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내용이 담긴 글이므로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예고편이나 미리보기조차 보지 않은 채 이 영화를 재생했다. 작품 소개만 읽고 나도 올해 30이니 나와 같은 초조함을 느낄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며 정신 좀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근데 웬걸, 영화는 예상과 많이 달랐다.
난 소개만 보고 서른을 앞둔 작곡가(지망생)의 사랑과 우정과 고민을 다룬 가상의 이야기인줄 알았지…. 알고 보니 실화인데다, 유명한 뮤지컬 제작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다.
뮤지컬 <틱, 틱… 붐!>은 1인극이었던 조나단의 작품을 극작가 데이비드 어번이 3인극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난…
초반: 어…? 이거 뮤지컬 형식 영화였어?
중반: 어? 설마했는데 이거 실화 기반 영화였음?
후반: 어 맞네….
이런 깨달음의 과정을 거쳤다. 어쩐지… 최소 2000년대에 나온 영화 같은데(언제 나온 영화인지도 모르고 봄) 왜 1990년이 배경인가 했지….
가사에서 '1990년에 30살이라니!' 라는 말을 강조하길래 세기말인 배경과 주인공이 서른을 앞두고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인 것처럼 느끼는 걸 연결지어서 그때를 배경으로 잡았나 했다. 2000년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얘기가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니 당시 조나단 라슨의 심정은 그에 필적했을 듯싶다. 더구나 1990년대에 서른이면 지금보다 더 안정에 대한 압박이 컸을 테니까.
조나단 라슨은 30살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그는 8년 동안 식당에서 일하며 뮤지컬 슈퍼비아(Superbia)를 썼는데 제작하겠다는 제안은 들어오지도 않고 에이전트는 연락도 잘 안 된다.
같이 꿈을 좇아 뉴욕에 온 친구 마이클은 꿈을 포기하고 광고회사에 취직해 좋은 집에 차까지 생겼다. 중대한 워크숍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곡은 쓰지도 못했는데, 그 와중에 여자친구 수전은 멀리 떨어진 곳의 강사 자리에 지원했다고 한다. 조나단과 함께 갔으면 한다고. 세상에, 압박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스티븐 손드하임도, 존 레논도, 폴 매카트니도 30살이 되기 전에 데뷔했는데 정작 자신은 서른을 앞둔 지금, 데뷔는 커녕 당장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다.
"더 나이를 먹으면 서빙하는 작가가 아니라 글쓰는 게 취미인 웨이터가 될 뿐이야."
조나단이 느끼는 극심한 초조함이 반영된 말이다. 영화에서는 조나단이 초조함을 느낄 때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는 연출을 보여준다. 그렇게 숨막히는 초침 소리에 짓눌린 채 어떻게 곡을 쓸 수 있을까?
친구 마이클은 조나단에게 "널 움직이는 게 두려움이야, 사랑이야?" 라고 묻는다. 어떤 것을 오래 붙들고 있다보면 놓는 것이 두려워서 돌아설 수 없게 된다. 계속 붙들고 있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두렵지만, 이걸 놓아버리면 내게 남는 게 무엇일지 두려워 차마 놓을 수 없는 것이다.
"FEAR or LOVE?" 조나단은 그 질문에 미처 답하지 못한다.
극 중에서 나오는 모습과 영화 끝에 나오는 실제 조나단의 영상을 보면 조나단은 굉장히 유머러스한 사람인 것 같은데, 영화 속에서 그는 불안이나 불만을 대개 유머로 표현한다.
친구들과 파티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 'Boho Days'는 조나단이 자신의 인생을 자조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른이 되면 가정도 있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자리를 잡았을 줄 알았는데… This is the life! 이게 인생이야!
여기서 조나단이 '난 뮤지컬의 미래'라고 한 말에 지인과 지인의 친구가 보이는 반응이 인상적이다. 지금이야 그의 뮤지컬이 유명하니 그의 재능이 처음부터 눈에 띠었을 것 같지만 당시 조나단이 느끼는 불안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No More 영상. 사실 전철 문 닫히는 장면만 캡쳐하려고 했는데 넷플 캡쳐 안 되네...
마이클과 조나단이 'No More'을 부르는 장면에서, 마이클은 더 이상 낡은 아파트도 불편한 생활도 싫다고 말한다. 마이클뿐 아니라 조나단도 더는 생계를 걱정하거나 낡고 위험하고 불편한 집에서 사는 게 싫었을 것이다. 호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아닌 전철 문이 닫히는 장면에서 마이클과 조나단의 현실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부에 예기치 못하게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터지던 장면처럼 인생이 참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뮤지컬을 써야할지,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는지… 수전에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곡은 왜 써지질 않는지. 머릿속은 엉망진창인데 무엇 하나 결정할 수가 없다.
