁전이 보인다. 이곳 지역의 맥주 이름도 Herrenhäuser인데 이 이름을 땄다고 한다. 이 궁전이 하노버 왕국의 후손들이 가졌던 땅이었단 말인가. 규모가 굉장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궁전을 끼고 있는 많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거의 대부분 대학 건물이다. 참으로 학생으로선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학의 이름은 Leibniz Hannover Universität. 미적분의 아버지, 그 라이프니츠다. 그는 궁정 고문으로 라이프니츠를 처음 왔는데, 수학뿐만 아니라 신학, 역사, 철학 등 손을 대지 않은 학문이 없다. 그야말로 독일의 다빈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 그를,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가 평가하기를, 그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지 않고 수학만 했다면, 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아니,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만들고 이진법을 만들었는데 그 정도면 이미 위대하지 않은가. 라이프니츠가 계속 수학만 했다면, 수백년을 앞당겨 현대 물리까지 통달했을까. 이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내 생각엔 그의 방대한 분야의 관심이 그를 수학에서도 업적을 이룰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 하이젠베르크 등도 다른 분야에 꽤 조예가 깊지 않았던가.
그나저나 대학교 내엔 라이프니츠가 썼던 몇몇의 원고, 2진법에 대한 글도 전시되어 있다. 이전까진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대학교의 로고가 2진법에서 따왔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아무래도 이전까진 하노버 출신과 이야기할 일이 없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대학은 독일 내 명성이 높은 9개의 공대, TU9 중 하나인데, 전반적으로 내가 느끼기엔 영어 친화적이지 않고, 독일어로 대부분의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소 올드패션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지원하지 않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교 서술을 이렇게 마치고, 궁전을 쭉 걸어가 본다. 역시 한 공국, 나라의 수도였던 곳인지라 궁전도 있고, 좋다. 프라이부르크는 이에 비해 다소 작은 도시라는 점을 이런 점에서 느낀다. 건물 풍이 빨간 벽돌이 많고 뾰족뾰족한 게 덴마크풍인가 했는데, 뉘른베르크(?)와 비슷하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본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궁전을 벗어나 시청사 건물을 본다. 앞에 호수도 있고, 거대한 시청인데 이 건물이 하노버를 검색할 때 처음 볼 수 있는 건물이 되겠다. 4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었을까. 그렇게 짧게 이곳의 투어를 마친다. 또 오게 될 일이 있을까. 멀기도 하고, 쉽지 않을 듯하다.
이제 기차는 함부르크로 떠난다. 함부르크에서 하노버는 고속열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이번의 목적지는 함부르크가 아니니, 다시 기차를 갈아타 목적지 뤼벡으로 향한다. 함부르크는 역시 대도시인지라 굉장히 복잡하고 사람이 많다. 뤼벡으로 떠나는 기차에도 사람들이 빽빽하다. 고속 열차를 타다가 지역열차를 타니, 사람이 많은건지, 고속열차로 지연되면 화나긴 하지만 그래도 이에 비해 쾌적했던 환경이 그립기도 하다. 50분 남짓 달리니, 뤼벡에 도착한다. 일곱시가 안 됐는데 벌써 깜깜한 게 내가 위도를 많이 올라갔음을 느끼게 한다. 여름엔 정말 해가 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