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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민혁 Feb 05. 2022

글로벌 금융 과외
<카스트제도 그리고 결혼지참금>

카스트는 혈통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카스타 Casta에서 유래되었는데요. 16세기에 인도에 진출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도의 신분제도를 보고 카스트라고 부른 것이었지요. 카스트 제도는 몇 천년 전 아리안족이 인도에 침입하고 지배층으로 올라서면서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카스트를 색깔이라는 뜻의 ‘바르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밝은 색 피부의 아리안족이 인도에 쳐들어와서는 검은색 피부의 원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우월성에 대한 근거로 피부색을 내세운 것입니다.

성직자 브라만, 귀족과 군인 크샤트랴, 상인과 기술자 바이샤, 농부와 비숙련공 수드라, 그리고 청소 분뇨 및 시체 처리 등의 더러운 일을 전담하는 불가촉천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가 평소 알고 있었던 카스트는 4 종류이지만, 조금 더 세분화하면 무려 3천여 개로 나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카스트는 일종의 직업 분류라고 보는 시선도 있는데요. 더러운 일은 소수가 전담해야 전염병을 막을 수 있었으며 그런 일들을 자라면서 보고 배운 자손들이 부모의 직업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 카스트의 본질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득권 세력들이 힌두교의 "업"과 "윤회" 사상으로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카스트를 숙명으로 여기게 하면서 나쁘고 더러운 일들을 떠넘긴 것이죠.


카스트는 태어나면서 받은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로는 어떻게 바꿀 수 없는데요. 이렇듯 불합리한 카스트 제도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이슬람 제국인 무굴 제국이 인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도 억압받던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이 환영했기 때문이고요.


그렇다면 현재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요?

헌법상으로 보면 인도의 모든 국민들은 법 앞에서 평등합니다. 카스트에 따른 계급 질서는 없기 때문에 높은 신분에서 태어났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예전에는 아버지의 하던 일을 아들들이 물려받곤 했는데 이제는 개인이 능력만 있으면 아버지의 직업을 세습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층 카스트 출신이지만 경제력이 있는 사람은 상층 카스트 출신을 직원으로 고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바뀌었다고 해도 카스트 제도는 아직도 인도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요. 특히나 사회 변화에 둔감한 시골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인도인의 70%가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일부 인도인들은 자신보다 낮은 카스트 사람과는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려 하지 않고 하위 카스트 사람이 준 음식은 되도록이면 먹지 않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한 번은 지인 A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요. 저는 닭을 못 먹기 때문에 A에게 닭 요리만 빼고 주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A는 의아한 표정과 함께 왜 그 맛있는 닭을 안 먹느냐고 하면서 닭을 빼면 주문할 음식이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왜 주문할 것이 없나 했는데 알고 보니 A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인도에서 소고기를 주문했다가는 큰일 날 테고요. 저는 어렸을 때 닭에게 심하게 쪼인 트라우마가 있어서 닭을 못 먹는데요.(닭을 못 먹으니 인생에서 불편한 점들이 많아서 몇 번이고 먹으려고 시도하고 노력도 했는데요. 그래도 쉽지 않네요.) A는 자신의 카스트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불결한 인분을 먹는 돼지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일부 시골 학교에서는 상층 카스트 출신들은 앞에 앉고 불가촉천민 출신 학생들은 뒤에 앉습니다. 상층 출신 선생님은 낮은 카스트의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데요. 배운 것 없고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하층 계급 학부모들은 제대로 학교에 항의도 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평등하나 실제로는 공공연히 차별받고 있는 것이죠.


 인도의 인재들이 공대와 의대에 몰리고, 전 세계 많은 기술자와 엔지니어들 중에 유독 인도인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인도에서는 자신만의 기술이 있어야 카스트에 속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스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거나 신분을 바꾸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한 것이죠.

인도 공과대학 (IIT)는 세계 3대 공대 중 하나로써,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직원의 32%, 실리콘 벨리의 벤처 창업자 중 15%가 IIT 출신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3세의 한 인도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인도계 이민 2세, 3세들이 미국에서 만나도 서로 상대의 카스트가 무엇인지 물어보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도 반갑지 않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인도에 가본 적도 없으며, 할아버지가 삶을 억압하는 카스트 제도를 피해 미국으로 왔고 아마 미국에 사는 다른 인도인들도 비슷할 텐데 자유의 땅인 이곳에서도 누가 높고 낮은 지를 따지자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인도인들도 이러한데 본토 인도에서는 어떠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카스트의 폐해가 크다면 자신의 카스트를 숨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도인의 성姓에는 카스트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그의 카스트를 알 수 있습니다. 출생 신고할 때 공무원들이 부모의 신분을 알고 있어서 자녀의 신분을 속일 수 있는 이름으로 지을 수도 없고요.


