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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Dec 25. 2023

한파는 세탁기 뼛속까지 얼린다

고금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그렇다.

'북극발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세탁기를 돌리지 않았다. 아파트 저층 세대 베란다 배수구가 역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는 버티기 어려워 10m짜리 호스를 샀다. 베란다가 아닌 화장실로 물을 빼기 위함이다. 평소엔 잔수를 빼는 습관도 들였다. 잔수란 말 그대로 세탁 후 세탁기에 남아있는 물인데, 한파에 세탁기를 동파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아무튼 날씨도 마침 영상으로 올라갔겠다 마음 놓고 세탁기를 가동했다. 그런데 한참을 잘 돌아가던 세탁기가 삐빅 거리더니 멈추고 만다.


화면에 'OE'라고 뜨길래 검색해 보니, 배수 필터가 얼었거나 오물이 껴 있을 가능성이 크니 꺼내 청소를 하란다. 그런데 필터를 자 물이 폭포수처럼 콸콸콸 쏟아진다. 2L짜리 생수통에 물을 받아 베란다와 싱크대를 오가며 버는데, 한 열 번쯤 반복했나? 세탁기에 이렇게 많은 물이 들어가는 줄 몰랐다.


겨우겨우 세탁기 안쪽의 물을 다 빼고 다시 돌리는데, 안쪽에서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내부 다른 부분이 얼었던 것 같다. 한파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그리고 반짝 날씨가 풀린다고 해서 꽁꽁 언 얼음이 바로 녹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고금리 여파도 한파와 비슷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금리 상승으로 지난 1~2년 사이 기업과 서민의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 달 이자가 몇 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만 원까지 치솟으니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좀 무뎌진 것 같다. 한국은행이 올 초부터 기준금리를 동결해오고 있고,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이제 금리 인상을 멈추겠다며 정책 전환(피벗)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금리 동결'을 '완화'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데 전혀 틀린 생각이다. 고금리를 계속해서 끌고 간다는 말이니 오히려 가혹하다고 받아들여야 맞다. 또, 연준의 피벗은 '금리를 과거처럼 제로금리 수준으로 바로 내리겠다'는 말이 아니다. 0.25%씩 찔끔찔끔 몇 년에 걸쳐 내릴 가능성이 크다. 즉 고금리는 앞으로도 장기간 이어질 것이다.

결국 앞으로도 고금리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제주체가 나올 위험이 있다. 특히 건설업계는 상황이 심각하다. 고금리 여파에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일감이 메마른 탓이다. 신용평가기관들은 건설업계 신용도를 속속 내리고 있다. 언론사를 거느린 대형 건설업체 A사는 최근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 설까지 돌았다. A사는 알짜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자금난 해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춥고, 세밑 한파에 몸이 상하고 만다. 고금리는 눈에 띄는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경제상황은 멀리 내다봐야 할 때다. 최근 연말에 증시가 오르는 산타랠리도 펼쳐지면서 다들 올해보다 더 나은 내년을 기대하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경제 하방 가능성은 언제나 열어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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