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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나길 Mar 24. 2021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르듯

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뷰

 -<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김선형/살림

 -출간연도: 2019

 ※스포일러 주의! 소설 내용이 담긴 글이므로 소설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1969년의 어느 날, 늪지에서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 주변은 시신을 발견한 소년들의 발자국 외의 다른 발자국이나 흔적이 없이 깨끗하다. 소설은 보안관 에드와 부보안관 조의 수사 과정을 보여주며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감아 습지에서 살고 있는 소녀 카야의 성장 과정을 그려나간다.


 여섯 살이던 카야는 아버지의 폭력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에 이어 형제들, 아버지까지 떠나 판잣집에 홀로 남는다. 처음으로 가본 학교는 알파벳 철자를 잘 모른다는 이유(+습지에서 살기 때문에)로 비웃음을 당한 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오빠 조디의 친구였던 테이트가 글을 가르쳐주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고, 테이트와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카야는 다시 혼자가 된다.


 한편, 현재에 이르러 카야는 체이스 앤드루스의 살인범으로 지목받는데….


 자세한 책 소개는 이쪽으로 -> http://aladin.kr/p/kLNFt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p.19)


 소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습지를 자신이 이해한 특성으로 뭉개어 이해하는 인간들의 인식과 달리 이 첫 문장에서 펼쳐진 이야기는 생명이 저마다 살아 숨쉬는 습지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 책에 붙은 추천사가 찬란할수록 책에 대한 기대감은 반비례해 깎이고 마는데, 이 책은 기대보다 재미있었고 곰곰이 생각해볼 것들도 많았다. 성장 소설, 추리, 로맨스, 법정 소설……. 추천사에 나열된 단어들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정말 다 담겨 있었다.


 이야기는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신이 발견된 현재와 카야의 성장 과정을 그리는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카야가 혼자 남겨진 1952년부터 1970년대가 중심적인 시간적 배경이다. 초반부를 읽을 때는 왜 굳이 그때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잡았을까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옳거니, 무릎을 쳤다.


 이 시기는 현대에 해당하는 동시에 인종차별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던 때다. 유색인들은 백인과는 다른 곳에 마을을 꾸려 살아가고, 같은 신을 믿어도 다른 교회를 다녀야 한다. 유색인은 가게에 출입할 수도 없다. 작중에서 노인인 점핑은 백인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따라와도 말없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놀랍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것도 불과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지금 20-40대인 사람들은 부모님의 나이를 떠올려보자. 부모님이 태어나거나 성장할 무렵에 그런 믿기지 않는 일들이 너무도 당연한 일로 자리하고 있었다. 배경이 이 시기이기에 의미가 중첩되며 이야기는 빛을 발한다.


 카야와 자연, 유색인은 착취와 배제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배척한다. 바클리코브 사람(백인)들이 습지에 살기에 '쓰레기'로 치부하는 카야에게, 마찬가지로 배제당하는 흑인들(점핑, 메이블, 제이컵)은 연민을 보인다. 어린 카야에게 필요한 구호품(옷, 생리대 등)을 모아 전해주는 것도 이들이다.


 바클리코브 사람들 뿐 아니라, 사람들은 쉽사리 다른 이를 자신과 분리하며 혐오를 일삼는다. 그렇다고 선천적으로 잔인한 성정을 지녀서, 일부러 타인을 배척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편견이 배어 있어서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름을 배제의 이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p.70)


 가족이 모두 떠나고 아무도 받아들여주지 않을 때, 습지는 카야를 품어준다. 카야는 자연에 속한 존재다.


 카야는 끊임없이 사람과의 관계를 원한다.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난 후에도 테이트에게 마음을 열고, 사람을 믿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체이스 앤드루스에게 곁을 내준다. 체이스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잘 맞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카야는 자신의 일부를 누르면서까지 그와 함께하기를 원한다. 마침내 결혼이라는 고리가 자신을 체이스의 가족과, 더 나아가 마을 사람들과 묶어주길 바란다.


