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하며
수습기자를 마치면서 명함을 붙일 수 있는 날이 언제 오려나 까마득해졌다.
군대에서의 감정을 살면서 다시 느끼게 될 줄 몰랐다.
경찰서에서…먹고 잘 수 있다고?
지금은 주 52시간 근무 제도 등을 이유로 없어졌지만 수습기자들은 경찰서에서 먹고 자면서 24시간 사건을 취재하는 '하리꼬미' 훈련을 거쳤다. 당시 나는 경제전문지에서 1년 정도 기자로 일하다가 사회부 기자가 하고 싶어서 어느 종합편성채널의 수습기자로 새로 입사했다. 먼저 다니던 언론사 사회부엔 경찰팀이 없었기 때문에 하리꼬미 경험은 처음이었다.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 위해 '장비'부터 갖춰야 했다. 경제지 기자를 하면서 멋 부려 입었던 정장이나 구두는 전부 쓸모없었다. 두터운 롱패딩에 발열내의, 방한 운동화를 구비했다. 그리고 손가락 끝부분이 열리는 장갑도 구했다. 실내에서든 밖에서든 쉼 없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침낭을 샀다. 경찰서에서 쪽잠 잘 때 필수라고 해서다. 그런데 경찰서 어디에서 잔다는 거지?
나이 서른, 뜻밖의 혼숙
본격적인 수습기자 첫날, 회사에서 캡(기동팀장), 바이스(기동팀 부팀장)와 만나 담당 라인을 배정하는 등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 뒤 각자 라인으로 흩어졌다. 우선 경찰서 기자실(숙소)을 찾아 바리바리 싸 온 짐부터 던져놔야 했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토요일 밤늦게나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갈아입을 속옷이나 양말, 침낭 등 짐이 한가득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도착해 여기저기 물어가며 기자실을 찾아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기자실보다는 숙직실이란 명칭이 더 알맞다 싶었다. 손바닥 만한 평상 위엔 개지 않은 이불과 침낭이 널브러져 있고 바닥엔 여행용 캐리어 서너 개가 굴러다녔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책상 위에는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과자와 음료수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벽면에는 기자실을 거쳐간 수습기자들의 명함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잊지 못할 XX라인, 먼저 갑니다~" "XX라인 맛집은 여기!" "다 개안타(괜찮다)" "도 잘 닦고 갑니다" 이런 문구들이다. 수습기자를 마치면서 명함을 붙일 수 있는 날이 언제 오려나 싶어 까마득해졌다. 군대에서의 감정을 살면서 다시 느끼게 될 줄 몰랐다.
감상에 오래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첫 보고를 위해 어리바리하며 경찰서를 전전했다. 반나절 동안 한 일이라곤 고작 과장과 계장 한 명씩을 만나고 담당 라인 내 관공서나 시민단체를 정리한 정도다. 저녁에 사회부 회식을 한 뒤 밤늦게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다. 경찰서 세 곳의 형사 당직팀과 파출소 한 곳을 돌아다녔지만 소득은 없었다.
얼레벌레 마지막 보고를 끝내고 파김치가 되어 거점 경찰서로 돌아왔다. 로비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잠을 자러 기자실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이 암순응을 마치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좁아터진 평상에 열 개는 족히 돼 보이는 침낭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남녀유별. 남녀 칠 세 부동석. 교실에선 함께 공부해도 수학여행을 가면 남녀는 꼭 방을 나눴다. 대학교 MT 때 술에 취해 같은 공간에 곯아떨어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맨 정신인 친구들은 분리된 공간을 찾아 잠을 잤다. 그런데 내 나이 서른,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그것도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혼숙을 하게 됐다.
운 좋게 빈틈 하나를 파고들어 몸을 뉘었다. 그런데 다들 침낭에 쏙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양 옆에 누워있는 사람이 누군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번데기 무더기 같았다. 아직 성충으로 진화하지 못한 어설픈 존재들.
