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리스트>/로리 넬슨 스필먼/임재희/나무옆의자
-출간연도: 2015
※스포일러 주의! 소설 내용이 담긴 글이므로 소설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브렛 볼링거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얼마 전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개인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현실은 흘러가는 법. 특히 브렛은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평생 일궈낸 화장품 회사, 볼링거코스메틱의 CEO가 되어야 하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두 오빠와 그들의 배우자, 브렛은 둘러앉아 변호사의 말을 기다린다. 두 오빠는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될만큼 넉넉한 유산을 받았다. 브렛은 앞으로 새언니 캐서린의 상사가 되어 어머니의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마침내 변호사가 볼링거코스메틱의 새로운 대표를 발표한다. '회사는 캐서린에게 맡긴다.' 믿기지 않게도 그것이 어머니의 뜻이었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브렛은 얼이 빠지고 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브렛의 앞으로 주어진 유산이 없단다. 말도 안 돼!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데!
변호사 브래드는 브렛에게 잠시 사무실에 남아달라고 말한다. 브렛에게는 따로 전할 것이 있다면서.
사무실에 남은 브렛이 듣게 된 것은 정말로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브렛이 20년 전, 그러니까 14살 때 작성한 라이프 리스트를 마저 이루길 원하신단다. 목표를 이룰 때마다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받을 수 있고, 1년 안에 리스트에 있는 목표를 모두 이루어야만 유산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 전까지는 자신에게 할당된 유산 목록마저 확인할 수가 없다.
실의에 잠겨 집에 돌아왔지만, 차마 애인 앤드루에게는 CEO가 되지 못했다는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 다음날 심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꾸역꾸역 회사에 출근했건만, 돌아온 것은 또 한 번의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새언니 캐서린은 서랍에 어머니의 편지가 들어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가씨… 어머님이 아가씨를 해고하래요."
대체 어머니가 왜 이런 시련을 안겨주는지 모르겠다. 한없이 침잠해있던 그때, 리스트에 적혀있던 것 중 하나인 '사랑에 빠지기'는 이미 이루었다는 게 떠오른다. 브렛은 변호사 브래드에게 찾아가 자신은 앤드루와 4년째 사귀고 있으며 동거 중임을 말한다. 사랑에 빠지기는 이루었다고. 그러자 브래드는 주섬주섬 편지봉투를 하나 꺼내든다.
'브렛, 네가 앤드루와 사랑에 빠졌다는 얘길 하러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런데 내가 말한 사랑은 그런 게 아니란다.'
어머니의 편지는 단호하게 브렛이 품은 희망의 가닥을 쳐내버린다.
이렇게 여차저차해서 브렛의 라이프 리스트 달성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다. 여기서 14살 때 작성한 라이프 리스트를 24살도 아닌 34살에 이루어나간다는 점이 재미있다. 14살은 아이도 아니고 아직 성인도 아닌 시기다. 어느 정도 성장했지만 아직 말랑말랑하고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는 짧은 시기. 아직 미래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에 감싸여 있을 때다.
나이에 날짜변경선처럼 명확한 구분선같은 게 있어서 20살이 되면 곧바로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은 정해진 나이에 이르면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성인이 된 아이는 사회에서 요구받는 것들에 이리저리 깎이며 열려 있던 가능성의 문을 하나 둘 닫아버린다.
24살까지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삶이 더 많은 만큼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10년 전만큼은 아니라도 말이다. 34살은 어떤가? 물론 20대 때도 사회에서 기대하는 평균적인 삶의 과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만, 30대 때 받는 중압감은 또 다르다. 보통 30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뭘까? 직장에서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고, 자기 분야의 전문가에 여러 모로 성숙하고 안정적인 '어른'을 떠올리지 않는가?
그 이미지가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는 걸 다들 느낄 것이다. 10대 때는 마냥 어른으로만 보였는데 막상 내가 20대가 되고 나니 달라진 건 없는데 몸만 커버린 것 같고, 눈을 감았다 뜨니 벌써 30대인데 성숙하고 안정적인 어른이어야 한단다. 이윽고 불안해진다. 꿈? 라이프 리스트? 어릴 적의 공상 같은 걸 실현할 여유 같은 게 어디 있는가? 지금 당장 내가 있는 자리에서 터를 더 단단하게 다지고 튼튼한 성벽을 쌓아야만 하는데.
우리에겐 마치 정해진 국경선이나 날짜변경선처럼 숫자의 앞자리가 바뀔 때면 기대받는 역할이 있다. 정작 가까이 가면 그것은 물과 얼음 결정들로 이루어진 구름같이 뚜렷한 실체가 없다.