인도에서 쿠마르 Kumar Singh와 산제이 Sanjay Meghwal라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각각 Singh (전사, 사자)과 Meghwal (기우제를 지내는 일)이 자신의 카스트라고 했습니다. 20대 후반의 산제이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요. 그에게 약혼녀는 어떤 사람이고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어 사귀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그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요즘 한창 신부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산제이의 아버님이 같은 카스트 출신의 신부를 골라서 그에게 소개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다행히도 산제이는 부모님이 정해준 같은 카스트의 약혼녀를 마음에 들어 했는데요.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일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서로 카스트가 다르면 어떻게 하냐고 산제이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의 인도 청년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따른다고 합니다. 인도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안에서 어린 축에 속하는 젊은이가 마음대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 어렵다는 것이죠. 게다가 지방의 시골에서는 같은 카스트끼리 모여 살면서 다른 카스트 마을과는 우물의 물도 공유하지 않을 정도로 배타적이기 때문에 다른 카스트 출신이 들어와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로맨틱(?)하게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가서라도 살 수 있지 않냐고 물어보니 산제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인들은 친족과의 유대감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친인척과 친구들을 두고 지역 사회를 떠나려면 상당히 많은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혼은 집안과 집안과의 결합인데 어찌 가문을 모욕하냐면서 카스트가 다른 연인들을 죽이는 극단적인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집안에서 정한 상대와 결혼하지 않으면 집안에서 쫓겨나거나 유산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합니다.


인도인들이 결혼에서 카스트만큼 중요하게 보는 사항은 지참금입니다. 지참금은 고대 로마시대에도 있었으며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에 걸쳐 내려온 풍습인데요. 남 아시아 문화권에는 아직도 이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랑을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신부 쪽에서만 많은 금액의 지참금을 내라고 할까요?



원래 지참금은 신랑의 가족들에게 자신의 딸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신부의 아버지가 선물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의미가 확대되고 그 이유도 더 늘어났는데요. 인도에서 남자는 상속받지만 여자는 상속을 못 받기 때문에 딸이 결혼으로 분가할 때 지참금을 통해 미리 상속해 준다는 의도가 있습니다. 또한 지참금에는 시댁에서 생활할 신부의 식비와 같은 생활 비용이 포함되어 있고, 남편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 신부가 생계 수단을 확보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본인이 결혼할 때 지불했던 지참금에 대한 보상 심리로, 또한 이번에는 아들이 결혼했지만 앞으로 결혼할 딸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며느리에게 과도한 지참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인도에서의 결혼은 개개인의 의지만큼이나 일정한 조건들이 서로 잘 맞느냐가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는 쪽에서의 ‘충분함’과 받는 쪽에서의 ‘충분함’은 서로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참금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은 지금도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 정부는 1961년부터 법으로 지참금을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지참금 제도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요구하는 금액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선호하는 직업의 신랑과 결혼하려면 신부의 아버지는 더 큰 지참금을 지불해야 하고요.


인도인은 부를 과시하는 것을 좋아해서 인도의 결혼식은 한번 치르면 집안이 휘청거린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성대하게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참석한 인도 상류층의 결혼식은 제가 가본 수많은 결혼식 중에 가장 호화스럽고 멋있었습니다. 인도의 결혼식은 보통이 3일이고, 길게 하면 무려 일주일 동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하는 결혼식,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서 하는 결혼식, 친구를 모아놓고 하는 결혼식, 회사 사람들 및 사회적으로 아는 사람들과의 결혼식 등등으로 말이죠.


오죽하면 ‘공주가 세 명이면 왕도 견딜 수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인데요. 이렇듯 지참금은 딸 가진 부모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지참금으로 대체 얼마를 내야 할까요? 여기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지역과 집안의 경제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인도인은 딸 한 명당 ‘4년 동안의 빚’을 의미한다고도 했고, 또 다른 인도인은 아버지 연간 수입의 5~6배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적게는 몇 백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까지 이르는데, 한 달 평균 월급이 20만 원 부근인 대다수의 인도인들에게는 지참금 천만 원도 감당하기 힘든 큰 금액입니다. 그나마 딸을 낳는 순간부터 준비를 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미래를 준비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신부의 아버지는 며칠간의 빛나는 딸 결혼식이 끝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몇 년간 빚을 갚느라 허덕이게 됩니다.


한편 산제이는 결혼을 앞두고 약혼녀와 즐겁게 교제하고 있지만 그의 집안에서 요구하는 지참금이 커서 그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부 측의 지참금이 신랑 측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축복받아야 할 선남선녀의 출발이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기대했던 만큼의 지참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신부를 폭행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심한 경우에는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신부를 살해한 후 부엌에서 불이 나서 죽었다고 신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5년만 하더라도 지참금으로 인해 신부들이 하루에 20명씩 죽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신부가 마음대로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요. 신부의 부모님은 결혼한 딸이 곧바로 친정에 오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이혼은 더더욱 집안의 불명예로 여깁니다. 게다가 막대한 지참금을 내고 결혼했는데 이혼해 버리면 지참금을 돌려받지 못해 헛된 돈만 쓴 것이 되기 때문에 마음대로 친정에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인도에서는 이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인도의 이혼율은 약 1%로 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반대로 세계 이혼율 1위는 룩셈부르크로써 8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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