막상 눕고 보니 주변에 신경 쓸 여력 따윈 없었다. 뒤늦게 온 사람들은 누울 자리가 없어 벽에 기대앉은 채로 잠을 청했다.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두세 시간. 어떻게든 잠을 자고 새벽에 제때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피곤했던 탓인지 금세 잠에 빠졌다.
형사 형님들과의 첫 만남
핸드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려댄다. 하리꼬미 두 번째 날이자 경찰서에서의 첫 새벽이다. 잠에서 깨야 했다. 깊은 우물에 빠졌다가 거칠게 끌어올려지는 느낌이다. 비몽사몽인 와중에 다른 사람들이 깰까 황급히 알람을 해제한다. 그만큼 현실도 빠르게 자각한다. 사위는 여전히 칠흑 같다. 잠든 시간도 새벽, 잠에서 깬 시간도 새벽이니까.
그런데 잠들기 전과 달리 평상 곳곳이 비어있다. 누군가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이미 경찰서를 돌고 있다는 뜻이다.
머리를 감고 옷도 갈아입고 싶었지만 빠듯한 보고 시간을 생각하면 사치였다. 여성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화장은 불가능했다. 세수와 양치로 겨우 사람 꼴을 하고 다가선 형사당직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형사들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풋내기 수습기자를 맞았다.
“날이 추워서 아무 사건도 없어요”
요컨대 한파에 사람들이 집에만 콕 박혀있느라 사건사고가 없다는 뜻이다. 날이 좋아야 밖에 나와서 술을 한잔씩 하고 사고도 친다. 경찰의 상투적인 대꾸에 나는 어버버 하며 공허한 말만 흩어냈다.
경찰의 환심을 사려 준비한 알사탕은 주머니에서 꺼내보지도 못했다. 누군가 그랬다. 경찰에게 무턱대고 들이댈 게 아니라 담배를 태우다 자연스럽게 접근하든지 아니면 알사탕이라도 건네주면서 질문을 던지라고. 나는 담배 대신 청포도맛 사탕을 한 봉지씩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경찰도 각양각색이다. 철벽 치는 경찰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모 경찰서의 교통조사계 수사관은 선심 쓰듯 '선착순'으로 사건을 뿌리곤 했다. 뒤늦게 찾아가면 “이미 다른 기자한테 알려줬으니, 얼른 뛰어가서 물어보라”며 짓궂게 군다. 기자들은 놀잇감이 된 줄 알면서도 사건을 들고 있는 수습을 찾아 허겁지겁 쫓아갔다.
아직 새카만 새벽, 형사 한 명이 담배를 태우려 당직실을 나섰다. 냅다 붙었다.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날이 추워서 없다”는 예의 의미 없는 대답이 나온다. 용기를 내 사탕 하나를 건넸다. 알사탕을 서로 오물오물 굴리며 살가워지는 그림을 바랐지만 형사는 받은 사탕을 주머니에 넣고 담배만 태워댔다. 그가 돌아가려 하기에 다시 한번 붙잡고 통사정했다. 형사는 한동안 곤란해하더니 “잠깐만 기다려 보라”며 당직실에 들어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다. 그는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 하나를 알려줬다. 첫 수확이었다.
'하면 되는구나' 자신감이 생겼다. 의기양양해진 나는 다른 사건을 얻기 위해 B 경찰서로 향했다. 호기롭게 당직실 문을 노크했다. 그런데 형사가 “업무 방해하지 말라”며 문도 열어주지 않고 짜증만 낸다. 나는 발길에 차인 하룻강아지처럼 의기소침해졌다.
그 순간 다른 기자가 순번을 기다렸다는 듯 당직실 문을 두드린다. '저 기자도 문전박대당하겠구나'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순간 당직실의 문이 열렸다. 예상과 달리 기자는 안으로 들어가 형사와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눴다. 그 기자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형사 당직실에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 기자는 “제가 그쪽보다 더 많은 날 동안 더 오래, 더 많이 문을 두드려봤으니까요”라고 답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고, 형사와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알사탕 하나로 요행을 바랐던 내가 부끄러웠다. 갈 길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