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를 꼭 써야 하는 게 아니었나봐
북상하는 것.
고기압, 벚꽃, 누군가의 부음.
남하하는 것.
황사, 파업, 쓰레기. - <밤의 여행자들> 中
요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여행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출발선을 넘은 게 아닐까, 하고. 여행은 이미 시작된 행보를 확인하는 일일 뿐. - <밤의 여행자들> 中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構圖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 책 <타인의 고통> 中
무이는 요나가 며칠간 머물렀던 곳과 전혀 다른 표정을 갖고 있었다. 여행 기간 동안 요나가 본 것은 몇 가지 철 지난 재난으로 황폐해진, "원 달러."가 유행하긴 하지만 그래도 소박하고 촌스러운 시골이었다. 자신의 평가에 따라 이 섬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다시 걷게 된 무이는 마치 개장 전의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었다. - <밤의 여행자들> 中
누군가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밀어서 구멍에 던져 넣으라고 요구했다면 요나는 단숨에 이 일을 거절하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이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요나는 가만히 있었고,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이 일이 미칠 영향력에 대해 둔감해졌다. - <밤의 여행자들> 中
이제야 요나는 제대로 된 무이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요나가 5박 6일간 본 무이는 일부에 불과했다. 진짜 무이는 그 5박 6일에 서너 배의 그림자를 더 붙인 것이었다. 카메라 속에는 그 모든 것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5박 6일 동안 찍힌 것과 그 이후에 찍힌 것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재난은 두 세계 어디에도 찍혀 있지 않았다. 무이의 재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었다. 그것도 사진 따위로는 찍을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런 종류의 재난에 대해서 요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밤의 여행자들> 中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마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가 쓴 것으로 추정
아침 8시, 예정된 시간이 되자 해는 지난밤을 비추듯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사막과 도로, 리조트와 해변 위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공평했다. 부족의 구분도 계급의 구분도 지역의 구분도 없었다. 모두가 뒤엉켜 있었고 눈을 감은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 <밤의 여행자들> 中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관음증적인 향락(그리고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아직 죽지 않는다, 나는 전쟁터에 있지 않다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그럴싸한 만족감)을 보건대,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시련, 그것도 쉽사리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낄 법한 타인의 시련에 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 책 <타인의 고통> 中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 책 <아몬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