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나의 길 위에서 마주한 문장 하나
최근 우리 학교 아이들이 중간고사를 봤다.
그간 공부를 소홀히 해오던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3월, 4월을 나름 열심히 보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만으로 중간고사를 잘 보기란 쉽지 않다.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실망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 듯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자꾸 떠오른 문장이 있다.
내가 가장 잘 활용하는 과학기술 문물인 네비게이션에서
자주 듣게 되는 그 한 문장.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지리교사임에도 길치인 내게 네비게이션은 세상을 넓혀준 고마운 존재였다.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길을 몰라도 괜찮다는 위안을 줬다.
그런데 네비의 여러 기능 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다독여주는 말,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최단거리, 최적경로.
그 길로 가면 가장 좋겠지.
하지만 우리는 가끔, 아니 꽤 자주 길을 놓친다.
잠시 한눈을 팔았거나,
사인을 제때 알아보지 못했거나,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방향을 틀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목적지를 삭제만 하지 않으면,
몇 시간을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결국 도착한다.
심지어 재탐색된 그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두리번거리다 의외의 소득이 생기기도 한다.
커피가 간절했을 때 마침 지나게 되는 커피숍,
뒷자리에 앉은 꼬마들을 달래기 위한 편의점,
가끔은 의외의 맛집,
계절만 맞는다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벚꽃길이나 단풍길.
늘 최단경로, 최적경로만이 최선의 경로는 아닐 수도 있다.
가끔은, 너무 돌아간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이럴 거면 그냥 안 가고 말지” 싶은 순간도 있고,
“내가 뭘 놓친 걸까?” 되묻게 되는 밤도 있다.
하지만 경로 재탐색은,
그저 목적지를 잊지 않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단지 돌아가는 중일 뿐이라고.
중간에 신호를 놓쳤더라도, 교차로를 지나쳤더라도,
우리의 목적지는 여전히 거기 있다고.
우리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러니까
혹시 지금,
최단 경로를 놓친 것 같아 속상하고 답답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기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경로를 재탐색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원래 가려던 길을 놓친 덕분에
조금은 더 풍성한 경험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