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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나길 Feb 01. 2024

'나'라는 별에 소원을

영화 <위시> 리뷰

 -<위시(Wish)>/크리스 벅/2024

 -1시간 35분(95분)

 ※스포일러 주의! 영화 내용이 가득 담긴 글이므로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디즈니 100주년인 걸 까맣게 모른 채 영화를 예매했다. 그동안 동화적으로 소원과 희망에 대해 노래하던 디즈니가 'Wish'라는 제목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아샤는 할아버지, 엄마와 로사스에서 살고 있다. 로사스의 주민들은 18살이 되면 소원을 하나씩 매그니피코 왕에게 바치는데 매그니피코 왕은 그 소원들을 간직하고 있다가 그 소원 중 하나를 뽑아 들어준다.


 할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아샤는 왕의 견습생이 되려고 한다. 그래서 면접을 보러 왕을 직접 만나고, 사람들의 소원이 모여있는 방에 들어가게 다.


 처음에는 마음이 맞는 듯 보인 두 사람이지만, 소원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랐고 결국 갈등을 빚는다.



 <위시>에서 기존의 애니메이션과 다르고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별(마법적 존재)이 소원을 이루어주는 게 아니라 소원을 이루는 걸 '도와준다'는 거였다.


 신데렐라의 마법사처럼 소원을 말하면 '비비디 바비디 부~~'하며 이루어주는 게 아니라 소원을 이루는 주체는 자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로사스의 주민들은 매그니피코 왕이 언젠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리라 믿으며 기다린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외부의 무언가가 소원을 이루어주길 기대하면 그 소원을 어떤 식으로, 어떤 형태로 이루어줄지도 알 수 없는 법이다.



 또, 한 개인이 그 사람의 기준으로 재단할 가능성이 있다. 매그니피코는 자신의 기준대로 '위험하지 않은' 소원들만 이루어준다.


 소원을 빌고 나면 소원에 대해 잊어버리니 소원을 이루어줄 매그니피코에게 충성하며 마냥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고.


 더구나 매그니피코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긴 해도 겉모양새로만 이뤄주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꿈이 재단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ㅇㅇ 그래 너 이제부터 재단사임!' 이런 느낌이랄까?



 반면에 별은 무한한 힘이 있지만 그 힘으로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는다. 그 마법으로 무엇이든 아주 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말이다.


 소원을 스스로 이루는 것, 이루어가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성공하건 실패하건. 소원을 이루건 이루지 못하건 간에.


 매그니피코는 모두가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걸 '불공평하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 결과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소원에는 자기 자신이 담겨 있다. 그 특성과 흥미와 성격을 가진 그 사람이기에 그걸 바랄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소원은 내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사실 소원을 이루는 과정 자체까지 다 합쳐 '소원을 이루는 것'이고 그 과정까지 오롯이 겪어야 진정한 의미의 소원을 이룬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샤의 친구가 '왕의 기사단장이 되고 싶다'는 소원이 이루어져 기사단장이 되긴 했으나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빠져 있었기에 곰과 토끼에 겁을 먹어 움직일 수 없었던 것처럼.


 과정이 빠진 소원은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그저 겉만 바뀌었을 뿐이다.



 영화에서 별의 힘은 실로 나타난다. 실은 어떤 형태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연결할 수 있다.


 아마야 여왕은 사람들이 직접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준다.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사람과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을 연결해줘서 직접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게 한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은 마치 별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그니피코 왕과는 다른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매그니피코가 초중반까지 정말 나름의 선의를 가지고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매그니피코의 말대로 순전히 이타적인 이유에서 모든 일을 시작한 건 아닌 것 같고.


 사실 매그니피코가 로사스를 만들고 이러저러한 행동을 해온 이유는 어릴 적 겪은 상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는데, 왕국을 만들어 왕이 되고 왕국을 지키는 것에 집착이 있는 듯 했다.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가 엔딩 크레딧과 올라가고 할아버지가 연주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연주는 디즈니 성 화면(디즈니의 유구한 오프닝 장면)으로 연결된다.


 아샤의 할아버지가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고 싶어했던 걸 생각해보면 '디즈니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는 일을 하겠다'는 선포로 느껴졌다. 디즈니 100주년에 참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우린 별이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입을 모아 노래하던 장면이 다시금 떠오른다.


 사람은 하나의 별이고, 하나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 어쨌든 우리는 '나'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우주를 구성하는 세계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이 우주에 무한히 펼쳐져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처럼. 개개인이 그 자신, 온전한 하나로 완벽하다.



 우리는 별들에 소원을 빌며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갈망하곤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 소원을 이룰 별은 나 자신이 아닐까 하고.



https://youtu.be/KQpbzrKbosE?si=GwZMln9pB7g3e7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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