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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보렴 Nov 29. 2021

상처를 주고 받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게슈탈트 심리학, 『따귀맞은영혼』


줄곧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에 대해 애쓰며 살아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좋아. 이정도면 꽤 잘 해내는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서른이 넘을 즈음, 사람들과 갈등을 겪고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하는 일을 경험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자다가도 깨서 하염없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두렵게 만드는 것일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썼고 그들의 칭찬으로 존재감을 확인하곤 했음을 깨달았다.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낮은 자존감의 시작은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추를 달고 태어났어야 했는데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존재는 거부당했다. 1988년 겨울, 3대 째 장손인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임신 중인 엄마의 배 모양을 보고 '사내아이가 분명하다'는 여러 사람의 기대를 보기 좋게 걷어차고 ‘못생긴 계집아이’가 우렁찬 울음을 내며 세상으로 나왔다. 장손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노골적인 실망감이 적대감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으이고, 네가 고추를 달고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두 살 터울로 태어난 남동생을 늘 무릎에 앉히셨고 장손이라며 예뻐하셨다는 것도. 첫째지만 장손이 아니었기에 환영받는 존재가 될 수 없었다. 상처 입은 나는 할머니와 있기보다는 가게를 하시는 부모님을 곧잘 따라 나섰다. 할머니께 맡겨진 동생이나 부모님과 함께 했던 나나, 우리 모두 상대에 대한 서운함이 있다. 중요한 건 편애로 인해 나도 동생도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어렸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우리 둘 다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     

 

마음상함의 범주에서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자존감을 공격하는 트라우마(Trauma: 그리스어로 '상처')입니다. 너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식의, 아이에 대한 보호자의 부정적인 태도입니다.
『따귀 맞은 영혼』, p.104     


© rodlong, 출처 Unsplash




내 딸아. 나의 기쁨, 나의 희망


나의 존재로 엄마가 불행하지 않도록 애를 썼다. 어렸을 때 아빠가 약주를 하고 오실 때면 엄마와 자주 다투셨다. 아빠로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어도 엄마는 그런 아빠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나로 인해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아빠에게 묶여 살고 있다는 죄책감이 어린 내 마음 가운데 자리 잡았다. 동시에 엄마가 언젠가는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나를 잠식시켰다. 엄마에게, "차라리 이혼해."라고 말하면서도 진짜로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갈까봐 잠들기 전에 엄마가 어디 있는지 꼭 확인했다.      


“시어머니와 살 때는 하늘이 노랗더니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하늘이 파란색으로 보이더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엄마는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 시집살이도 힘들고 남편과의 사이도 원만하지 못하는 엄마의 유일한 낙은 자식이었다. 엄마의 기쁨이 되기 위해, 살아갈 한 줄기 희망이 되기 위해 어려서부터 부단히 애썼다.     

엄마에게 하나뿐인 친구가 되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 온 엄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아빠 외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에서 누구하나 믿고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었다. 그런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했고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내면서 동지애를 느꼈다. 엄마의 고통은 나의 아픔이 되었고, 엄마의 기쁨은 나의 행복이 되었다. 딸이 공부를 잘해서 인정받고 예의바른 아이로 자라는 것을 기뻐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엄마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빨리 성숙해졌으리라.     


자기애성 착취가 정도를 더하면, 마침내 아이가 엄마나 아빠의 감정까지 아예 떠맡아서 자기 것으로 하는 일도 생겨납니다. 아이가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의 처지가 되어 그 불안과 고통을 자기 것처럼 느끼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 결과, 이 아이는 자기의 생각과 소망에 따라 살지 못하고 평생 부모를 위해 전전긍긍하는 수도 있습니다.
『따귀 맞은 영혼』, p.115     


© timkraaijvanger, 출처 Pixabay




너는 제대로 되지 않았어


기술이 좋았지만 가방끈이 길지 않았던 아빠는 치기공 일을 하셨다. 아빠는 내가 치과의사가 되길 바라셨다. 아빠의 바람대로 성장했으면 좋았으련만 고등학교 수학을 접하면서 수학, 과학 영역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 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민 고민 하다가 결국 아빠한테 실망한 드린 채 이과에서 문과로 바꿨다. 아빠는 당신의 꿈을 이룰 수 없겠다고 선언한 딸에게 엄청난 아쉬움과 서운함을 토로하셨다. 한 동안 술만 드시면 “네가 치대를 갔어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부모의 자랑이고 싶었던 나는 뚜렷한 목적도 없이 '대학원에 진학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깊이 있게 하는 데 관심이 있거나 연구를 정말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석사 학위를 따면 다시금 부모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이 요청하신 것은 아니지만 과시할만한 딸이 되겠다는 나름,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했다.

    

자기애성 착취의 경우 자녀는, 부모가 자신의 정서적 만족을 위해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 그대로 되어야 합니다. 특정한 능력이나 특성을 갖추어서 그것으로 부모의 정서적 결손감을 채워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자녀의 성공을 통해 부모의 자존감이 높아지니까요.
『따귀 맞은 영혼』, p.114     


© rainierridao, 출처 Unsplash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존재만으로는 환영받지 못했던’ 내면아이의 상처를 마주한다. 그 아이는 남자보다 나은 여자여야 했고, 엄마의 희망이어야 했고, 아빠의 자부심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역부족이었다. 부모님의 희망도, 자부심도 되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낮은 자존감이 형성되었다. 그로인해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느꼈다. 심지어 칭찬 받지 못할 때는 가치 없는 존재 일까봐, 쓸모없어지면 버림받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님 또한 상처 입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당신들 스스로 상한마음이 해결되지 않아 의도치 않게 내게 되물림 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구성원 사이에 상처 주고받기를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뒤늦게나마 그 사실이 따귀 맞은 어린 영혼을 위로한다. 깨달음을 통해 어릴 때의 상처와 미해결 과제를 마주할 힘을 얻게 되었다. 서로 주고 받았던 상처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


고추를 원했던 할머니를 용서하고, 희망이 되어주길 원했던 엄마를 이해하고, 나를 통해 꿈을 이루고자 기대하고 실망했던 아빠를 포용한다. 한 걸음씩 나의 세계를 마주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친절해지기로 하며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렇게 속삭인다.     


마음보렴! 너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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