34살은 그간 너무 많은 풍파에 휩쓸리고 깎여 많은 타협을 해온 나이다. 언젠가 품었던 열정과 희망은 멋모르던 시기의 공상처럼만 느껴진다. 손을 뻗어 닿는 거리를 넘어, 그 한발짝을 뗄 용기를 내기 어려운 때. 그렇기에 34살의 브렛이 14살에 작성한 라이프 리스트를 이루어나가는 게 의미있게 느껴졌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꾼다. 취향이나 가치관 같은 것까지도. 그래서 처음에는 무려 20년 전에 작성한 리스트를 이루라며 등 떠미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기억을 더듬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릴 때와 분명 달라진 부분도 많지만 아주 근본적인 것들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좋아한다던지, 즐겁고 자유로운 느낌을 좋아한다던지 그런 것들.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고 한다. 내가 '행복'을 떠올릴 때 느끼는 감각은 즐거움과 충만함, 따뜻함, 자유로움 같은 것들이다. 고등학생 때 작성한 버킷 리스트를 보면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은 목록도 있지만 나열된 항목들이 그런 내 감각이나 선호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34살의 브렛이 14살의 브렛이 원했던 것들을 이루어나가는 시도가 필요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변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어린 시절과 단절되었던 브렛이 라이프 리스트를 달성하기를 시도하면서 어린 시절에 연결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브렛은 라이프 리스트를 이루어나가면서 깎고 지워나갔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잃어버렸던 어린 날의 용기와 기대, 호기심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다. 14살의 어린 브렛처럼.
작 중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현명하고 섬세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엘리자베스는 브렛이 버린 라이프 리스트를 소중히 보관하며 브렛이 자라면서 이루어가는 항목을 지워나간다. 딸을 애정으로 관찰하며, 브렛에게 맞지 않는 목록을 삭제하기도 한다. 지운 항목 옆에는 다정한 코멘트를 덧붙여놓았다. 그런 섬세함 덕분에 다소 과격하게 딸의 등을 떠밀었음에도 강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부터 네가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구나. 어느 순간부터 넌 자신감을 잃어버렸어.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노래하기 좋아했던 그 행복한 소녀가 언제부턴가 불안해하고 마음 졸이며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p.117)
무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했다가 야유를 받으며 내려온 브렛이 받은 편지에 적혀있던 말이다. 이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건 꼭 내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내게 완벽이라는 줄자를 들이대며 내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덧붙여,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에게 '디테일하면서 심플하게' 같은 요구를 하듯 복잡하고 난해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었다.
브렛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이 아니라 형편없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들을 시도할 용기를 냈다는 게 중요하다. 만족스럽게, 완벽하게 해냈기 때문에 다른 것들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브렛은 여전히 이 미션을 해낼 수 있을지,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하나하나, 목록을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랑에 있어서는 타협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앤드루와 헤어진 후, 브렛에게는 여러 남자가 다가온다. 그 중에서도 결혼까지 갈뻔했던 허버트 모이어는 완벽한 남자다. 잘생겼고 돈도 많고 이해심 많고 배려심도 깊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브렛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이다. 과분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이 남자. 그런데 왜일까? 브렛은 그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브렛은 몇 개월 동안 자신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어쩌면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같은 남자를 언제 또 만날 수 있겠어?' 이 부분을 읽는데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어려운 건 사랑이 아니라는 말. 그러니까, 진짜 사랑은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말했듯 사랑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초석 가운데 하나다. 꼭 연인과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랑은 인간과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있어서 타협을 한다. 이 사람과 헤어지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어쩌면 내 기준이 너무 높은 걸지도 모르니까. '세상에 내가 원하는 사람이 있을 리 있겠어?' '이 정도면 괜찮지.' 이런 말들로 나 자신을 설득하려 한다.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행복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에게 아무리 설득해봐야 그렇게 이어가는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브렛은 허버트를 완벽한 리조트에 빗댄다. 누군가는 완벽한 리조트를 좋아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그 완벽한 리조트가 안 맞을 수도 있다고. 더구나 '완벽'의 기준은 주관적이다.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상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게는 더없이 즐거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할 수 있는 것처럼.
브렛과 사랑에 빠지는 '버버리맨'과의 인연도 꽤 재밌는데, 둘은 서로 호감을 느끼나 어찌된 영문인지 계속 엇갈린다. 자칫 잘못하면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기 딱 좋게 말이다. 만약 브렛이 초반이나 중반에 버버리맨과 진전되었다면 지금같은 관계가 되기는 어려웠을 거다. 서로 엇갈리는 와중에 변화하고 성장한 브렛이 '버버리맨'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지금처럼 돈독한 사랑을 쌓아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엇갈리는 과정을 통해 저 사람을 잡아야겠다는 용기와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브렛의 라이프 리스트 항목은 다른 항목들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브렛의 삶을 예기치 못한 변화로 이끌고 간다.
