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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보렴 Dec 06. 2021

그 남자의 고백,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사랑하겠습니다?

사회 심리학, 『사랑의 기술』

아빠가 엄한 편이서 학창 시절 내겐 통금이 있었다. '남자는 믿으면 안 된다.'라는 암묵적 메시지에 세뇌받은 터라 이성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초. 중학생 때는 남자아이들이 철이 없어 보여 눈에 들어오질 않았고, 고등학생이 될 즈음에서야 이성에 조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서는 전혀 남자한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때문에 아빠는 내가 스무 살이 넘도록 연애에 1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있었겠는가.



나를 살린 엄마의 한마디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마음에 드는 남학생에게 당차게 고백했다가 매몰차게 차여서 이불킥을 날리며 울었다. 그때 자존심이 더 상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거절의 이유가 당치도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야 해서 나랑 사귈 수 없다던 그 녀석이 예쁜 여학생과 걸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선물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큰 곰인형을 안고 가는 여학생 곁에 헤벌쭉 웃고 있는 그 녀석을 봤을 때의 놀라움이라니. 그 짧은 순간에 본능적으로 그 여학생을 재빠르게 스캔했다.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하니 아주 귀염성이 있었다. 키는 아담하지만 마른 체형에 인형같이 예뻤다. 그 여학생을 본 순간 ‘내가 못생겨서 싫다고 했구나.'라는 생각에 쥐꼬리만 한 자존감이 곤두박질쳤다.



거부를 경험하면 우선 자기가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다, 퇴짜 맞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대개는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데에서 퇴짜의 이유를 찾아냅니다. 자존감을 스스로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따귀 맞은 영혼』, p.173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하는 딸이 걱정이 되었나보다. 엄마가 빼꼼히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말수가 많지 않은 엄마는 울고 있는 내 옆에 한참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더니 한마디를 건넸다. "대에는 너를 감당할 만한 남자가 없나 보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면 분명히 널 누구보다 아껴주고, 대단한 우리 딸을 감당해줄 남자가 나타날 거야."라며 내 손을 꼬옥 잡아줬다.


엄마의 이 말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이후에도 여러 번의 이별을 경험했지만, 언젠가 나를 아껴줄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면의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장점들을 발견해줄 사람을 기다렸다. 그리고 결국 엄마의 예언(?)대로 '그런 사람'을 만났다!     



다툼이나 경제적 근심이 많고 정서적 안정감이 없는 등 문제가 많은 가정에서 정신적 부담을 잔뜩 지고 자라난 아이라 해도 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엄마가 있을 때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확실히 적습니다.
가장 중요한 보호자인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잘 받아준 덕분에 아이는 정서적 안정감을 얻게 되고, 이 안정감이 건강한 자기 신뢰를 형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귀 맞은 영혼』, p.134     


© jwwhitt, 출처 Unsplash




계산적인 여자의 연하남 꼬시기 작전


스물넷, 동아리 MT에서 세 살 연하인 지금의 신랑을 처음 만났다. 푸른 잔디가 빛나던 너른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던 그의 어깨는 매우 넓었다. 공을 좇아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던지 발달한 그의 운동신경과 열정을 단박에 캐치할 수 있었다. '누구지?'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축구를 마치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선하게 생긴 얼굴로 연신 미소 짓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일렉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과, 학창 시절에 비보이를 했었다는 정보를 들었다. 물개 박수로 호응하면서 보여 달라고 요청하자 수줍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빼지 않고 벌떡 일어나 스핀을 보여줬다.

'조용하긴 해도 자신감 있는 친구군!' 처음부터 좋은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이후에 채플에서 만나 핑계 김에 번호를 따고 학교에도 놀러 오라고 했다. 대학원생이었던 내가 부담스러웠을만 도한데 신입생이었던 그 난감해하지 않고 우리 학교에 놀러 왔다. 캠퍼스를 함께 걸으며 전공에 대해, 신앙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속이 깊고 단단한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일렉기타를 가르쳐달라고 졸라 몇 번 더 만나면서 더욱 친해졌다.


나중에 연애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처음에 나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느냐고.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먼저 신랑한테 작업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랑도 내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다. 채플에서 밝게 인사하고 잘 웃고 상대에게 말도 잘 거는 내 모습을 보고 '좋은 선배구나.'라고 느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의 교환 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사랑의 기술』, p.16     


© byfoul, 출처 Unsplash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사랑하겠습니다'? 그 남자의 고백법


지금도 그가 청혼하던 때가 생각난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우리 결혼할까요?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겠다고? 연애가 아니라 결혼을 하자고?' 사랑에 대한 확신 없이 하는 말로 들렸다.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결혼을 하자고 하는지. ‘연하답게 생각도 어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겠다’는 그 의지가 섞인 그 말이 어떤 의미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연애는 한 적이 없지만(그렇다! 그는 모쏠), 전에도 좋아하는 감정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두근거리고 좋아하는 감정은 고백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니까 사그러 들더라고요. 감정은 식는구나 깨달았죠. 가슴 뛰는 설렘과 불꽃같은 열정은 식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아도, 앞으로 어떤 상황이 와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약속하고 싶었어요.”     


그의 고백을 듣는 순간 ‘이 사람은 믿을 수 있겠다,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라고 결심했다.  그 뒤로 8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끝내 우리는 결혼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만이 아닌, 결의이자 판단이고 약속이다!
『사랑의 기술』, 뒤표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문구다. 그 문장을 보자 불현듯 청혼할 때 신랑이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성숙한 생각을 지닌, 사랑에 대해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그는 그 당시 우리를 사로잡았던 설렘이나 가까워지고 싶은 급한 마음, 그 외 다른 욕구에 휘둘리지 않았다. 관계를 짧게 보지 않고 멀리 내다보았다.


날 사랑하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남편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아껴주고 사랑해주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신이 약속한 그 사랑을 지켜 나갔다. 심술부리고 절망하며 못난 모습들을 보일 때 조차도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들였다. 감정 기복이 심했던 내게 잔잔하고 속 깊게 견뎌주었다. 그는 '사랑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변덕스럽고 한 달, 또는 몇 년 안에도 산산이 부서질 만큼 약하다. 하지만 언약은 우리로 다시 사랑할 기회를 주고 안정감이라는 울타리로 우리 마음을 보호해준다.
『결혼을 말하다』, p.116     





건강하지 않은 자존감으로 여기저기서 따귀 맞고 다닌 영혼이었던 나는, 엄마의 진심 어린 예언과 사랑하는 이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라는 언약 덕분에 조금씩 스스로를 다독이고 어루만져줄 수 있게 되었다. 마음 상함과 회복을 반복하며 우리의 관계는 더욱더 단단하고 깊이 있게 뿌리를 내렸다.


© profepix,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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