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도 스몰스텝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면 '비움'부터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 '비움'의 효과를 눈으로 보아야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비움'이라는 무게감에 눌려서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비움'도 스몰스텝 이면 된다고.
나는 누구보다 '비움'의 무게감을 잘 안다. 언젠가는 되리라 믿었던 '교사'라는 꿈.
그 꿈을 접는데 결단이 필요했고 10년이 넘게 가지고 있던 전공책을 비우는 데는 더 큰 결단이 필요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이해한다.
교사가 되지 않기로 결정하고 1인 기업으로 살면서도 몇 개월이나 더 지나도록 전공책을 비우지 못했다.
지금 필요하지 않고 이후에도 필요하지 않을 물건이었기에
평소 나의 '비움'의 기준에서는 당장 비워야 할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책을 비울 생각만 해도 울컥했다. 책을 비워야겠다는 말만 해도 눈물이 났다.
평생 가졌던 나의 꿈과 진짜 이별을 하는구나 싶었다
내게 전공책은 단순이 '책'이상의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아직은 때가 아니구나
내 마음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눈물을 참으며 억지로 이별하지 않기로 했다.
비움 자체가 급한일이 아니다. 비움을 통해 내 마음을 '알아차림'이 의미가 있다.
좋은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습관을 만드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습관 책을 보면 한 번에 한 가지씩, 최소 20일에서 100일간을 노력하라고 말한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한다. 거창한 무언가를 한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소 사소한 것을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왜 미니멀 라이프는 한순간에 이루어 내려고 하는 걸까?
미니멀'라이프'
'라이프(life)'는 삶이다.
삶이란, 살아있는 내내 지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루 이틀 반짝 비워내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다.
그렇게 비워낸 물건들은 이내 다시 채워지고 만다.
각자의 라이프가 다르니 미니멀 라이프라고 해도 사람마다의 방식과 의미가 다르다.
비워내는 속도가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움이 누구보다 힘들고 느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미니멀로 살아가는 나만의 삶의 방식이다.
그러니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묵묵히 나의 방식대로 천천히 나가보자.
며칠 전 계절 옷 정리를 하면서 깜짝 놀랐다. 계절 옷 정리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를 알기 전 계절 옷 정리를 하면 온종일 걸렸고 옷방은 옷이 산더미가 되어 대청소까지 마무리하자면 그날은 탈진이었다.
옷이 많으나 적으나 입는 옷만 입었지만 그럼에도 확 비워내기가 제일 어려웠던 물건이 '옷'이다.
(내 기준이지만 나는 초라하게 입고 다니지 않는다. 때와 장소에 알맞게 단정하고 멋스럽게 입는다.)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스몰스텝 미니멀 라이프를 지속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 옷장은 가벼워져 있었다. 한꺼번에 내다 버린 적 없고 고민스러운 옷들은 다 가지면서도 비움은 점차 쌓여왔나 보다.
이제는 안다. 비움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채움의 속도라는 것을.
아무리 비움을 해도 그보다 더 채움의 속도가 빠르다면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
옷장이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꾸준한 비움도 이유가 되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 하나는
'천천히 채움'이었다.
속도의 차이겠지만 결국은 '비움'이다. 비움이 없이 미니멀 라이프를 논할 수 없다.
그러나 비움에서 중요한 것은 물건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빠르게 버렸느냐가 아니다
물건을 비워보면서 내가 물건을 대했던 태도들을 점검하고 나의 가치관이 변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비움을 통한 내면의 변화로 인해 채움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더뎌지는 것이다.
억지로 소비를 참는 것이 아니라 비움을 통해 저절로 소비 통제가 됨을 느끼는 것.
지속하지 않으려고 해도 지속이 된다. 왜냐면 비움을 통해 내 마인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미니멀 라이프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니멀 라이프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미니멀 라이프로 살아가지도 않는다.
나만의 미니멀. 나만의 라이프.
나는 천천히 미니멀, 괜찮은 라이프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