사실 이 책은 결말보다 과정이 중요한 책이다. 누구나 책의 제목과 줄거리를 들으면 그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브렛의 삶은 너무나 많은 변화가 찾아든다. 어찌보면 짧기만 한 그 기간 동안 너무도 달라진 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찾아올 수 있는지를 내가 경험해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브렛처럼 용기를 내어 엄두가 나지 않던 것들을 시도할 때면 삶은 예기치 못한 곳으로 그 사람을 이끌고 간다.
작가분의 첫 출간작이라는데 용두사미도 아니고 구성도 괜찮았다. 어머니 엘리자베스와 브렛의 관계도 애정이 넘치고 따뜻했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는 자칫하면 작위적이 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다만 몇 가지 불편한 점도 있었는데…. 여기서 나온 엘리자베스-조니의 관계와 브렛-브래드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 그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결혼을 했거나 연인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생각대로 되나. 그러니 사랑에 빠지는 거야 그럴 수 있는데 잠자리까지 가진 건 변명할 여지 없이 불륜 아닌가? 그걸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처럼 얘기하는 게 이상했다. 꼭 그 설정이 들어갔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 동화 <집없는 아이>도 아니고 꼭 다정하고 좋은 친아빠가 필요했을까? 아버지와의 관계가 상처투성이면 상처투성이인대로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
브래드와 브렛이 관계를 가질 뻔한 장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일단… 다른 사람과 자려고 유혹까지 했으면서 여자친구한테 진심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도 이해하기가 어렵고…. 브렛은 바로 얼마 전에 전 남친 앤드루와 친구 메건의 관계를 알고 분노했던 참인데 정작 본인이 애인이 있는 남자와 관계를 가질 뻔 했다는 게… 그래 뭐, 인간이 어떻게 한결같기만 하겠냐만은. 그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친구 관계로 지내면서(이건 그렇다 치고) 여자친구와도 어울린다는 것도 좀 그랬다. 아무래도 불륜, 바람 미화라는 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브렛은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을 가지지 못하는 상태였으니 긍정해주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형태가 불편했지만…… 음, 불편했다.
책을 읽다보면 재미나 배우게 되는 것 등과는 무관하게 나와 결이 안 맞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게는 이 책이 다소 그런 느낌을 주었다. 좋았던 부분들도 많고 전하는 메시지와 결말이 마음에 들었음에도 그랬다.
작가분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브렛이라던데, 난 브렛과 여러 모로 잘 안 맞았다. 위에 언급한 것 때문은 아니고 전체적인 느낌이 그랬다. 딱히 브렛이 싫었다기보다 나와는 잘 안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 그래서 취향의 공통분모와 차이점이라는 갈래를 느낄 수 있었고 흥미로웠다.
결말까지 꽉 찬 해피엔딩이고, 브렛이 물려받은 유산 목록은 끝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그게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세세한 유산 목록이 공개됐다면 브렛의 시도와 노력, 변화나 그 의미들의 빛이 바래고 브렛이 겪어온 과정이 그 유산을 얻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을 테니까.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가 이런 말을 했단다. "매일 스스로를 두렵게 만드는 무언가를 해라." 계속 네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향해 밀고 나가봐. 그런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어디에 발을 디디게 되는지 묵묵히 지켜봐. 그것들이 결국 네 삶을 가치 있는 곳으로 이끌테니까." (p.118)
34살의 브렛에게 14살의 브렛이 적었던 라이프 리스트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고, 어떤 것은 현재 쥐고 있던 것을 놓아야만 시도할 수 있는 것이었다. 브렛이 라이프 리스트를 앞두고 보였던 반응은 우리가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을 떠올릴 때 보이는 반응과 다르지 않다.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린 날의 꿈은 미지와 두려움의 영역에 존재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왜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라이프 리스트였을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이었기에 '라이프 리스트'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외국에서 버킷 리스트와 라이프 리스트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쓰는지 어떤지는 잘 모른다.
책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본다. <라이프 리스트>는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이라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삶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리스트가 아닐까? 엘리자베스가 브렛에게 했던 것처럼 내가 스스로에게 기회를 준다면 나는 어떤 라이프 리스트를 시도해볼 수 있을까?
여러 이유로 미루거나 폐기해온 목록들을 다시 펼쳐볼 때다. 이제와 이 목록을 시도해본다는 건 두려움을 일으킨다. 어떤 것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일부 내려놓아야만 하기에 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해보며 어린 시절과 연결될 때, 삶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마법이 나타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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