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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나길 Feb 13. 2024

고흐의 시선을 따라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리뷰

 -<고흐, 영원의 문에서(원제: At Eternity's Gate)>/줄리안 슈나벨/2019

 -1시간 51분(111분)

 스포일러 주의! 영화 내용이 가득 담긴 글이므로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고흐의 그림을 그대로 담아놓은 듯한 포스터에 끌려 영화를 봤다. 와.... 정말 여운이 짙은 영화였다.


 캐스팅에서부터 소품이며 배경 등등... 하나하나 굉장히 신경썼다는 게 느껴졌다. 배우분들이 다들 연기도 잘하는데 그림 속 인물들과 똑 닮기까지 했다. 고흐는 또 어디서 진짜 고흐를 데려와선....


 이걸 만든 감독은 분명 고흐의 덕후이거나 자료조사를 진짜 많이 했겠구나 싶어 검색해보니, 감독부터가 아티스트였다. 여러 모로 납득이 갔다. 영화 자체가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그린 고블린을 맡은 배우분(윌렘 대포)이라는데 같은 분인지 몰랐다. 진짜 고흐 같음...



 "제게 보이는 걸 나누고 싶어요. 그들은 저처럼 보지 못하니까요."


 영화 속 고흐가 닥터 레이에게 했던 말처럼 영화는 고흐의 시야를 담아낸다.


 우선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색감과 배경이 인상적이다. 고흐가 걷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고흐의 시야를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 좌우로 흩어지는 풀과 억새들이 고흐의 붓질 같아서 재밌었다.


 그에 더해 고흐 주변에 바짝 둘러서서 종알대는, 그래서 숨막히는 느낌이 들게 하는 아를의 아이들이나 지나치게 클로즈업된 테오, 닥터 레이, 사제의 얼굴이 도드라지며 고흐의 시선을 강조한다.


사제 역할의 매즈 미켈슨. 한니발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고흐를 세뇌해서 조종할 것만 같았다...


 그 밖에 연출들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화면의 반은 선명하고 반은 흐릿한 연출이 더러 나오는데, 닥터 레이가 고흐에게 '그림과 자신을 혼동하고 있다'고 말하던 것과 맞물려 고흐 '자신'과 그림의 경계 같기도 하고 광기와 현실의 사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대사가 반복적으로 울리며 화면이 연달아 전환되는 장면들에서는 진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고흐. 차가운 절망이 느껴진다.


 영화는 고흐의 외로움과 불안, 절망 등을 고스란히 보여준. 영화 속에서 고흐는 내내 겉돌이따금 어리둥절하다. 그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고흐가 말하는 것과 사람들의 말이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든다. 고흐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의 몰이해와 더불어 고흐 스스로 느끼는 광기로 인해 그의 말은 본래 전하려던 뜻을 전하지 못하고 퇴색되고 만다.



 영화에서 다른 사람의 질문에 고흐가 대답하는 구도가 여러 번 나온다.


 고갱에게, 닥터 레이에게, 사제에게, 가셰에게 고흐는 대답한다. 그건 인생에 대한 고흐의 대답이자 고흐가 후세대의 사람들(우리)의 질문에 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제와의 대화다. 사제는 고흐에게 '본인이 화가라고 말한다던데,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묻거나 고흐의 그림을 '불쾌하고 흉하다'고 일축해버린다.


 동생 테오 외의 다른 사람들은 고흐를, 고흐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면하고 서슴없이 부정한다.


 그럼에도 고흐는 자신을 '화가'라고 단호하게 정의한다. 타인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은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 제 장점과 단점들로 그려요."


 난 고흐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누군가 고흐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어딘지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게 왜였을까 새삼 생각해보니, 고흐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 강렬한 에너지에 끌리면서도 동시에 그의 그림을 볼 때면 내 안의 돌아보고 싶지 않은 어떤 부분이 건드려져서 불편했다는 게 떠올랐다.


 그건 어쩌면 고흐의 그림이 지나치게 솔직했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강렬하지만 동시에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모네와 인상파 화가들을 비판하는 고갱의 앞에서 '모네는 진짜 그림을 잘 그려ㅇㅅㅇ!'라며 굳이 감탄하던 고흐의 사회성 없는 면모가 떠오른다. 눈치 어디 갔어요...


 고흐는 여러 모로 서툴고 거칠며 요령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거북해하는 것도 모르고 감춘 속뜻도 모른다.


 그런 고흐의 요령 없는 면이 그림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고흐는 그의 장점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의 단점을 포함한 자기 자신을 모두 그림에 쏟아붓는다. 그림을 보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귀 자르는 장면과 총 쏘는 장면이 너무 사실적으로 나오면 어떡하나 쫄아있었는데 암전으로 처리돼서 솔직히 안도했다.


 중간중간에 막을 내리듯 암전이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내 암전의 활용도 흥미로웠다.


 귀를 자른 때의 암전은 내가 고흐와 함께 기억이 끊어지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여타의 일들이 벌어지고 난 후인 것 같아 무서웠다. 총을 맞은 이후의 암전은 총을 맞고 정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의 암전이었다. 잔인한 장면을 굳이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런 느낌들을 줘서 좋았다.


 죽음 이후의 암전은 시간의 단절과 함께 고흐의 죽음 이후로 장면을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자기 그림들에 둘러싸인 채 아기 요람같은 관 속에 누워있는 고흐의 모습은 신의 품 속에 받아들여진, 혹은 비로소 세상에 받아들여진 느낌을 다. 관 속에 누운 고흐의 표정은 평온하면서도 본인이 비유했듯 예수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죽은 고흐의 옆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그림을 구경하고 고르는 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이제 영면에 들어가 침묵한 고흐와는 무관하게 주변의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들은 그와 그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모든 것이 이제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영화는 고흐의 시선을 최대한 재현하려 다.


 그러나 이 또한 고흐의 시선이라 볼 수 없고, 그저 '고흐는 이렇게 세상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대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결국 그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려는 시도가 좋았다.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컷


 영화를 보면서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러빙 빈센트>는 영화의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다 그림으로 그려서 애니메이션처럼 만든 영화다. 내가 기억하기론 고흐가 죽은 뒤 우체부의 아들(맞나...? 본지 오래 돼서...)이 고흐의 마지막 자취를 더듬어 가는 내용으로, 고흐가 꽤 점잖고 신사적으로 나왔던 것 같다. 고흐를 일반적인 '광기어린 천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서 흥미로웠던 걸로 기억한다.


 이 영화에서처럼 <러빙 빈센트>에서도 고흐가 자살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쏜 권총에 맞은 걸로 나오는데,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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