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장소가 있다.
과거의 내 모습이 낡은 영상처럼 재생되는
곧 결혼을 앞둔 지인의 집들이 가는 길, 선물용 화분을 사러 모 지하상가에 들렀다. 즐비한 꽃집들. 구매의사가 있어 보이는 남성을 발견하자 상인들이 '옳거니!' 주위로 몰려든다. 원체 이리저리 재는 타입이 아니기에 마음이 내키는 가게에 들어간다. 저 식물 이름은 뭐예요, 물은 얼마 주기로 주나요, 화분만 다른 걸로 바꿀 순 없나요 등등 질문을 한가득 쏟아낸 끝에 분홍색 꽃잎이 올망졸망 달린 손 두 뼘 높이의 은행목을 골랐다.
너무 순식간에 끝낸 쇼핑. 약속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잠시만이라도 카페에 들를까 하다 그냥 아무 벤치에 앉아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새삼 익숙한 지하상가의 모습. 문득 수습기자 시절이 암실의 사진처럼 스멀스멀 떠오른다.
2018년 5월의 어느 날, 지하상가에서 누가 사람을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트려 경찰에 체포됐다는 정보를 들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다. 경찰이 범행 동기를 묻자 가해자는 "하늘의 계시"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묻지 마 범죄'가 사회적 문제였다. 이성이 싫다는 이유로, 혹은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남에게 해를 입혔다는 일이 종종 뉴스에 보도됐다. 그런데 하늘의 계시라니. 가해자가 정신질환일 가능성도 있었다.
현장 여기저기에 사건의 흔적이 있었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참 곳곳에 눌어붙은 붉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범행 당시 영상을 확보해야 했다. 주변에 현장을 바로 비추는 CCTV가 있어 관제실을 찾아갔다. 관리주체는 서울시 산하기관이었다. 보통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선 수사기관이 영장을 제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CCTV 화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역시나 부탁은 거절됐다.
상가엔 상인들이 직접 달아놓은 CCTV도 꽤 있었다. 현장 바로 옆에 있던 식당에 들어가 CCTV 열람을 요청했지만 마침 사장님이 자리에 없었다. 직원은 자신이 임의로 CCTV를 보여줄 순 없다고 했다.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얼마간 기다린 끝에 사장을 만났고, 다행스럽게도 CCTV 열람을 허락 받았다.
CCTV를 확인하는 순간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든다. 열람을 허락해준 이에 대한 감사함과 폐 끼치지 않으려 빨리 확인해야 한다는 조바심, 그리고 영상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사건 장면이 참혹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등.
각도가 좀 아쉽긴 했지만 한 카메라 화면 귀퉁이에 사건 일부가 포착돼있었다. 갑자기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피해자. 충격이 상당할 텐데 곧바로 일어나 도망친다. 누가 봐도 겁에 질린 모습. 하지만 가해자의 마수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이 장면을 보고 주변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피해자를 몸 뒤로 숨겨 보호한다. 가해자는 한동안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하며 윽박지르더니 유유히 사라진다. 다른 행인은 휴대전화로 112에 신고한다. 잠시 후 경찰과 구급대가 도착해 피해자의 상태를 살핀다.
뉴스로 만들기 충분한 영상이었지만 보도는 하지 않기로 결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 경우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일 뿐 온전한 의미의 묻지 마 범죄는 아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이 말짱한 사람의 경우에만 묻지 마 범죄가 성립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았지만 수습은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하늘의 계시'를 받은 가해자는 운 좋게 기사화를 피할 수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시간이 다가와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 식당은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당시 사장에게 감사를 표하며 "나중에 꼭 밥 먹으러 오겠다"라고 했는데 4년을 내리 잊고 살았다. 그래도 코로나19 풍파를 잘 견뎌냈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핏자국이 얼룩덜룩했던 계단참을 지나 지상으로 나갔다. 출구 옆 골목길. 그곳에도 4년 전의 내가 서있었다. 당시 취재가 막힐 때마다, 또 모르는 사람에게 예민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나와 무심하게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남몰래 한숨을 쉬곤 했다. 너무 치열했기 때문에, 그 장소에 그 순간의 내 모습이 남는 게 아닐까 싶다. 마치 야생동물이 자신의 체취를 남김으로써 영역 표시를 하듯이 인간은 영혼에 새기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곳에 가면, 당시의 기억이 오래된 극장의 영사기 돌아가듯 재생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