 그러나 카야의 기대는 번번이 배신당한다. 체이스는 습지를 착취와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카야도 그에게는 착취와 욕망, 소유의 대상이다. 그는 카야와 가족이 될 생각이 없다. 카야의 바람처럼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개하거나 공동체와 카야를 이어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체이스가 카야에게 특별함을 느끼고 매료당했음은 분명하다. 다만 그가 카야에게 쏟아낸 것은 폭력적인 소유욕과 지배욕이다. 체이스는 카야를 억지로 취하려 했고 자신이 우위에 서고자 했다.


 카야는 체이스가 죽던 날 밤 알리바이가 있었음에도 유일한 용의자로 꼽혀 법정에 선다. 아마 카야와 같은 행적을 보인 마을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용의자로 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체이스 앤드루스의 죽음은 사고라고 단정하기에도, 살인 사건이라고 보기에도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조사의 결과가 카야가 저지른 살인사건이라는 쪽으로 완전히 기운 것은 사람들의 편견이 쌓여 무게중심을 틀었기 때문이리라.



 카야는 자신이 버림받고 고립된 까닭을, 자연을 관찰함으로써 이해하려 한다. 습지에 사는 생물들의 방식에 기대 삶과 관계를 받아들인다. 카야는 자연에 속해 있다. 공동체를 통해 사회화되지 않았기에 인간들의 규칙에서 벗어나 자연의 법칙을 따라 움직인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라 드러난 카야의 선택을 우리는 비난할 수 없다. 그는 철저히 자연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암컷 반딧불이가 수컷 반딧불이를 속여 잡아먹는다고 해서 반딧불이를 비난할 수 없듯이. 우리의 도덕은 인간 사회에서만 적용된다.


하지만 호소에 다다랐을 때는 높은 캐노피 밑에서 발길을 멈추고 습지의 어두운 비원으로 손짓해 부르는 수백 마리의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깊은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p.623)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생물이 야생을 간직하고 수백 년간 살아온 곳을 뜻한다. 카야가 속해있고 살아온 곳이기도 하다. 이 제목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습지에 사는 것. 카야가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리며 공동체에서 동떨어진 대상으로 여겨진 이유는 고작 그것이었다. 카야는 마을 사람들을 멀리한 채 자신을 받아들인 이들(조디 부부, 테이트)과 교류하며 습지에서 살아간다. 카야를 조롱하기 위한 '마시걸(습지 계집애)'이라는 호칭은 종국에는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 카야를 정의하는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



 책 곳곳에 공기처럼 스며든 차별과 혐오에 이따금 가슴이 선득했다. 흑과 백, 선과 악, 자연과 인간, 남자와 여자, 서양과 동양……. 우리는 너무도 쉽게 어떤 것을 가르고 단순화하고 대상화한다. 그렇게 나와 너를 분리한다. 일부였던 것이 부풀어 상대를 정의하는 커다란 특성이 되고, 나와 너를 분리하는 다름은 차별의 이유로 굳어지고 만다.


 인간은 습지를 이용과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습지는 뭍과 바다의 생물들이 숨쉬고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습지도, 조개도, 갈매기도, 바클리코브 사람들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마시걸인 카야도 흑인도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르듯이. 그 사이에는 우열도, 옳고 그름도 없다.


 어린 카야가 고립된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드문드문 사람들이 비친 호의 때문이 아닐까? 점핑과 메이블의 적극적인 도움과 카야의 삶에 스치듯 머물렀던 호의들. 그게 아니었다면 카야가 생존하는 것 자체가 가능했을까 싶다.


 소설의 문장들은 습지의 풍경과 다채로운 생물들을 선명하고 유려하게 펼쳐낸다. 시처럼 아름답게 자연과 외로움을 그려낸다. 생물학자인 저자의 시선과 경험이 녹아있어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가 어려웠을 텐데 번역가 님이 대단하신 것 같다. 아름다운 동시에 무거운 책이다.


 여기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권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아직 다른 책들을 읽느라 그걸 못 읽어서 아쉽지만 제목만 언급하고 지나가야겠다.


책 소개는 여기 -> http://aladin.kr/p/teD7U


 더불어 <앵무새 죽이기>도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인데,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관심이 있으면 이어서 읽기에 좋을 것 같다.


http://aladin.kr/p/tGPdc





사진출처:

https://pixabay.com/images/id-4460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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