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03화

사건을 찾아서

수습기자가 사건 찾는 방법

by 정준영
사건 찾는 데도 존버가 필요하다.


글 솜씨 보다는 팩트(fact)!


언론사를 지망하면서 글쓰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 같다. 논리적이면서도 재기 발랄한 글을 자유자재로 쓰고 싶었다. 스터디 모임을 꾸려 일주일에 몇 편씩 글을 쓰고 빨간펜으로 서로의 글을 첨삭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글을 재미있게 쓴다는 칭찬을 종종 듣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기자가 된 뒤 글 솜씨를 뽐낼 일은 생기지 않았다. 실제로 일을 하는 동안 글 쓰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기사란 ‘팩트’의 나열이었다. 정확한 팩트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분량에 제한이 있기에 불필요한 문장 성분 없이 담백하게 써야 했다. 세상에 기자가 수도 없이 많지만 기사 문체는 대체로 비슷한 이유다. 기사를 읽으며 ‘문장력이 참 좋다’고 감탄해 본 적이 있던가.


중학교 2학년이 읽어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기자들의 목표다. 결국 새로운 팩트, 사건 찾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기자들에게 주어진 지상 최대의 과제다. 기사를 쓰는 일은 새로 찾아낸 팩트를 먹기 좋게 요리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사건은 어떻게 발굴되어 보도되는 것일까? 몇 가지 방법을 정리해 봤다.


직접 목격: 눈 앞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카페에 있는데 주변 건물에 불이 붙는다든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옆 차선에서 교통사고가 난다든지, 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 흉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든지 기자가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경우다.


그런데 살면서 이런 상황을 마주친 적이 있던가. 하지만 매 시간 보고 압박에 시달리는 수습기자들은 사건을 직접 목격하는 행운을 꿈꾼다. 정말 기가 막히게 취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현장을 스케치하고 녹음기를 켜서 목격자를 인터뷰하고…. 물론 부질없고 사회 안녕에 반(反)하는 공상이다.


영국 BBC 드라마 '셜록'에선 사건이 없어 안절부절못하는 셜록 홈스를 보고 친구 존 왓슨이 "사이코패스"라며 나무라는 장면이 나온다. 셜록은 그럴 때마다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대꾸하는데, 기자도 비슷한 것 같다.


경찰 취재: 경찰서·지구대·파출소 돌아다니며 사건 구걸하기


거의 대부분 언론사는 수습기자에게 이 훈련을 시킨다. 하지만 경찰의 입은 무겁다. 수사 중인 사안을 알릴 경우 피의사실공표죄(형법 제126조)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식 사건으로 입건되지 않는 자잘한 소동 정도는 가끔씩 알려주지만 기삿거리가 안 되니 알아내도 의미는 없다.


경찰서 민원실에서 무한정 대기하며 오가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방법도 있다. 만약 경찰서에 들어갔는데 후줄근한 차림으로 구석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자일 확률이 99.99%다. 그들은 당신의 눈치를 보며 다가와 “혹시 무슨 일로 오셨나요?”라고 넌지시 말을 걸 지도 모른다.


경찰서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든다. 범죄경력조회서를 떼러 오는 구직자부터 집회·시위를 신고하러 오는 시민단체, 고소·고발인, 조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 변호인, 민원인, 유치장에 전도하러 오는 종교인, 그냥 화장실을 쓰러 온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자와 대화하길 꺼려하지만,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밀한 사정을 털어놓는다. 주로 고소인이 기자를 반긴다. 피고소인은 대체로 자신의 혐의 사실이나 치부를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적극 해명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한 뒤 기사화 여부를 가늠한다.


서울 종로경찰서 전경. 애증의 공간이다. / 직접 촬영

소방 취재: 119 출동 내역 확인


예전엔 서울종합방재센터 홈페이지에서 119 출동시간과 대략적인 현장 위치를 실시간으로 게재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곤 사건의 경중 판단이 불가능했다. 119 신고 중엔 수증기를 화재로 오인한 경우나 집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문을 열어달라는 등 단순 민원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여기엔 숨겨진 기능이 있었다. 웹페이지 상에서 출동 내역을 드래그 한 뒤 엑셀(Excel)에 붙여넣기 하면 숨겨진 추가 정보가 나타났다. 예컨대 구급출동인 경우 ‘심정지’나 ‘부상’ ‘기타’ 등으로 구분되는 식이다. (현재는 없어진 기능인데, 과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만들어놨을까 궁금하다).


기자들은 심정지 건에 주목했다. 심정지가 발생하는 경우는 다양하다. 노환이나 병환일 수도, 사고를 당해 서일 수도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타인에게 살해되는 경우도 있다. 기자들은 이를 단서 삼아 사건을 파헤친다. 범상치 않은 건이라 판단되면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편 소방당국도 자체적으로 현장을 영상으로 촬영한다. 이후 국민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영상을 언론에 공개한다. 사건사고 현장 가장 가까이서 찍은 영상이다 보니 현장감이 매우 우수하다.

멈춰버린 지하철 엘리베이터. 시민들을 구출하는 소방대원들. / 직접 촬영

제보: Show me the money 치트키


제보자로부터 사건의 내용을 직접 듣는 방법이다. 제보자가 사건의 당사자라면 취재가 수월하다. 대부분 만반의 준비를 갖춰 제보하기 때문에 접근할 수 있는 자료의 양과 질도 훌륭하다. 이에 비하면 나머지 세 가지 방법은 ‘멘 땅에 헤딩’이다.


대부분 언론사에는 제보 창구가 있지만 선배들은 수습기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Show me the money’ 치트키를 치고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배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제보는 어디까지나 일방의 주장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리해놓고 보니 ‘사건 찾기 어렵지 않네?’ 싶을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경찰은 기자를 귀찮다며 문전박대하고, 민원인은 경계한다. 119가 출동하는 모든 현장이 극적인 것도 아니다. 제보는 끊임없이 들어오지만 기사화하기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부지런해야 한다. 까칠한 경찰이라도 매일같이 찾아오는 기자에겐 힌트를 주고 싶은 법이고, 끈기 있게 경찰서에서 서성이다 보면 언젠간 ‘대박사건’을 들고 있는 민원인을 만날 수 있다. 119 출동 현황을 부지런히 파악하면 어느새 경찰보다 먼저 사건 현장에 도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사건 찾는 데도 '존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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