'Johnny can't Decide'의 가사에서 그의 복잡한 심정이 드러난다. 그런 조나단의 모습에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내가 겹쳐보였다.
수전에게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워크숍은 코앞이고, 곡이 안 써지는데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다. 친구가 병원에 누워 있는데 공연 생각이나 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이 든다. 하루 하루가 초조함과 불안, 혼란 속에서 흘러간다.
여전히 곡을 쓰지 못한 채 워크숍이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나가고 수전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마이클과도 화해하지 못했다. 조나단은 조금이라도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영장에 가서 헤엄을 친다.
여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새 곡의 영감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Center, center!'라는 가사와 함께 화면의 초점이 숫자 30에 맞춰져, 30에서 삶이 끝난 게 아니라 그 이후로도 삶은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전의 시간들이 이어져 서른이 되었듯. 숫자 앞자리가 바뀌니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크게 느껴지지만 그저 지나가는 시간의 일부일 뿐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막힌 악상이 떠오르듯 30의 앞뒤로 이어진 저 다섯 개의 줄이 오선지의 줄이 되어 음표가 떠오르는 연출과 노래의 여러 가사가 잇달아 울리는 연출도 정말 좋았다.
워크숍은 성공적으로 끝난다. 그런듯 보였다. 그러나 막상 연락을 받았을 때, 에이전트 로자는 '다들 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워크숍만 성공적으로 끝내면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는데. 결과는 그의 기대와는 다르다.
워크숍 이전에 로자가 조나단의 연락을 잘 받지 않거나 자꾸 서둘러 다음 전화를 연결하는 모습에서, 조나단에게는 로자가 동아줄이지만 로자에게 조나단은 여러 뮤지컬 제작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느낌을 준다.
업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또 봐왔을 로자는 조나단에게 이렇게 말한다.
"계속 써라!"
30살이라는 나이가 그저 연속되는 삶의 한 부분인 것처럼, 서른 이후에도 삶은 이어지듯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품 하나가 Boom! 터져서 뮤지컬 제작자로 성공하고 모든 게 뒤바뀌는 게 아니라 결과에 상관없이 계속 써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개중에 잘 되는 것도 있을 테지만, 어찌됐든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쓰고 또 써야 한다는 거다.
쓰고, 쓰고 또 쓰고 계속해서 쓰는 것. '다음에는 네가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 라는 조언도. 그 전까지는 조나단을 기계적으로 대하는 것 같았던 로자가 조나단의 가능성을 보고 진심으로 해준 조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8년 동안 몰두해서 써온 작품이 잘 되지 않았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간다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조나단은 절망해 마이클에게 달려간다. 이런 짓을 계속 반복할 수는 없다. 꿈 같은 건 됐으니 이제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한다.
'나는 곧 서른이라고! 이제 끝이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조나단에게 마이클은 자신이 에이즈 판정을 받았다고 말한다. 어떤 나이가, 숫자의 앞자리가 바뀌는 게 인생의 끝이 아니라 삶의 진짜 끝은 죽음이라는 게 훅 와닿았다.
조나단은 계속해서 작품을 써나간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1인극 <틱, 틱… 붐!>에 이어 <렌트(Rent)>까지.
브로드웨이에서 <렌트>를 공연하기 전, 조나단은 대동맥류파열로 35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 사실에 처음에는 좀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조나단 라슨은 스스로 다짐했듯 남은 시간을 원하는 일에 몰두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질문해봐도 죽기 전까지 그 답은 결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조나단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이 장면에서 조나단이 삶에서 크게든 작게든 연을 맺어온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내 삶에서 글이라는 건 너무 오랫동안 그 의미를 불려왔다. 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의미가 커지니 손도 대지 못한 채 우울 속에서 시간만 흘러갔다. 나는 뭔가 대단한 걸 쓸 수 없을 것 같고,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내가 이걸 계속 놓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그림 유튜버 이연님이 한 말이 떠오른다. '전에는 (그림이 나에게) 효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던 말. 그림을 그리며 느끼는 즐거움으로 그림은 이미 줄 수 있는 걸 다 준 것이라는 것.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솔직히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이른바 "성공"이라는 걸 거머쥐고 싶었고, 그 '수단'이 내가 좋아하는 글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글을 영 엉뚱한 것과 결부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그 누구에게도 의미가 없을지라도, 내게 의미가 있기에 이어가는 거였다. 내가 그걸 좋아하니까.
조나단 라슨의 <렌트>는 크게 흥행하지만 중요한 건 조나단이 좋은 곡을 써냈다는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상황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곡을 썼다는 것이다. 결심을 하고 난 후에도 이따금 초조함이 일고 불안했을 텐데도.
영화는 예상과 많이 달랐지만 어리둥절하게도 원하던 메시지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전혀 모르고 본 덕분에 이 영화를 유명한 뮤지컬 제작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